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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안녕하세요, " 그녀의 낯선 한국말

by ElenaLee


단조로운 일상, 그리고 간절했던 헤어컷



멕시코에서 나의 일상은 단조롭게 흘러갔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두 아이와 남편의 도시락을 싼 뒤 정신없이 학교와 회사로 보내고, 텅 빈 집을 정리하고 나면 다시 정오쯤 막내를 킨데르(유치원)에서, 그리고 곧이어 큰아이를 프리마리아(초등학교)에서 픽업해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그곳에는 국기원에서 파견 나오신 한국인 사범님 가족이 계셔서 가끔 만나 식사도 하고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마음 편히 속내를 터놓을 현지인 친구는 전무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사는 이 도시, 캄페체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 곳인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에 대해 알 길이 없어 종종 답답함과 함께 은은한 외로움이 밀려오곤 했다. 새로운 관계에 대한 작은 갈망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 어느새 머리카락이 어깨에 닿을 만큼 자라 있었다. 목에 머리카락이 닿는 것을 유독 견디지 못하는 나는 하루빨리 머리를 자르고 싶다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뜻밖의 "안녕하세요", 미용실 약속까지 일사천리



어느 날 오후, 막내를 픽업하고 킨데르 앞에서 큰아이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만치에서 낯이 익은 여자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얼마 전 어린이날 파티에서 구글 번역기로 "안녕하세요"를 보여주었던 바로 그 엄마 "디나"였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더니 환하게 웃으며 다가와, 조금은 서툴지만 정감 있는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는 두 손가락으로 요즘 한국에서 유행한다는 ‘손가락 하트’까지 만들어 보이며 나에게 화답했다. 그 따뜻하고 스스럼없는 인사에 나도 모르게 용기가 생겼다. "혹시… 아는 미용실 있으면 좀 소개해줄 수 있어요?" 어쩌면 이 어색한 땅에서 새로운 연결고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감을 안고,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그녀는 나에게 왓츠앱으로 알려주겠다고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렇게 디나와 헤어지고, 큰아이까지 픽업해 집에 돌아와 핸드폰을 열어보니 놀랍게도 그녀에게서 여러 개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미용실 이름과 주소는 물론, 미용실 내부 사진과 헤어스타일 참고 사진까지 친절하게 보내준 것이었다. 심지어 예약까지 대신해 주겠다며 원하는 시간을 물어왔다.


그녀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나는 며칠 뒤, 생전 처음 가보는 멕시코 미용실에서 성공적으로 머리를 자를 수 있었다.



낯선 미용실에서의 하루, 그리고 고마운 저녁 초대



그런데 디나의 친절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내가 머리를 자르는 동안, 그녀는 미용실에 직접 찾아와 내가 불편한 점은 없는지, 머리는 마음에 드는지 등을 살뜰히 챙겨주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과분한 친절이었기에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곧 그녀의 행동이 나를 편안하게 해 주려는 진심 어린 배려임을 깨닫고 나니, 부담감은 눈 녹듯 사라지고 고마운 마음만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미용실은 일반적인 가게처럼 계속 문을 열어두는 곳이 아니라, 미용사가 예약 시간에만 맞춰 잠깐씩 문을 여는, 철저한 예약제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디나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스페인어 한마디 못하는 내가 혼자서 예약하고 머리를 자르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던 나는 며칠 뒤 디나에게 한국 음식을 해주겠다며 우리 집으로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마음과 마음이 통한 저녁 식탁, 그리고 깊어지는 우정



초대 당일, 그녀는 약속 시간에 맞춰 테레 카솔라(Tere Cazola)에서 사 온 먹음직스러운 당근 케이크를 들고 도착했다. 나는 그녀를 위해 제육볶음, 새우전, 김치전, 그리고 불고기를 정성껏 준비해 함께 식탁에 마주 앉았다.


어색함도 잠시,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디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혼 후 홀로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날 점심, 디나가하는 영어의 모든 내용을 내가 다 정확히 이해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가족 관계나 직업 같은 구체적인 정보들은 이미 들었음에도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어렴풋이 알게 될 정도로, 우리의 초기 대화는 종종 안갯속을 헤매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대화 내내 신기할 정도로 많이 웃었고, 함께 있는 시간이 무척 즐거웠다.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어떤 교감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야. 너는 정말 용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줘서 고마워."


그날 식사를 계기로 우리는 부쩍 가까워졌다. 아이들 등하원 길에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짧은 수다를 떨었고, 가끔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소소한 일상을 공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캄페체 59번가의 레스토랑 아두아나(Aduana)에서 함께 브런치를 먹고, 루나(Luna)에서 크루아상 샌드위치를 나눠 먹는 사이가 되었다. 수많은 파티에 초대될 때마다 디나는 항상 내 옆자리를 맡아주었고, 덕분에 나는 더 이상 구석에서 홀로 뻘쭘하게 서성거리지 않아도 되었다.


디나뿐만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와 여동생 또한 나에게 넘치는 사랑과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그들 덕분에 나는 낯선 멕시코 땅에서 기댈 수 있는 또 하나의 가족을 얻은 기분이었고, 그 온기는 내가 캄페체 생활을 더욱더 풍성하게, 그리고 꿋꿋하게 버텨낼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만약 디나가 없었더라면, 캄페체에서의 내 삶은 얼마나 단조롭고 외로웠을까. 아직도 그녀에게는 항상 고마운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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