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반장이 뭐 길래

괜찮은 척 하는 사람

by 마싸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반장 선거에 나갔지만 단 한 번도 당선된 적이 없었다. 당시엔 추천으로 후보를 정하는 게 아니라 후보가 정해져 있었다. 나가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나가서 낙선의 굴욕을 맛봐야 했다. 0표가 나오거나 2표가 나오면 그나마 나은데 1표가 나오면 그렇게 곤욕스러울 수가 없었다. 반 아이들이 내가 나를 찍었다고 생각할까봐... 그랬던 내가 4학년 때 반장으로 당선되었다.



4학년에 올라 가 처음 만난 짝은 밝은 아이였다. 반의 여자 아이들과는 물론이고 남자 아이들과도 서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눌만큼 사교적이었고 나에게도 먼저 말을 걸어 주었다. 신기하고 멋진 아이였다. 그 아이는 내가 반장 선거에 나가야 되는 걸 알고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 말은 빈말이 아니었고 진짜 난 반장이 되었다.



우리 반엔 1학년 때부터 반장을 놓치지 않았던 A가 있었다. 선거 운동에도 열정적이던 A가 반장이 될 거라 모두가 예상했지만 갑자기 내가 반장이 된 것이다. 애살이 많던 A는 여자 아이들에게 내가 남자 아이들에게 뇌물을 주고 반장이 되었다고 모함했다. 여자 아이들 모두가 A에게 동조했고 다함께 나를 따돌렸다.



난 남자 아이들에게 뇌물은커녕 말도 제대로 섞지 못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남자 아이들이 나를 뽑아줘서 반장이 된 건 맞았다. 나의 밝고 착한 짝이 남자아이들에게 나를 뽑아달라고 말해줬기 때문이었다. 자세한 속사정은 이러 했지만 여자 아이들의 오해는 아무 상관없었다. 나에겐 멋진 짝이 있었고 난 짝궁만 내 편이면 아무 상관없었다. 그런데 정말 영화처럼 나의 짝궁이 며칠 후 전학을 갔다. 그렇게 난 혼자가 되었다.



폭력이나 괴롭힘을 당하진 않았다. 그냥 철저하게 혼자였다. 혼자 밥을 먹고, 쉬는 시간에도 혼자 있고, 혼자 등하교 했다. 교실에선 그 누구도 보지 못 하는 투명 인간이었다. 엄마에게 따돌림 당하고 있노라 말하지도 못했다. 혼자 그 시간을 묵묵히 견뎠다.



남편이 나와 살면서 가장 어이없고 이해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있다. 부부싸움을 하고 나면 남편은 그 상황을 벗어나려 방에 들어가 식음을 전폐하고 나오지 않는 성향이었다. 반면에 나는 남편을 방 안에 두고도 TV를 보며 깔깔깔 웃기도 하고 식사 시간이 되면 배달을 시켜 냄새를 폴폴 풍겨가며 맛있게 혼자 먹었다. 화가 나 있는 자신을 놔두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사이코패스냐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근데 사실 방 안의 남편이 신경 쓰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니, 많이 신경 쓰였다. 근데 난 민망하고 어색한 상황이나 불편한 기분이 들 때 더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을 과하게 하게 된다. 무리 속에서 혼자 있어야 한다는 건 많이 부끄럽고 슬프고 외롭고 힘든 일이었다. 그 힘듦을 아무렇지 않음으로 표현하려면 정말 많은 애를 써야 했다. 그렇게 따돌림 당하는 게 아무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 자존심을 한껏 끌어올려 표정과 행동을 관리했던 4학년 때의 버릇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따돌림의 시간은 의외의 일로 끝나게 된다. 하교를 하는 중에 B의 엄마를 만나게 되었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다음 날 B가 학교에 와서 내게 “우리 엄마가 너랑 사이좋게 놀래. 너 예의바르고 착하다고.”라고 말했다. B를 시작으로 하나 둘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1학기가 끝나기 전에 따돌림은 끝났다.



이 일은 당시엔 힘들긴 했겠지만 지금의 나에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때 생긴 버릇이 남편에겐 큰 트라우마를 남기긴 한 것 같다.

keyword
이전 03화드라마를 보며 펑펑 우는 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