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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이유라고?

눈치 보는 사람

by 마싸

‘어? OO이 표정이 이상한데? 왜 날 보고 인상을 쓰지?’

‘다른 사람은 다 웃는데 저 사람은 왜 안 웃지?’



중학교 3학년, 봄 소풍 날이 다음 날로 다가왔다. 소풍에 대한 설렘으로 친구들과 모여 왁자지껄 떠들던 중에 한 친구가 말했다. “우리 엄마가 김밥 많이 싸준데. 내가 너희들 먹을 거까지 다 싸 올게.” 이게 웬 횡재인가 싶었다. 나처럼 기분이 좋아진 다른 친구들이 “그러면 난 과자 사 올게.” “난 과일 가져올게.” “그럼 내가 돗자리랑 얼음물 챙겨 올게.” 하며 자신이 맡을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내 차례가 되자 “어.... 그럼 난 음료수.”라고 말했다.

드디어 소풍 날, 멋진 풍경을 감상하고 신나게 걷고 재잘재잘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굴러가는 돌멩이를 보고도 숨넘어갈 듯 웃었다. 점심시간, 각자 맡은 것들을 꺼내 맛있게 나눠 먹고 나머지 시간도 즐겁게 보낸 후 집으로 돌아왔다.



소풍의 기분 좋은 기억을 가지고 다음 날 학교로 갔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어제 함께 놀았던 아이들이 나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내가 쳐다보면 시선을 피했다. 말을 걸면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나를 빼고 자기들끼리 모여 웃고 떠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즐겁게 놀던 아이들이 갑자기 변해 당황스러웠다. 내가 뭘 잘못 한 건지, 실수한 게 있는지 생각해 봐도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차라리 “너를 따돌리마” 하고 대놓고 당했던 4학년 때가 나았다. 하루아침에 이유도 모른 채 여러 명의 외면을 받는다는 건 썩 기분 좋지 않았다.



학교에서 친한 친구를 만든다는 생각 자체를 버린 지 오래였다. 그냥 쉬는 시간에 같이 놀고 함께 밥 먹을 친구만 있으면 됐었다. 그래서 나를 외면하는 그 무리에서 나와 다른 무리의 친구들과 친해졌다. 그 친구들에게 미련이나 원망 같은 건 없었다. 다만 나를 향한 사람들의 태도가 갑자기 바뀔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였다. 사람들의 눈빛이나 표정이 어제와 다르다고 느껴지면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고 눈치를 보게 됐다. 상대가 나에게 말을 걸기 전까지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다. 먼저 말을 걸었을 때 냉랭한 반응을 받는 게 두려워서였다. 시간이 지나 상대가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다가오면 그때야 안심을 하고 눈치를 거두었다.

사람들을 처음 만나는 모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말할 때 웃고 있는 사람보다 웃지 않는 사람에게 더 신경이 쓰였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재밌다고 웃는데 웃지 않으면 ‘내가 싫은가?’ ‘내가 말하는 내용이 거슬리나?’ 같은 생각을 했다. 기어이 그 사람이 웃는 걸 봐야 안심이 됐다.



시간이 조금 흘러서야 그날의 진실을 알게 됐다. 소풍 이후 아이들이 냉담했던 이유는 내가 음료수를 집에서 사서 가져오지 않고 소풍지에서 샀다는 거였다. 난 미리 사면 무거울 것 같기도 하고 친구들이 먹고 싶어 하는 걸 사주는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돈만 챙겨 갔었다. 그런데 자기들은 무겁게 다 들고 왔는데 나만 가볍게 와서 음료수만 틱 사주고 자기들거 얻어먹었다는 거였다. 하.... 참 나....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가 제일 먼저 내렸는데 한 아이가 저 사실을 못마땅하게 여겨 다른 아이들에게 이야기했고,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으니까 다 함께 나를 무시하기로 했다. 이유를 알고 나니 정말 황당했다.



나는 이유를 모르지만 상대는 나를 싫어할 이유가 뭐라도 있다는 것, 그 이유가 내 잘못도 내 실수도 아니지만 상대는 그렇게 여길 수도 있다는 것, 내가 이해하고 인정할 수 없는 이유로도 사람들은 나를 무시하고 냉담하게 대할 수 있다는 것.



16세의 나는 눈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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