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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숙 Aug 08. 2024

다이아몬드 헤드의 배경지  오아후섬

와이키키 명물 반얀트리

오픈 에어포트 코나  


결혼식을 끝내고 빅아일랜드에서 하루 더 쉰 다음 오아후로 이동했다. 코나 공항은 다시 봐도 아담했다. 우리는 점심을 먹지 못해 공항에서 해결하려고 1시간쯤 미리 들어갔다. 그것이 얼마나 계획 없는 생각이었는지 들어가고 나서 곧 깨달았다.      


보통 공항은 티켓팅하고 들어가도 커피숍이나 식당이 있지만, 코나 공항은 달랐다. 식당 겸 커피숍이 하나 있기에 얼른 들어갔다. 간단히 먹을 음식은 샌드위치와 음료뿐이었다. 할 수 없이 턱없이 비싼 샌드위치와 음료를 주문해 먹고 있는데 사람이 계속 밀려 들어왔다. 일단 시킨 음식을 다 먹으면 눈치가 보여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또 알아서 일어나기 전에 종업원이 와서 다 먹었으면 나가라고 했다.


쫓겨나다시피 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아서 비행기가 오기를 기다렸다. 오픈 공항이라 게이트를 나가면 바로 비행기가 있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캐리어만 아니라면 마치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안에는 화장실도 없었다. 그저 비행기를 타기 위해 잠깐 머물다 가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명색이 공항 대기실인데, 시골 동네 버스정류장에도 화장실은 있는데 하는 생각에 왠지 씁쓸했다.


게이트를 나가면 바로 비행기가 있다.


갑자기 사람들이 분주해서 바라보니 언제 왔는지 비행기가 도착해 있었다. 게이트를 나가면 몇 걸음 걷지 않고 바로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오픈 공항의 이점이었다.


호놀룰루 공항까지는 약 50분이 걸렸다. 갑자기 시골 아줌마가 서울 번화한 거리에 선 듯 호놀룰루 공항은 규모도 컸고 사람도 넘쳐났다.


와이키키의 명물 반얀트리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무조건 와이키키 해변으로 나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나무가 있었는데 바로 반얀트리(Banyan Tree)다. 빅아일랜드에서도 많이 본 나무였다.


반얀트리는 원래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자생하는 나무다. 여러 줄기로 자라나는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수령 120살의 반얀트리, 생긴 것이 특이해서인지 영험해 보인다.


모아나 서프라이더 호텔 앞 부근에 서 있는 이 반얀트리는 1904년에 심어졌으며 현재는 그 크기와 넓은 가지로 인해 어지간하면 그냥 못 본 척할 수 없는 나무가 되었다.     


반얀트리는 하와이 전통 신앙에서 신성한 나무로 여겨진다. 하와이 원주민들은 반얀트리를 ‘라후아 쿠나와나’라고 부르는데 이 나무가 영혼과 소통하는 신성한 장소로 생각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반얀트리 아래에서 신들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반얀트리는 모아나 서프라이더 호텔에서 심었는데 이 호텔은 1901년에 개장한 와이키키의 첫 번째 호텔이었다. 반얀트리는 호텔 설립자 월터 C. 피콕(Walter C. Peacock)이 인도의 신성한 나무를 가지고 왔다. 그는 이 나무가 호텔의 상징이 되길 바랐다고 한다. 그의 바람대로 반얀트리는 호텔의 상징을 넘어 와이키키의 상징이 되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하와이를 여러 차례 방문했는데 모아나 서프라이더 호텔에 머무는 동안 반얀트리 아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팬들과 사진을 찍으며 하와이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즐겼다. 엘비스의 방문으로 이 반얀트리는 더욱 유명해졌다.     


반얀트리는 여러 영화와 TV 쇼의 촬영지로도 사용되었다. 1961년 영화 <블루 하와이(Blue Hawaii)>에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반얀트리 아래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반얀트리 아래에서는 정기적으로 하와이 전통 음악과 훌라춤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 행사는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하와이의 전통문화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저녁 무렵에 이 공연이 열리면 주변에 구름 같은 인파가 몰린다.     


반얀트리 아래는 결혼식 장소로도 인기가 많다. 많은 커플이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다. 나무의 웅장한 모습과 평화로운 분위기는 결혼식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왠지 결혼을 깨면 안 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사람들은 반얀트리 아래에서 명상하거나 책을 읽기도 한다. 그래서 와이키키 해변의 반얀트리는 단순한 나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반얀트리는 하와이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며,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나들이 나온 병아리들


반얀트리 나무 근처에 어미 닭이 병아리를 끌고 나들이 나와 있었다. 키웨스트에도 닭이 있더니 하와이에도 닭과 병아리가 있는 것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다이아몬드 헤드(Diamond Head)


하와이에는 볼거리가 많지만 그중 다이아몬드 헤드도 인기 있는 명소다. 다이아몬드 헤드는 미국 하와이 제도의 사화산으로 정상에는 거대 분화구(소규모 칼데라 지형)가 있다. 과거 일어난 화산 폭발로 지금의 모습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다이아몬드 헤드, 멀리서 보면 일출봉을 닮았다.


멀리서 바라본 다이아몬드 헤드는 마치 제주도 일출봉을 닮았다.      


다이아몬드 헤드는 약 300,000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분화구로, 지름 약 1,073m, 높이 약 232m다. 하와이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레아히(Leahi)’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 이 단어는 하와이어로 ‘참치의 이마’를 의미한다. 분화구의 형상이 참치의 이마와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와이 오아후섬의 남동쪽 해안에 있는데 와이키키 해변과 가깝다. 다이아몬드 헤드 정상에 오르면 와이키키 해변과 호놀룰루 시내, 태평양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멋진 전망이 펼쳐진다.     


다이아몬드 헤드라는 이름이 붙여진 유래는 19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선원들이 다이아몬드 헤드 경사면에서 반짝이는 결정체를 발견하고 이를 다이아몬드로 오인했다. 실제로 이 결정체는 석영과 방해석 같은 광물이었지만, 이로 인해 ‘다이아몬드 힐(Diamond Hill)’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후에 다이아몬드 헤드(Diamond Head)로 바뀌었다.     


다이아몬드 헤드에 얽힌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화산의 여신 펠레는 오아후섬에서 거주하며 활동했으며, 다이아몬드 헤드도 그녀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다의 여신 나마카오카하이(Namakaokaha'i)와의 대립이 이곳에서 벌어진 후 빅아일랜드로 쫓겨갔다. 이는 제5화 <빅아일랜드> 편에서 다루었다.     


다른 전설에는 다이아몬드 헤드가 모아나의 수호신이 지키는 장소로 등장한다. 모아나는 용감한 탐험가로, 다이아몬드 헤드의 수호신에게 도움을 받아 태평양을 항해하는 모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한다.     


다이아몬드 헤드 분화구


다이아몬드 헤드는 전략적 위치 덕분에 하와이 왕국 시절에 요새로 사용되기도 했다. 높은 지형을 이용해 적의 공격을 방어하고 해안선을 감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이곳은 현재 하와이의 상징적인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하와이의 자연적 아름다움과 풍부한 문화유산을 대표한다. 또한 세계 방문객들이 하이킹 장소로 찾는 명소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다이아몬드 헤드를 소재로 작품을 쓴 작가는 여럿 있다.  나머지 작가는 다음 편에 소개하기로 하고 마크 트웨인에 대해 알아본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 <Letters from Hawaii>(1866)


마크 트웨인은 1866년에 하와이를 방문하여 약 4개월 동안 머물렀다. 그는 오아후, 마우이, 하와이 섬을 여행하고 하와이의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며 여러 편지 형식의 글을 썼다. 특히 그는 다이아몬드 헤드를 방문한 후 그 풍경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다이아몬드 헤드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우리는 고래선 항구에 착륙하여 유명한 분화구인 다이아몬드 헤드(Diamond Head)로 빠른 질주를 했습니다. 이음새가 있고 주름진 측면과 훌륭하게 직립한 형태를 가진 이 고귀한 오래된 사화산은 포경선의 랜드마크입니다. 이 바다를 항해하는 모든 사람들.”  


이 구절에서 트웨인은 다이아몬드 헤드를 고귀하고 오래된 사화산으로 묘사하며, 그 주름진 측면과 거대한 형태가 항해자들에게 중요한 랜드마크가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트웨인의 묘사는 다이아몬드 헤드의 지리적 중요성과 그 웅장한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들은 이 산이 불타는 단처럼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산의 정상에 올라가자, 해가 지면서 붉은빛이 하늘을 물들이고, 거대한 바위들이 그 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트웨인은 다이아몬드 헤드의 웅장한 모습을 마치 불타는 으로 비유하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표현했다. 그의 글에서는 하와이의 독특한 지형과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마크 트웨인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미국의 소설가, 유머 작가, 강연자이다. 본명은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Samuel Langhorne Clemens). 1835년 11월 30일 미주리주 플로리다에서 태어나 1910년 4월 21일 코네티컷주 레딩에서 사망했다. 그는 풍자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를 잘 표현했으며 미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마크 트웨인의 <하와이에서 온 편지>는 1866년 그가 하와이를 여행하며 경험한 이야기들을 담은 일련의 편지들이다. 이 편지는 샌프란시스코의 신문인 ‘Sacramento Union’에 연재되었다.     


트웨인은 하와이 제도 곳곳을 여행하며 보고 느낀 것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그는 이 여행을 통해 하와이의 자연경관, 문화, 사람들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다.     


하와이 원주민들의 생활 방식과 풍습, 그들의 전통적인 춤, 음악, 의식 등을 상세히 소개하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문화를 소개했다.     


트웨인은 하와이의 정치적 상황과 사회적 이슈들, 특히 서구 열강의 영향력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드러냈다. 이로 인해 이 책은 당시 하와이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했다.     


트웨인의 유머러스하고 풍자적인 문체는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그의 글은 재미있으면서도 깊이 있는 통찰을 주어 큰 인기를 끌었다.     


마크 트웨인에 관한 에피소드와 그의 가족     

마크 트웨인은 젊은 시절 미시시피 강의 증기선 파일럿으로 일했다. 이 경험은 <미시시피 강의 삶>에 반영되었다. 그는 이 시기에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을 처음 사용했다. ‘마크 트웨인’은 강의 깊이를 측정할 때 사용되는 용어로, 안전한 수심을 의미한다.

    

트웨인은 한때 네바다에서 은광 채굴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이 경험은 그에게 좌절감을 안겼지만, 동시에 서부 개척 시대의 삶을 체험하게 해 주었다.

    

트웨인은 그의 작품이 성공한 후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강연 활동을 했다. 그는 영국, 유럽, 인도, 남아프리카 등지에서 강연을 통해 사람들에게 그의 유머와 이야기를 전했다.     


트웨인은 인생에서 몇 차례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다. 그중 가장 큰 사건은 그가 투자한 출판사와 타이프세팅 기계 사업의 실패였다. 이로 인해 그는 큰 빚을 지게 되었으나 세계 강연 투어를 통해 빚을 갚았다.

      

트웨인은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며 강연을 통해 그의 유머와 통찰을 나눴다. 특히 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강연 투어는 그의 재정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의 독특한 이야기 전개 방식과 유머가 겸한 강연은 항상 인기를 끌었다.  

   

트웨인은 가족을 매우 소중히 여겼는데 특히 그의 아내 올리비아와 세 딸에 대한 애정은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의 두 딸이 요절한 것은 그에게 큰 슬픔을 안겼다.  

 

아내 올리비아 랭던 클레멘스(Olivia Langdon Clemens)

마크 트웨인은 1867년 친구 찰리 랭던(Olivia Langdon)의 초청으로 증기선 퀘이커 시티호를 타고 유럽과 중동을 여행했다. 이 여행에서 찰리 랭던의 여동생 올리비아의 초상화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이후 찰리는 트웨인을 집으로 초대했고, 그곳에서 트웨인과 올리비아는 처음으로 만났다.


트웨인은 올리비아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했고, 2년간의 긴 연애 끝에 1870년 2월 2일 뉴욕주 엘미라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올리비아는 트웨인의 글을 세심하게 읽고 편집해 주는 등, 그의 작품 활동에 큰 도움을 주었다.


트웨인과 올리비아는 세 딸, 수지, 클라라, 진을 두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올리비아는 트웨인의 작가 생활을 지지하고, 그의 성공을 위해 헌신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가족의 중심이었고, 트웨인에게 큰 안정감을 주었다.


올리비아는 결혼 생활 내내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여러 차례 질병을 앓았으며, 이는 트웨인에게 큰 걱정과 스트레스를 안겼다. 그러나 그녀는 트웨인을 위한 지지를 멈추지 않았다.


올리비아는 트웨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그의 원고를 꼼꼼히 읽고 수정하며, 트웨인의 글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도왔다. 또한 그녀는 트웨인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작품을 쓰도록 격려했다.


트웨인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을 때, 올리비아의 지지와 인내 덕분에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들은 여러 번의 경제적 어려움을 함께 이겨냈으며, 트웨인은 이를 통해 더욱 성장했다.


올리비아는 1904년 6월 5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건강 악화로 사망했다. 그녀의 죽음은 트웨인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겼으며, 그는 이후로도 그녀를 깊이 그리워했다. 올리비아의 죽음 이후, 트웨인은 더 이상 이전처럼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지 못했다.


올리비아 ‘수지’ 클레멘스(Olivia ‘Susy’ Clemens)

수지는 마크 트웨인과 그의 아내 올리비아의 첫째 딸로, 1872년 3월 19일에 태어났다. 그녀는 가족 중에서도 아버지와 특히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수지는 매우 창의적이고 영리한 아이로, 종종 아버지의 글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1896년 24세의 나이에 척수수막염으로 사망했다. 수지의 죽음은 트웨인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클라라 클레멘스(Clara Clemens)

클라라는 트웨인의 둘째 딸로, 1874년 6월 8일에 태어났다. 그녀는 성악가로 활동하며 음악적 재능을 발휘했다. 클라라는 1909년 러시아계 피아니스트 오시프 가브릴로비치와 결혼했으며, 그와 함께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생활했다. 그녀는 비교적 평탄한 삶살았고  아버지의 유산을 기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클라라는 1962년 11월 19일에 사망했다.

    

진 클레멘스(Jean Clemens)

진은 트웨인의 막내딸로, 1880년 7월 26일에 태어났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간질로 고통받았다. 진은 1909년 12월 24일, 29세의 나이에 간질 발작으로 인한 사고로 사망했다. 그녀의 죽음 또한 트웨인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마크 트웨인의 명언

마크 트웨인은 그의 재치 있는 문체와 유머 감각으로 유명하지만 유독 많은 명언을 남겼다.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진실을 말하면, 아무것도 기억할 필요가 없다.”  

   

“20년 후,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로 더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밧줄을 풀고 항해하라. 안전한 항구를 벗어나 꿈을 꾸고 탐험하라.”

     

“웃음은 인류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인생을 의미 있게 살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라.”  

   

“성공의 비밀은 바로 시작하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의 주요 작품

<톰 소여의 모험(The Adventures of Tom Sawyer)>(1876년 출간)

톰 소여라는 소년의 장난기 넘치는 모험을 그린 소설로, 미국 남부의 삶과 문화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1884년 출간)

톰 소여의 친구 허클베리 핀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며, 노예제도와 인종 차별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미국 문학의 걸작으로 꼽히며, 현대 문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왕자와 거지(The Prince and the Pauper)>(1881년 출간)

잉글랜드의 왕자와 가난한 소년이 서로 신분을 바꾸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로, 사회적 불평등과 정의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아더 왕 궁정의 코네티컷 양키(A Connecticut Yankee in King Arthur's Court)>(1889년 출간)

현대의 미국인이 중세 아더 왕 시대에 떨어지게 되면서 벌어지는 모험을 그린 소설로, 시간 여행과 사회 비판을 결합한 독특한 작품이다.

    

마크 트웨인은 특유의 유머와 재치 있는 문체로 독자들에게 사랑받았다. 그의 작품들은 당시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동시에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며 독자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주고 있다.         


현재 미국에는 미크 트웨인을 기념하는 장소가 많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미주리주 한니발에는 마크 트웨인의 생가가 있다. 그리고 성인 시절에 살았던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의 집은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 트웨인은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 명한 작품을 집필했다.


미국 전역에는 마크 트웨인을 기리기 위한 동상들이 여러 곳에 세워져 있다. 특히 그의 출생지인 미주리주 플로리다와 그의 작품의 배경이 된 미시시피 강 근처의 도시들에 여러 동상이 있다.


와이키키 해변


예약해 둔 호텔에 짐을 풀고 와이키키 해변으로 걸어갔다. 숙소에서 와이키키 해변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10분 거리였다. 오아후는 빅아일랜드와 확실히 달랐다. 곳곳이 주차 전쟁이었고 거리 역시 건물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갑자기 광활한 빅아일랜드가 그리워졌다.     


숙소 앞 빌딩들

조금 걸어가자 드디어 와이키키 해변이 보였다. 갑자기 일행의 걸음이 빨라졌다. 해변은 도로를 건너면 바로 시작되었다.     


낭만의 도시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 도착해 느낀 첫 감정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였다. 사실 해변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줄 알았다. 그런데 해변의 이 끝과 저 끝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부산의 해운대 느낌이랄까? 왜 나는 해외에 나가면 자꾸 우리나라 경치가 오버랩되는지 모르겠다.

      

이 사진을 해운대와 비교해 보면 바슷하지 않은가? 나만 그런가?


그런데 마치 복사, 붙이기를 한 것처럼 느낌이 비슷했다. 우선 도로를 건너면 백사장이 이어지고 바로 바다가 보이는 점이 같았다. 그리고 해변 오른쪽 끝으로 큰 건물이 보였는데 해운대 조선호텔이 서 있는 듯했고 왼쪽 역시 건물이 들어서 있는 것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여기저기 자유롭게 엎드리거나 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물론 해변에 늘어선 야자수와 바다 색깔, 그리고 여기저기 눕거나 엎드려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외국 사람으로 가득 찬 것은 다른 풍경이다. 똑같다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내가 느낀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것이니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궁금해서 와이키키 해변과 해운대를 검색해 보았다. 와이키키는 길이가 약 3마일(약 4.8km), 해운대는 약 1.5km(약 0.9마일) 정도였다. 와이키키가 해운대 보다 무려 3배가 더 긴데 아마 내 눈은 향수병이라도 걸렸나 보다.     


하와이의 밤


와이키키 해변을 걷는 동안 어느새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하와이에 와서 노을은 질리도록 는데 늘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


잠깐 사이에 주변이 어두워졌다.


노을이 지면 집마다 아이들을 불러 저녁을 먹일 것 같은 푸근한 마음이 든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도 떠오른다. 온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는 장면도 그려진다. 그래서 노을이 지면 갑자기 배가 고프다.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열심히 검색했다. 애써 찾은 집은 일본식 우동집이었다. 참 희한하게도 하와이에 와서 먹어야 할 음식이 너무 많은데 무언가에 홀린 듯 우동집 앞으로 가서 줄을 섰다. 오늘은 많이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고 기뻐하면서.     


우리가 간 곳은 마루카미 우동(Marukame Udon) 집이다. 이곳은 손님이 직접 우동을 선택하고 다양한 토핑과 사이드를 추가할 수 있는 셀프서비스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냥 주는 대로 먹는 것에 익숙한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서비스다. 매장에서 직접 만든 신선한 면을 사용해 우동의 식감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우동이 뭐 맛있어야 얼마나 맛있겠는가?     


나는 가장 기본적인 우동인 가케우동을 주문하고 새우튀김, 채소튀김 몇 개를 담았다. 사람들은 카레우동을 많이 시켜 먹었다. 하와이의 인기 음식인 스팸 무스비도 있었으나 양이 많아 담지 않았다.      


우동은 받았는데 함께 앉아서 먹을 자리가 없어서 여러 군데 흩어져서 먹었다. 수제로 직접 만든다는 면은 쫄깃했지만 국물이 너무 짜서 반도 먹지 못했다. 튀김은 어디나 맛이 비슷해서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서로 떨어져 앉아 먹어서인지 음식 맛도 별로였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맛집이라는 소문도 막상 가보면 주관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경험했다.


저녁을 먹었으니 운동 삼아 걸었다. 와이키키 주변은 쇼핑하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마치 불야성의 명동 거리를 걷는 듯했다.


불빛으로 화려한 드림캐처, 거리에는 늦은 시간까지 사람이 많았다.


와이키키 해변 주변은 다양한 쇼핑센터로 유명하다. 우리는 가까운 로열 하와이안 센터(Royal Hawaiian Center)로 들어갔다. 이 쇼핑센터에는 100개 이상의 상점과 레스토랑이 있으며, 고급 브랜드부터 현지 디자이너 브랜드까지 다양한 쇼핑 옵션이 있다.


인기 매장인 애플 스토어, 티파니 앤 코, 살바토레 페라가모, 루이뷔통 등이 있었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얼마 걷지 않아 인터내셔널 마켓플레이스(International Market Place)가 보였다. 이곳은 다양한 국제적인 브랜드와 현지 상점들이 혼합되어 있다.


아름다운 공원과 고급 레스토랑, 전통적인 하와이 식물과 인공폭포 등으로 꾸며져 있어 사람들이 연신 카메라를 눌렀다.


쇼핑센터 내 나무가 희한하게 자라고 있다.


백화점 물건을 싸게 파는 노드스트롬은 들어가 보면 살 것이 있겠지만 그냥 지나쳤다. 다리도 아프고 이미 너무 많은 경비를 써서 쇼핑은 금물이었다. 쇼핑의 천국에 와서 쇼핑은 금물이니 나 같은 여행객은 영양가가 없다.     


너무 많이 걸었더니 다리가 아팠다. 스타벅스가 눈에 뜨여 반가운 마음에 들어갔는데 아들이 리저브점이라고 좋아했다. 리저브점은 일반적인 스타벅스 매장과는 달리 특별한 원두와 로스팅 기술을 사용한 드립커피를 주문해서 먹을 수 있다.

  

하와이에서만 살 수 있는 텀블러와 머그잔

“뭐 마실래?”     


아들은 한참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아이스 바닐라라테.”     


나는 속으로 웃었다. 리저브점이라고 좋아해서 도 모르는 드롭커피를 주문하나 했는데 평소에 즐겨 먹던 커피를 마신단다.


그래도 커피를 좋아하는 딸은 혹시 드롭커피를 주문할 수도 있는데 스타벅스 근처에서 ABC마트를 발견하고는 나중에 통화해서 만나자신나서 달려갔다.  


커피를 다 마시고 와이키키 해변에 한 번 더 들러 숙소로 가자고 했다. 아들은 하와이에서만 살 수 있는 텀블러를 산다고 구경 중이었다.


나도 아들을 따라 뒤에서 기웃거렸다. 아들이 텀블러를 사는 동안 나는 머그컵을 만지작거렸다. 색감이 예쁘고 넓적하니 큰 게 마음에 들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나도 텀블러와 머그컵샀다.


여행을 가기 전에 코나 커피가 맛있지만 스타벅스 코나 커피가 제일이라는 지인의 말이 생각나 선물할 커피도 하나 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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