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 사람
코인을 시작으로 부동산 투자까지 부자가 되고 싶다는 목표로 재테크 공부를 하면서 끝내 깨닫게 된 게 하나 있다. 내가 부자가 될 방법은 수입을 늘리는 것, 즉 사업을 해야 한다는 거였다. 투자 커뮤니티에서 만난 동료들과 2년 가까이 독서 모임을 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에 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전 사업을 하고 싶어요.”
“이제는 사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도 회사에 다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돈을 버는 방법은 다양하다고 알려줘야겠어요.”
라고 말했다. 계속 말만 했다.
난 초등 이전 기억이 거의 없는데, 엄마와 언니 말로는 꽤 화목했다고 한다. 남동생이 태어나고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을 시작했다. 이것이 우리 가정의 비극의 시작이었다. 아빠 자영업이 쫄딱 망했냐고?
아빠는 철물점을 운영하며 보일러를 시공하거나 주택 안팎의 수리를 했다. 아파트보다 주택이 더 많던 시절이었으니까. 태생이 부지런하고 성실한 아빠는 밤낮없이 일했고, 입소문이 나 많은 일들을 했다. 그렇다. 혼자서 일하면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 얼마나 벌었는지 엄마의 하소연을 빌리자면 당시 1층에 세 들어 살던 3층 건물을 살 수도 있었다고 한다.
재테크 공부를 할 때 ‘돈 그릇’이라는 말을 처음 알았다. 사람은 자신의 돈 그릇만큼 밖에 돈을 담지 못한다고. 아빠의 돈 그릇은 작았다. 아빠는 자신의 돈 그릇에 차다 못해 넘치는 돈을 주체할 수 없었고, 흥청망청 써버리는 선택을 했다. 갓 태어난 아들에게 아낌없이 불필요한 장난감을 사줬고, 자신의 유흥비로 사용했다.
일이 없는 비수기에 동네 사장님들과 모여 시간을 때우기 위해 쳤던 화투가 나중에는 도박판이 되었다. 당시엔 계좌이체보다 현금으로 작업비를 받았다. 아빠는 돈을 받는 족족 도박판에서 하나도 남김없이 써버렸다. 아내와 아이 셋이 먹고 써야 하는 돈도 남기지 않은 채.
그 시절에 엄마는 도박하고 있는 아빠를 찾아다니며 울고 화내고 사정하기를 반복했다. 엄마는 돈 버는 거 다 줄 필요도 없이 제발 한 달 고정 생활비를 정해진 날짜에만 달라고 사정했다. 아빠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그 약속은 무참히 어겨질 때가 많았다. 일이 많을 땐 돈을 펑펑 써서 줄 돈이 없고, 일이 없을 땐 진짜 돈이 없어 줄 돈이 없고. 그 시절 엄마 아빠의 싸움은 팽팽한 줄다리기 같았다. 싸움으로 난장판이 된 방 안을 뒤로 하고 엄마는 “한 달에 고정 생활비만 달라는데... 그걸 안 준다”하며 절망에 빠져 울었다.
스마트 스토어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 가장 진입 장벽이 낮으니까. 그런데 세상에 너무 많은 물건이 썩지도 않고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는데, 이런 세상에 나까지 쓰레기를 만들고, 그 쓰레기를 사라고 부추기고, 그 쓰레기로 돈을 벌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물건 안 팔아도 되는 커뮤니티 사업을 해보고자 인스타를 시작했다. 어느 정도 커뮤니티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인지도가 되었지만, 난 사람을 좋아하지도 않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어려울 것 같고,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데로 안 따라주면 스트레스받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다 그럴싸한 이유지만 핑계일 뿐이었다. 말로만 사업을 하고 싶다고 떠벌렸지, 실천하고 있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아마도 나의 무의식엔 ‘월 고정 수입’이 새겨져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월급 받는 회사원이 아닌 내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다. 회사를 벗어나 나만의 일을 해보고 싶다고 늘 생각한다. 문제는 지금의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깨달았는데도 전혀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데 있다. 솔직히 말하면 절대 못 할 것 같다. 월 고정 수입이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다. 생각만 해도 너무 불안하다. 그러면 회사에 다니면서 제2의 일을 찾으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 맞다. 그러면 된다. 그런데 수긍은 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임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사실 나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딱 내 돈 그릇은 월급쟁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