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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물과 개미와의 전쟁, 그리고 마침내 이사!

by ElenaLee


첫 번째 집의 악몽: 졸졸졸 물, 그리고 개미와의 동거



캄페체에서 우리가 처음 살게 된 집은 프리바다(gated community) 안에 있는 아담한 2층 주택이었다. 1층에는 작은 부엌과 거실이, 2층에는 침실 세 개와 화장실이 있는 구조였다. 겉보기에는 평범했지만, 살아보니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물이었다. 거의 하루 종일 요리를 멈추지 않고 해야 하는 나에게 물 사용량은 어마어마했지만, 부엌 수도꼭지에서는 항상 물이 졸졸졸, 감질나게 흘러나왔다. 설거지 한 번 하려면 속 터지는 것은 기본이었고, 그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층 샤워실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머리를 감고 나면 약한 물줄기로는 몸에 잔뜩 묻은 머리카락이 제대로 씻겨 내려가지 않는 슬픈 상황이 매일 반복되었다. 결국 나는 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커다란 플라스틱 대야와 바가지를 욕실에 들여놓았다. 물을 받아 몸에 끼얹어 가며 겨우 샤워를 마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적응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부엌에서 마주하는 졸졸졸 흐르는 물과 언제 망가질지 모르는 나무 싱크대는 도저히 적응하기 힘든 난관이었다. 나무 위에 위태롭게 깔린 유리 상판은 뜨거운 냄비라도 한번 잘못 올려놓으면 여지없이 금이 갔고, 서툰 나는 벌써 여러 번 유리를 깨 먹었다. 물이 튈 때마다 나무가 축축하게 젖어 삭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고역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놈의 시뻘겋고 통통한 개미들은 온 집안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도무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개미와 한 공간에서 살아본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밤에 잠을 잘 때면 혹시라도 개미가 내 몸 위를 기어 다닐까 봐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디나의 집, 그리고 "나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



솔직히 처음에는 캄페체에서는 다들 이렇게 사는 줄로만 알았다. 남편 역시 회사에서 한 달 정도 임시로 제공한 집에서 살았는데, 그 집도 물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며 "원래 여기는 물이 이렇게 나오는 게 당연한 거야"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알게 된 사실은, 더운 나라이다 보니 멕시코 사람들은 물을 많이 쓰지 않는 요리법이 자연스럽게 발달했다는 것이었다. 빵에 아보카도와 계란을 얹어 먹거나, 또르띠야에 구운 고기와 라임, 양파를 올려 타코로 즐기는 등, 그들은 설거짓거리도 많이 나오지 않는 간편한 식사를 선호했다.


하지만 국이며 밥이며 여러 가지 반찬을 동시에 차려야 하고, 쌀을 씻고 채소를 다듬는 등 물 사용량이 많을 수밖에 없는 한국 음식을 매일 해 먹어야 하는 나에게 그 졸졸졸 나오는 물은 그야말로 재앙과도 같았다. 물이 부족해도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 현지인들과 달리, 이방인인 나에게는 너무나 힘든 환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디나의 집에 초대받아 갔다가 나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디나의 집은 캄페체에서 꽤 괜찮은 지역에 있었는데, 큰아이의 피아노 학원이 그 근처라 오가며 볼 때마다 집들도 큼직하고 도로도 넓어 괜찮은 동네라고 생각했던 곳이었다.


실제로 디나의 집 안으로 들어서니, 그야말로 ‘별세상’이었다. 우리 집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깔끔하고 환한 것은 물론,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고,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싱크대에서는 물이 시원하게 쏟아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남편에게 약간의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다 똑같다더니, 아니었잖아!'


그날 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남편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나, 이사 가고 싶어. 이번에는 내가 직접 집을 골라서, 내가 원하는 집으로 가고 싶다고!"



캄페체 집 찾기 대작전: 수영장과 주차난 사이



처음 남편이 이 집을 구했던 이유는, 멕시코가 위험할 것이라는 생각에 안전한 게이티드 커뮤니티를 원했고 가격도 적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돈을 더 주더라도, 물이라도 편하게 쓸 수 있는 멀쩡한 집에서 샤워도 마음껏 하고 설거지라도 속 시원하게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알렉스는 또다시 그의 업무 목록에는 없던 ‘집 보기’를 나와 남편과 함께 시작해야 했다. 여러 집을 둘러보았지만, 나의 최우선 순위는 무조건 물이 잘 나오는지, 그리고 부엌 싱크대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한 번은 캄페체 힐스(Campeche Hills)라는 동네에서 수영장까지 딸린 근사한 새집을 보았지만, 원래 집 월세의 두 배를 내야 한다는 말에 좌절감을 맛보기도 했다. 그 집은 정말 물도 콸콸 나오고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는데 말이다. 또 산 로만(San Román)이라는 지역에서 꽤 괜찮아 보이는 집을 발견했지만, 방이 좁기도 했고 남편이 주차 공간이 마땅치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어느새 나는 캄페체가 생각보다 안전한 곳이라는 나름의 확신이 생겨 프리바다가 아닌 개인 주택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은 여전히 약간의 우려를 떨치지 못하는 듯했다. 그렇게 우리의 집 찾기는 예산과 취향, 그리고 안전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갔다.



새로운 보금자리, 그리고 비둘기 깃털의 경고



그러다 2022년 12월, 잠시 한국에 들어가기 바로 전날, 마지막으로 집 한 채를 더 보기로 했다. 그 집은 2층 베란다에 비둘기 깃털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집이 꽤 넓었고 물도 아주 잘 나오고 전반적으로 괜찮아 보였다. 우리는 결국 그 집을 계약했다.


나중에 디나를 통해 알고 보니, 놀랍게도 그 집은 디나의 바로 옆집이자 그녀의 어머니 댁과 마주 보는 곳이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이사를 했고, 나는 이제 더 이상 물 때문에 고생할 일은 없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 항상 그렇듯이, 모든 것이 내 뜻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나는 그 집에서 또 다른 종류의 물 문제와 사투를 벌여야 했고, 더불어 비둘기 깃털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에 대한 혹독한 벌을 받게 될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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