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부모님은 자영업을 하셨다. 요즘은 이런 상가가 많이 없지만 그땐 가게 뒤편에 딸려 있는 방과 주방으로 이루어진 집이 많았고 내가 살던 집도 그러했다. 그 시절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군식구들이 함께 살았는데 잠잘 때마다 내 몸을 기어 다니던 바선생과 주방에서 마주쳐도 도망가지 않고 당당하게 나를 쳐다보던 쥐선생이다. 이 쥐선생들은 저녁마다 축구를 하시는지 천장에서 '두두두 두두두' 소리가 들리는 날이 많았다.
난 바선생은 어느 정도 참아줄 만했고 그들을 능지처참하며 약간의 카타르시스를 즐기기도 했지만 하아.. 쥐선생은 정말이지 공포의 대상이었다. 너무 징그럽고 싫었다. 제발 이노무 쥐선생이 없는 집에서 살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요즘 전 세계가 노래하는 아파트로 이사가게 되었고 쥐선생과도 영원히 이별할 수 있었으며 꿈에 그리던 내 방도 생겼는데.... 난 만족했을까?
그럴 리가.. 침대 하나, 책상 하나 들어가니 발 디딜틈도 없는 방에 서서 집이 조금만 더 넓었으면 했고 내 방이 조금 더 컸으면 바라게 되었다.
신혼을 반지하에서 시작한 우리 부부는 다음 집은 20평대 전세, 그다음은 30평대 공공임대, 지금은 30평대 번듯한 공동명의의 자가에서 살고 있다. 지금의 집을 살 때만 해도 이제 집걱정은 없겠다 싶었지만..
괜히 부동산 공부를 해가지곤 지금 집은 입지가 너무 안 좋다며.. 그노무 입지, 같은 기간에 더 많이 오를 곳, 학군이 좋은 곳, 가치가 있는 곳으로 이사 가야 하는데.. 하고 있다.
나중엔 부산이 아닌 서울에 집을 사고 싶을 것이고, 기어이 강남에 집 한 칸 가져보고 싶다 하겠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언니와 엄마가 말하기론 나의 8세 이전의 우리 가정은 경제적으로나 분위기적으로나 참 행복했다고 한다. 불행히도 8세 이전의 기억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잦은 불화를 보며 늘 불안했고 마음이 힘들었으며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 시절의 나는 제발 부모님이 싸우지만 않으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았다. 조금 커서는TV 속에서나 봤던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적어도 더 훌륭한 어른이 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14년의 결혼생활 동안 서로 맞춰가면서 투닥거릴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너무 좋다. 나의 아이들은 내가 그 나이에 겪었던 가정에서의 불안을 겪고 있지 않고 화목한 가정 속에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다. 서로 사랑을 표현하고, 함께 놀며 시간을 보내고, 식사하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깔깔깔 웃는, 내가 꿈꿔왔던 가족의 모습이다. 너무 행복하고 좋다.
그런데 문득문득 과연 이것으로 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사랑만 줘도 되는 건지.. 아이들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말 어느 날 하루종일 티브이나 보면서 놀고 나면 그 생각은 더 커진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하고.
다른 가정처럼 거실에 TV를 없애고 책장에 책을 가득 꽂아두고 아침마다 경제신문을 함께 읽고 토론해야 할 것만 같다.
방학 때마다 해외로 나가 견문을 넓히고 다양한 경험을 해야 될 것만 같다.
과자나 인스턴트식품은 손도 못 대게 하고 유기농으로 길러진 자연식품들로만 먹여야 될 것만 같다.
건강한 마음은 건강한 신체에서 오는 법. 태권도, 유도, 검도 같은 거 하나 정도는 수준급으로 배우게 하고 주말엔 온 가족이 함께 달리기라도 해야 될 것만 같다.
지금보다 더 나은 가정의 모습이 있을 것만 같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첫째가 태어나고 일주일 후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 제발 건강하게만 퇴원하고 건강하게만 자라달라고 울면서 기도했다. 지금 첫째는 아주 건강하다. 아주 건강한데.. 건강하기만 하다. 하하하
아이가 건강해서 감사하고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고 하면서도 한 번씩 이런 상상은 해본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해서 전교 1등 팍팍하고, 장학금 받고 대학 들어가 수석 졸업하고, 돈 많이 벌어서 우리한테 차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는 그런 아들이면 좋겠다는 상상. 아니면 연예인? 하하하핳하
그래서 이렇게 건강하기만 아이를 이대로 두어도 괜찮은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학원에라도 보내야 되나 싶고 공부가 영 아니면 노래나 연기라도 연습시켜야 되나 하고 말이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삶의 모든 조건이 좋아지지만 그와 동시에 당신의 기대치가 똑같이 빨리 높아지는 탓에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딱한 삶인가.
- 불변의 법칙 p.79
불변의 법칙에서 행복을 위한 원칙은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라고 말한다.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 세계의 자기 계발서에 원하고 바라는 것을 크게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꿈꾸라고 말하는데 기대치를 낮추라니?
부와 행복은 가진 것(현실)과 기대하는 것(기대치)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실과 기대치는 같거나 현실이 기대치보다 크면 만족과 성취감을 느끼고 현실보다 기대치가 커버리면 평생 괴롭게 된다고 말한다.
즉, 원하는 것을 낮추라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가졌을 때 삶에서 기대하는 것을 낮춰야 된다는 말이었다.
내가 10억을 벌고 싶다 꿈꾸고 상상하고 결국 이루었다고 가정했을 때 나의 기대치는 10억을 벌면 나의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겠구나 정도여야지 패리스힐튼처럼 살 수 있겠구나 하면 안 된다는 것일 테다.
난 그동안 바라던 현실보다 더 큰 기대치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쥐가 없는 집을 원했으면서 공주 같은 방을 가진 소녀를 기대했고 행복한 가정을 원했으면서 완벽한 가정을 기대했고 건강한 아이를 원했으면서 공부도 잘하는 아이를 기대했던 것이다.
더 나은 현실을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 (잘할수 있을지 모르겠지만)기대치를 잘 관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