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인서울 대학에 합격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수시납치*를 당했기에 합격했을 때는 기쁘지 않았지만 나의 부모님은 정말 좋아하셨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막상 수업을 들으니 너무나도 재미가 없었다. 따분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철저하게 딴짓하기에 바빴다.
수시납치* : 수시로 갈 수 있는 대학보다 더 좋은 대학에 지원이 가능함에도, 수시에 합격하여 정시 지원이 불가능한 상황
그렇게 한국역사학과라는 학과가 맞지 않아 중간고사 이후에는 학업을 완전히 던져 놓고 고등학교 때 상상했던 대학생활의 이상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오후에 일어나 보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로 일주일을 꽉 채워 보기도 하고, 동아리에 미쳐보기도 하고, 취미로 밤을 새워 보기도 하는 등.
그러다가 마술회사 문하생 공고를 보게 되었다. 취미를 직업으로 만들 좋은 기회라 생각해 공고를 보자마자 노트북을 켜 이력서를 만들고 있었다. 무난하게 서류 합격을 하고, 면접까지 보게 되었다. 그냥 학과가 싫은 대학생이 하는 하나의 일탈 정도로만 마술 회사 입사기를 마무리 지으려 했지만 빠른 시일 내에 합격 문자가 왔다.
기대를 안 하고 있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막상 문자가 오니 너무 고민이 되었다. '하고는 싶은데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하지?'라는 고민만 가지고 무작정 기숙사에서 본가로 내려갔다. 처음에 어머니에게 이 말을 드렸을 때는 일단 반대를 하셨다. 그렇지만 아버지와 상의를 하시더니 결국 허락해 주셨다. 허나 "네가 무슨 일을 하든 상관이 없으나 대학 졸업은 해라"라는 아버지의 조건이 따라붙었다.
그렇게 대학을 다니며 마술 회사 생활을 병행하는 그런 생활이 2학기에 이어졌다. 다행히었던 건 대학이 비대면이라서 이 병행이 가능은 했다는 것이다. 평일에는 대학 수업 수강과 마술 회사에 출근을, 주말에는 아르바이트와 수학 과외를 하며 숨 막히는 20살의 날들이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마술을 취미로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6개월 만에 마술회사를 퇴사하게 되었다. 마술회사 퇴사 소식을 부모님께 전했을 때에는 전화기 너머로 부모님의 기쁜 음성이 울리는 듯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기대와 반대로 난 곧바로 휴학 소식을 알렸다. 군대를 들어가는 것이 정식 루트긴 했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에 조급해져 휴학을 결정하고 보드게임 제작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인 카페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했다.
보드게임 제작을 위해 제작업체 발품을 팔고, 검수자를 선정하고 협의하는 과정을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 미팅했을 때랑 제작 조건이 그들에게 유리하게 달라지는 제작 업체, 검수자의 냉혹한 평가 등 상황이 점점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와 반대로 그저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던 카페 일은 점점 커피와 디저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어 너무 재밌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런 생각이 가득할 무렵에 카페 매니저 제안을 받게 되었다. 나는 사실 머릿속으로는 너무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지만 2가지 우려가 나를 가로막았다. 그 당시 21살, 만 19세의 나는 '능력이 부족하지 않을까?'가 첫 번째 우려였다. 다행히 이 우려는 주변 매니저님들이 충분히 용기를 북돋아주셨기에 해결할 수 있었다.
진짜 문제, 두 번째 우려는 '부모님은 어떻게 설득하지'였다. 이에 대한 마땅한 해결책이 없었다. 이번에는 마술회사 때와 다르게 학교도 휴학하고 있는 상태이고 군대도 미룬 상태였기에 부모님의 반대가 더 심했다. 그런데 너무 하고 싶었다. 21살에 카페 매니저라는 직책이 나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기에. 이번에는 허락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질러(?) 놓고 통보하는 방향으로 갈 생각으로 빠르게 매니저 계약서를 작성해 버렸다.
그렇게 질러 놓고(?)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다음 연도 2월에는 군대를 가기로 약속하는 쪽으로 협의하기로 했다. 매니저의 생활은 케이크 제조, 아르바이트생 관리, 재고 관리 등 나의 능력에 비해 신경 쓸 부분이 너무 많아 힘들었음에도 너무나 재밌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집에만 들어가면 부모님의 무언, 아니 그냥 압박이 계속 들어왔다. 이에 대한 스트레스가 쌓여 그 당시의 나는 저녁 시간에는 집에 있지 말아야겠다(?)라는 불효자스러운 묘책을 생각해 내게 된다.
그렇게 2월이 다가오게 되었고,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이때부터는 아버지와의 약속인 대학졸업을 어떻게 할지 생각을 하곤 했다. 학과가 맞지 않아서 전과를 원했지만 그러기엔 학점이 안되니 아예 새로운 대학에 들어가자는 생각이 들어 수시 전형으로 원서를 넣게 되었다.
사실 군수(군대에서 하는 재수)를 해도 되지만, 대학 졸업장만 따면 되는 것을 굳이 가고도 싶지 않은 대학을 가기 위해 1~2년을 다시 입시 생활로 돌아가기엔 의지가 불타오르지도 않을뿐더러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 시간에 커피에 대해 공부하고 많은 사람들과의 인맥을 쌓는 것이 나의 상황에서는 더 필요하다 생각했고,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외식과 관련된 학과에 수시 원서를 넣었지만, 나의 생활기록부는 역사교육과를 가기 위한 생활기록부였다. 광기에 휩싸인 생활기록부에는 외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역사가 가득했다. 아마 수시 원서를 받은 학교는 원서를 잘못 받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당연하게도 수시 전형에서 탈락했다.
그 이후부터 나는 하고 싶었던 일들을 막 펼쳐 나가고 있었다. 커피, 마케팅, 브랜딩을 배우고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등 이런 과정에서 커피와 디저트라는 영역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커져 가고 있었다. 앞으로의 전역 계획을 세우면 세울수록 대학의 필요성을 잘 못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지 않는 것'을 어떻게 부모님에게 설득을 할지 고민의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그 당시에 자주 보던 자기계발 유튜버 '옌마드'님의 Q&A를 보게 되었다. 그중 "부모님한테 자퇴, 사업을 허락받은 방법이 있나요?"라는 질문이 있었고, 옌마드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허락 안 받았어요. 20살부터는 성인이잖아요!
"대학을 중퇴한 것도 그렇고 사업도 그렇고 그냥 100% 저의 선택이었습니다. 저는 제 인생을 다른 사람의 선택이 아니라 온전히 저의 선택들로 채워나가고 싶거든요."
이 답변을 듣고 10분간은 그 자리에서 멍하니 있었다. 너무나도 뻔한 표현이지만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라는 말만큼 내 기분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나는 성인이 되고 어느 순간에나 '어떻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지만,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안 해 봤을까? 아쉬움이 느껴졌다. 나는 내 나름대로 나의 삶, 나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속에서도 대학은 졸업해야 한다는 일종의 속박과 사회의 시선에 갇혀있음을 느꼈다.
물론 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사업을 하지 말고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라는 부모님의 조언이 완전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힘든 나날들을 보내셨기에 자신의 아들은 그런 삶을 보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나의 삶은 나의 것이다. 나중에 후회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선택으로 인해 후회하고 싶다. 나의 인생에서 다른 사람을 탓하는 과정이 포함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