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해랑 Nov 05. 2024

기차의 여행

기차가 진짜로 가고 싶은 곳


 


"잘 다녀와."

"다녀오겠습니다!"

"재밌게 놀다오렴~"

"돌아올 때 선물 사오는 거 잊지마!"

"여행은 어땠니?"

"사랑해~"

"보고싶었어."


 

시끌벅적하지만 애정이 듬뿍담긴 소란스러움. 만남과 헤어짐의 장소. 나의 집이다.

나는 설렘을 가득 안고 떠나는 사람들과 충만함을 채워 돌아오는 사람들을 매일 만난다. 그들의 행복한 기분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나는 늘 뿌듯함을 느낀다. 하지만 가끔은 궁금하다. 내가 데려다 준 그 곳에서 그들은 무엇을 할까? 그곳에서 돌아온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 누구와 무엇을 할까?

사실 그들에게는 내가 데려다주는 그 길이 하나의 길, 여정일테지만 나에게 이 길은 매일 똑같이 갔다 오는 다람쥐 쳇바퀴같은 선이자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길이 아닌 길이다. 오늘도 나에 오르는 사람들의 생동감 넘치는 표정을 보며 그들의 목적지에 안전하게 사람들을 실어나른다.

나의 목적지가 아닌 곳으로 출발한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 내가 원하는 나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아침이 밝아 운행시간이 다가온다. 연료를 채우고 다시 선로 위에 몸을 올렸다.

치지직 폭폭 칙칙 포옥폭 - 

어랏? 선로가 끊겨있다. 계속 가도 되는 걸까? 

기관사 아저씨가 나에게 말한다. 


"가보자. 어디로 가고 싶었니?" 


어디? 내가 가보고 싶었던 곳?

며칠 전 곰인형과 함께 밤기차여행을 떠난 아이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도시에 엄마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나도 도시의 박물관에 머물게 된 오래된 친구를 만나러 가볼까? 지난 주에 배낭을 메고 탄 단단한 청년은 설산으로 등산을 간다고 했다. 눈을 보러 산으로 가볼까? 아! 예전에 멋지게 바캉스룩을 차려입고 양 손 가득 선물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온 아가씨를 떠올리니 바다도 가보고 싶어!


"그래, 어디로 가볼래?" 


기관사 아저씨가 나의 상상의 시간을 멈추었다. 결정을 해야할 시간.


"저.... 수평선을 보고 싶어요...바다가 궁금해요."

"좋아, 오늘은 네가 가보고 싶은 곳으로 떠나보자. 준비됐니?"


뿌우~ 뿌~~~ 치그직 치그직 치지직 칙칙 치익칙 포옥 칙칙 포옥폭 


"평소보다 소리가 신나보이는걸?"

"하하. 그렇게 들려요? 히히"

"천천히 달려도 돼. 천천히 구경하면서 가자."


아저씨의 말에 주변 풍경도 한 번 돌아본다. 처음 보는 곳이지만 마치 알던 곳 같다. 잔잔한 호수의 윤슬이 반짝이며 말을 건다. '너의 첫 여행을 축하해.' 호수 위에서 날갯짓을 펴보이는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나와 함께 날아오른다. '함께 가자.' 양 옆으로 펼쳐진 길게 뻗은 나무들이 박수 쳐 주는 것 같다. '지금까지 고생했어. 너만을 위한 길을 떠나보는거야.'

경쾌한 리듬으로 달리다보니 어느 덧 정말 땅이 끊겼다. 이곳이 바다인가? 바다의 끝이 하늘과 맞닿아있다. 시원한 바람이 나의 얼굴에 와 닿아 인사를 건넨다. '만나서 반가워.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지?' '아니. 오늘 길 내내 너무 즐거웠어. 내가 상상하던 바다의 모습이야. 너무 아름다운걸.'


"어때? 레일 위를 벗어나 너의 목적지를 향해 달려본 오늘이?"

"즐거웠어요. 설렜어요. 그리고 너무....그냥....좋아요."

"그냥 좋다..라.... 그러네. 그냥 좋았겠네. 그럼 이제 돌아가도 될까?"

"네!"


집으로 돌아간다. 슬쩍 뒤를 돌아 바다를 한 번 더 바라본다. 돌아가는 나의 뒤로 바다와 하늘의 색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잘가, 다음에 또 만나!'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마음이 꼭 사람들같다.

돌아가면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기차역에게 인사해야지. 잘다녀왔습니다. 아, 그리고 여기 선물! 바다에서 주워온 조개껍데기. 다음엔 꼭 같이 가자.










밤기차여행 / 로버트 버레이 글 / 웬델 마이너 그림 / 키위북스




그림책에서 아이는 아빠의 배웅을 받으며 밤 기차 여행을 떠납니다. 아마도 도시에 있는 엄마를 만나러 가는 것 같아요. 도착하는 기차역에 엄마가 마중나와 있을 것을 알지만 혼자(작은 곰인형과 함께) 하는 밤 기차여행이 살짝은 두렵지 않았을까 싶어요. 쉬이 잠들지 못하고 창밖의 불빛들을 좇아 하나둘 색을 쌓아가며 아침을 맞이합니다. 설레기도 했을까요? 

어쩌면 기차는 매일 수십번 무수히 달렸을 그 길을 오늘은 이 작은 아이를 위해 묵묵히 또 성실하게 달려 아이의 엄마에게 무사히 데려다줍니다.


기차는 어떨까요? 기차는 항상 누군가를 위해 길을 떠났다 돌아옵니다. 기차가 가고싶은 곳은 없을까요? 기차는 어디든 갈 수 있어 좋겠다 라고 생각하지만 기차가 정말 가고싶은 곳은 없을까 기차가 되어 상상해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