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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해랑 Oct 18. 2024

내 방, 세 개의 스위치

나의 소중한 세번째 스위치를 찾았다

 





"이제는 일어나야지, 일어나자!"
 


첫번째 스위치 ON.
 
 귓전을 때리며 울리기 시작했던 알람이 두번 더 울리고 나서야 두 발을 번쩍 들어올려 그 반동으로 몸을 일으킨다. 세번째 알람을 듣고 움직이면 늦다. 얼른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아두고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한다. 10분 안에 샤워부스를 반드시 나와야 한다. 화장실 벽에 붙은 시계에서 7:00 이라는 숫자를 보기 전에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털고 있다면 오늘은 왠지 아침 시간이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얼굴이 당기지 않게 가벼운 스킨케어를 끝내고 안방을 나선다. 냉장고에서 계란 2알과 딸기잼을 꺼내두고 후라이팬에 불을 붙이고 기름을 두른다. 식빵의 테두리를 잘라내(도대체 왜 식빵테두리를 안먹는거니, 아들아. 다행히 이제는 따님이 그 식빵테두리를 우유에 적셔 맛있게 먹는다. 고맙다 딸래미야.) 딸기잼을 바르고 식빵테두리는 따님의 시리얼볼에 넣어 우유와 함께 식탁에 올려둔다. 그 사이 달궈진 후라이팬에 계란을 깨트리고 소금을 톡톡 뿌린다. 
 
 아이들이 자는 방 문은 열어두었다. 나의 이 소란한 아침준비를 듣고 스스로 벌떡 일어나주면 좋겠지만 그럴리가.
 
 "얘들아, 이제 일어날 시간이야. 더 늦게 일어나면 엄마아빠 지각해!."
 
 아드님은 벌떡 일어나 식탁 앞에 앉는다. 따님은 한 번에 일어나는 법이 잘 없다. 그렇지만 뭐 어찌저찌 앉혀놓으면 1차는 끝났다. 얼른 안방 화장대 앞으로 돌아가 기본 예의를 지킬 딱 기본의 화장을 한다. 아, 아이들 옷을 꺼내놓지 않았다. 파운데이션으로 얼굴을 하얗게 한 채로 아이들 옷을 쇼파에 던져놓는다. 아, 칫솔도 꺼내줘야지. 칫솔에 치약을 묻혀 아이들 식탁 위에 걸쳐놓고 다시 방으로 뛰어간다. 눈썹을 그리고 눈매를 다듬고 옷 매무새를 정리하며 입으론 아이들을 재촉한다. 그 사이 간단한 아침 요기를 마친 아이들은 고맙게도 양치를 하고 옷을 입고 있다.
 
 더 세세한 많은 일들이 있고 크고 작은 나와의 또는 그들끼리의 전쟁이 있지만 기본적인 루틴은 이러하다. 이렇게 양치기 소년이 양을 몰아내 듯 아이들을 집 밖으로 밀고나와 각자의 길로 보내준 후 얼른 주차장으로 달려간다.
 
첫번째 스위치 OFF.
 

 



 출근해 신발을 갈아신고 컴퓨터 전원버튼을 누르고 교실 창문을 모조리 열어 실내 공기를 바꾼다. 밤 사이 묵었던 공기를 내보내고 새로운 아침 공기를 교실에 채운다. 내 책상에 잠시 앉아 5분 정도 멍하니 고요를 맞이하고 있으면, "안녕하세요!" 



두번째 스위치 ON.
 
 23번의 밝은 아침 인사와 함께 나의 두번째 역할이 시작된다.

 엄마로서의 나. 나의 일상 루틴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해왔고 현재도 그러하다. 아침에 눈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생각이 아이들 아침요기거리를 생각하는 일이고 퇴근하며 하는 가장 주된 생각이 '저녁 뭐 주지?' 이다. 다행히 출근해서는 밥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린이집에서 잘 주겠지. 학교 급식 잘 먹고 오겠지. 밥해주는 엄마로서의 역할. 
 교사로서의 나. 육아의 시간에서 벗어나 출근을 했는데 나는 또 엄마가 되어 있다. 올해 23명의 엄마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 가르치고 같이 놀고 가끔은 아이들에게 되려 더 많이 배우기도 하고. 가르치며 함께 배우는 교사로서의 역할.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고자 한다. 따로 또 재미있게 풀어낼 기회도 있을 듯 하고 말이다.



 두번째 스위치도 오늘은 무사히 OFF.





 원래는 여기서 끝이었다. 나의 내면의 방 벽면 스위치는 두개였다. 그런데 최근 두 개만 있는 줄 알았던 그 방의 스위치가 3구짜리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작아서 보이지 않았던 건지 몰라서 못 봤던 건지. 퇴근하며 다시 바꿔 켰던 첫번째 스위치를 끄고 세번째 스위치를 눌러본다.
 
 "딸깍"


 꾸욱!   위이이~~~잉.

 




세번째 스위치 ON.
 
 늘해랑 작가로서의 나. 오늘은 또 무엇을 써볼까 빈 페이지를 하염없이 그냥 쳐다만본다. 한참을 머무르며 생각을 정리해본다. 이렇게 쓰면 연결이 될까? 이 소재도 괜찮을까? '커서멍'의 시간을 즐기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매일의 글쓰기를 끝내고 '완료-공개발행'을 끝내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아, 오늘도 무사히 나를 이겨냈다. 뿌듯함과 대견함, 그리고 살짝의 부끄러움을 가지고 내가 썼던 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보며 고칠 건 없는지, 어색한 주술관계는 없는지, 다른 단어로 바꾸어 볼 건 없는지 살펴본다.
 
 다른 사람을 나의 계획에 맞게 통제하기 위해서 애를 쓰는 첫번째, 두번째 스위치와 달리 세번째 스위치를 켠 순간부터 나는 오로지 나의 생각에 집중할 수 있어 좋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알아차린 나의 세번째 스위치가 더 소중한 듯 하다. 그래서 매일 쓰는 이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이다. 애를 쓰는 느낌은 아니다. 즐기고 있다. 심지어 음주를 하고 나서도 알딸딸한 정신에 노트북을 켠다. 휴가지에 와서도 하루를 마무리하며 노트북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다. 이런 내가 너무 웃기고 신기하다. 나를 나로서 역할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세번째 스위치. 오늘도 '완료-공개발행'을 앞두고 있는 지금. 미리 뿌듯해해본다.
 


아, 오늘도 무사히 나로서 살아냈다.













밤의 숲에서 / 임효영 글 그림 / 노란상상



<밤의 숲에서>의 주인공 '피비 할머니'

할머니가 가게 되는 '밤의 숲'은 할머니가 살아온 곳과는 다른 곳입니다.

할머니가 생을 거쳐 신경써왔던 할머니의 아이들이 없는 곳입니다.

혼자가 된 할머니, 숲속 동물들과 친구가 된 할머니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고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찾게 됩니다.


"너는 한 때 딸이었어? 엄마였어?"

"나는 나였어."

"너는 그럼 누군가의 적이었어? 누군가의 편이었어?"

"나는 그냥 나였어."



나도 나를 잃어버리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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