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을 느낀 사람
교복이 예쁘기로 소문난 고등학교였다. 춘추복 위에 재킷을 입으면 동복이 되는 여느 학교와는 달리 춘추복과 동복이 따로 있었다. 그렇게 예쁜 교복이었건만 난 당시에 교복 맞출 형편이 안 돼서 얻어 입어야 했다. 상의, 하의를 각각 다른 사람에게 물려받았는데 상의 사이즈는 너무 컸고, 하의는 작아서 숨을 참아야만 지퍼를 잠글 수 있었다. 입고 나면 상체는 크고 하체는 작은 흡사 고릴라 같았다.
2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 우리 반 교실에서 그 아이를 처음 봤다. 예쁜 교복의 명성에 걸맞게 교복이 너무 잘 어울리는 아이였다. 교복 모델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체형에 딱 맞게 맞춘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머리카락은 3:7 가르마를 하고 뒤로 깔끔하게 묶었다. 아무 무늬 없는 새하얀 양말과 깨끗한 실내화를 신고 의자에 반듯하게 앉아 있었다. 김태희나 손예진처럼 눈에 띄게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난 그 아이에게 계속 눈길이 갔다. 그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신기했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자세가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수업시간은 물론 쉬는 시간에도 항상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었다. 다리를 꼬거나 벌리는 법 없이 항상 가지런히 모으고 발바닥을 바닥에 붙이고 있었다. 실내화를 접어 신지 않았다. 엎드리거나 팔을 괴는 것도 본 적 없다. 쉬는 시간에 교실을 뛰어다니거나 큰 소리를 내며 놀지 않았다. 과자를 먹을 때는 한 번에 입에 넣지 않고 과자를 조각내서 부스러기를 탁탁 턴 다음 입을 조그맣게 벌리고 조용히 씹으면서 과자를 먹었다. 수업 시간엔 집중해서 공부했고 성적도 좋았다. '우아하다'는 표현을 의인화하면 그 아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난 딱 그 아이와 모든 게 반대였다. 자세는 늘 구부정하고 실내화는 접어 신었다. 교복 치마 안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한쪽 다리는 의자에 올리고 다른 다리는 달달달 떨었다. 과자는 입을 크게 벌려 한번에 넣은 뒤 우걱우걱 소리 내 먹었고 쉬는 시간이면 큰 소리로 말하고 뛰어다니며 놀았다.
그 아이와 특별히 친하게 지낸 것도 아니면서 지금까지 그 아이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건 그 아이의 이 모든 모습과 행동이 전혀 눈꼴사납지 않았다는 거다. 사춘기의 삐딱한 시선으로 보면 얼마든지 거슬릴 수 있었지만 오히려 난 넋 놓고 바라볼 정도로 그 아이에게 풍기는 기품이 부러웠다.
그리고 느꼈다. 타고난 성품과 자라온 환경이 그 아이의 품격을 만들었고 난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그 아이처럼 될 수 없다는 걸. 조선 시대였다면 그 아이는 양반이고 나는 평민이었을 거라는 걸. 그리고 지금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계급이나 계층은 존재하고 있다는 걸.
나는 고등학교 2학년에 나의 신분을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