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이가 킨데르(유치원)에 입학하자마자, 크고 작은 학교 행사들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 내용들이 한국인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 투성이었다. 예를 들면, ‘어린이날(Día del Niño)’ 기념 주간에는 ‘가장 튀는 머리하고 등원하기’, ‘가장 튀는 티셔츠 입고 오기’, 심지어 ‘수영복 입고 와서 다 같이 물놀이하기’ 같은 과제들이 매일같이 주어졌다.
한 번은 ‘가장 튀는 머리’라는 주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평소처럼 단정하게 머리를 빗겨 아이를 보낸 적이 있었다. 그런 종류의 파티나 이벤트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오후, 담임 선생님이 왓츠앱으로 보내주신 사진 한 장에 나는 그만할 말을 잃었다.
사진 속 작은아이는 아침에 내가 보낸 그 모습이 아니었다. 머리 전체에 헤어젤이 잔뜩 발라져 하늘로 힘껏 솟구쳐 있었고, 그 모습이 어찌나 요란하고 우스꽝스러운지!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내 다른 아이들의 사진들도 속속 올라오는 것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알록달록한 리본으로 머리 전체를 땋아 올린 아이, 해적 모자를 눌러쓴 아이, 심지어 인형 다리를 머리에 매달고 온 아이까지.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스타일의 향연이었다.
그제야 나는 멋모르고 아이를 그냥 보낸 것이 미안해졌고, 대신 아이를 즐겁게 꾸며주신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과제 수행 능력’이 문화적 차이로 인해 현저히 낮은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학교 행사에 정신없이 쫓아가기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픽업해 가방을 살펴보니 이냐끼(Iñaki)라는 친구의 생일 초대 카드가 들어 있었다. 멕시코에서의 첫 생일 파티 초대였다. 당연히 참석하겠다는 RSVP를 보냈지만, 솔직히 내가 더 떨렸다. 아이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가서 신나게 놀면 그만이었지만, 모든 것이 처음인 나는 선물부터 시작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급히 디나에게 연락해 아이들 생일 선물은 보통 어느 정도 가격대에서 준비하는지 물어보고, 파티 당일 부랴부랴 장난감 가게에 들러 강아지 모양 블록 세트를 하나 샀다.
이냐끼의 생일 파티는 리베르풀(Liverpool)이라는 곳이 있는 큰 몰의 키즈 놀이터에서 열린다고 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아이를 놀이터 안에 들여보내고, 이냐끼 엄마와 짧게 인사를 나눈 뒤 선물만 건네주고는 바로 나왔다. 남편과 나는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다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아이의 양손에 들린 것들을 보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피자 상자 하나는 물론이고, 온갖 사탕과 과자가 가득 담긴 예쁜 선물 꾸러미, 그리고 그때는 그게 그렇게 유명한 캐릭터인지도 몰랐던 30센티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커다란 허기워기 인형까지 들려 있는 것이 아닌가!
남편과 나는 그야말로 문화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보통 생일 초대를 받으면 선물을 주고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고 오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에서는 놀이터를 통째로 빌려 피자에, 아이스크림에, 거기에 상상 초월의 답례품까지 안겨주니 말이다.
남편과 나는 "와, 정말 신기하다. 축하하는 분위기를 넘어 거의 잔치 수준이네. 아이 생일 파티에 이렇게까지 정성을 쏟는구나!" 하며 연신 감탄했다. 특히 그저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진심으로 파티를 준비하고 함께 즐기는 듯한 그들의 모습이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달에 한 번꼴로 돌아오는 아이들의 생일 파티가 대부분 이런 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파티장을 빌려 아이들을 놀게 하고 피냐타를 하고 선물을 잔뜩 안겨서 집으로 보내는 것이다. 장소만 달라지지 항상 이런 식으로 아이들의 생일파티는 이어졌다. 매번 이렇게 과분하게 받기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이던 나는, 결국 큰맘 먹고 다가오는 10월, 작은아이의 생일 파티를 제대로 한번 준비해 보기로 결심했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장소 섭외부터 시작해할 일이 태산이었지만, 이번에도 디나가 거의 모든 것을 다 도와주었다. 디나 어머니께서 손수 케이크를 사주시겠다고 했고, 디나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피냐타(Piñata)를 주문해 주겠다고 나섰다. 나는 알레에게 연락해 그녀의 파티 장소를 빌리기로 했다.
그런데 알레와 장소 사용료 디파짓을 전달하기로 약속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웃지 못할 문화 충격 에피소드가 발생했다. 분명히 알레와 ‘일곱 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약속 장소에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아, 역시 멕시칸 타임인가. 한 시간쯤은 기본이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30분을 더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전화도 받지 않아 결국 허탈하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다음 날 아침잠에서 깨어난 순간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저녁 7시가 아니라 아침 7시였나?’ 황급히 왓츠앱을 뒤져 알레와의 대화 내용을 다시 확인해 본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뿔싸, 정확히 ‘7am’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누가 아침 7시에 약속을 잡는단 말인가…? 나는 당연히 저녁 7시라고 철석같이 믿고 확인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너무나 당황스럽고 미안해서 알레에게 장문의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 다행히 알레는 내 실수를 너그럽게 이해해 주며 웃어넘겼고, 우리는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때 또 하나 배웠다. 열대 기후인 이곳 캄페체에서는, 그나마 선선한 아침 일찍 약속을 잡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열린 작은아이의 생일 파티는, 디나와 그녀의 여동생이 마치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장식부터 피냐타 속 채우기, 손님맞이까지 거의 모든 것을 도맡아 처리해 준 덕분에(정말 90%는 그들의 노력이었다!)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초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와서 축하해 주었고, 둘러앉아서 멕시칸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 주며 따뜻하게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작은아이는 그때의 생일 파티를 아직도 가장 행복했던 기억 중 하나로 간직하고 있다. 나 역시 그날의 경험을 통해 낯선 문화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고, 무엇보다 이곳 사람들의 따뜻한 정과 ‘함께 즐기는’ 파티 문화의 즐거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졌지만, 이런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 나는 조금씩 캄페체에서의 삶에 스며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