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간 건 천만다행!
한숨을 돌린 후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조금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파티는 시작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6시 30분이 조금 넘어서야 반 학부모들이 하나둘 아이들의 손을 잡고 파티장에 도착하기 시작했고, 7시가 다 되어서야 커다란 테이블이 비로소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멕시칸 타임’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이곳 사람들에게 약속 시간은 그저 ‘대략 그 언저리’를 의미하며, 한 시간쯤 늦는 것은 흔한 일이라는 것을. 정시에 도착한 내가 오히려 유별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그곳에서 멕시코 사람들의 인사법인 ‘베소(beso)’를 처음 경험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임에도 그들은 나를 향해 다가와 자연스럽게 한쪽 볼을 내밀며 쪽, 하고 허공에 입맞춤 소리를 냈다. 처음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쭈뼛거렸지만, 몇 번 인사를 나누고 나니 그 또한 자연스러운 그들의 문화임을 알게 되었다.
어느 정도 베소가 익숙해진 후에는 외국인인 나를 배려하기 위해 악수를 청하는 몇몇의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달려들어 뺨을 비비는 바람에 당황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에게 수많은 생각과 고민을 안겨주었던, 나와 내 작은아이의 첫 번째 멕시코 파티. 그 파티는 내가 캄페체에 머무는 동안 결국 나에게 가장 큰 위안과 편안함을 준 ‘컴포트 존’이 되어준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었고, 아이의 학교생활을 넘어 나의 타향살이 전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게 된 멕시칸 친구, 디나를 그곳에서 처음 보았다.
하나둘 도착하는 사람들과 어색한 베소를 나누고 눈인사를 하며 여전히 낯선 기류에 휩싸여 있을 때였다. 내 앞 테이블에 까무잡잡한 피부에 화려한 무늬의 바지를 입은 단발머리 여성과, 그 옆에는 어딘가 여전사 같은 강인한 인상을 풍기는 긴 머리의 여성이 함께 앉아 있었다.
무심코 시선이 갔는데, 화려한 바지를 입은 그녀의 핸드폰 화면에서 익숙한 구글 번역기 창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화면에는 선명한 한글로 **“안녕하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깜짝 놀랐다. ‘저 사람은 나, 혹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직접 말을 걸어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 작은 행동 하나가 내 마음에 큰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녀가, 바로 3년이라는 시간 동안 타국에서 나와 함께 울고 웃으며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준 디나였다. (옆의 여전사 같았던 빨간색 윗옷을 입고 있던 그녀는 디나의 여동생이었다는 사실은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나에게는 시작부터 끝까지 어색하고 조금은 지루했으며, 스페인어를 못하는 설움에 힘들기도 했던 파티였다. (하지만 스페인어 한마디 못하는 작은아이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파티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집에 갈 시간이 되자 더 놀고 싶다며 아쉬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파티는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정말 가기를 잘했다, 안 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몇 번이고 되뇌게 되는 그런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다. 왜냐하면 캄페체에 살아보니,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생일 파티와 두어 달에 한 번꼴로 열리는 각종 피에스타(fiesta, 축제)에서 엄마들과 아주 빈번하게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그때 그렇게 처음 안면을 트고 조금이라도 친해진 사람들이 생겼다는 사실이, 스페인어를 못하는 내가 조금이나마 여유를 가지고 그들의 문화에 스며들 수 있는 든든한 마음의 기반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그 파티에 간 것은 천만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