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책 상징 읽기
레오 리오니 글.그림 최순희 옮김 / 시공주니어
돌담 속에 들쥐 가족이 살고 있었다. 겨울이 가까워지자 프레드릭을 제외한 나머지 들쥐 가족은 식량 모으는 일을 열심히 했다. 식구들이 프레드릭에게 넌 왜 일을 안 하느냐고 묻자 그는 자기도 일하는 거라면서, 춥고 어두운 겨울날을 위해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은다고 했다. 겨울이 되어 식량이 떨어진 들쥐 가족은 프레드릭에게 네가 모은 것이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 프레드릭이 햇살 이야기를 하자 들쥐들은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색깔을 가진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자 들쥐들은 마음 속에 색깔들을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프레드릭이 시를 읊자 들쥐들은 감탄한다.
앞 표지엔 작은 바위 틈에 쥐 한 마리가 있다. 이 쥐가 주인공 프레드릭이다. 반쯤 감긴 눈에 미소 띤 얼굴이다. 눈 앞에 있는 대상을 응시하는 게 아니라 뭔가를 꿈꾸며 행복해하는 듯 보인다. 그가 높이 들고 있는 꽃 한 송이가 있다. 이 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책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겠다.
버려진 곡식창고 근처 돌담에 들쥐 가족이 살고 있었다. 겨울이 가까워지자 작은 들쥐들은 월동준비로 바쁘다. 프레드릭만 빼고 그들은 모두 밤낮으로 일했다.
들쥐네 가족은 작년 겨울까지만 해도 겨울나기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 그들의 둥지는 농가의 곡식창고 가까이 있어서 언제든 먹을 것이 풍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 나쁘게도 농가가 이사를 가 버리는 바람에 상황이 달라졌다. 겨울에 먹을 식량을 미리 마련해 놓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게 뻔한 일이었다.
겨울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겨울은 춥고 어두우며 모든 것이 회색으로 바뀐다. 즐거울 일이 없는 시기이다. 인생의 겨울도 마찬가지다. 뜻하지 않은 때에 인생이 춥고 어두워질 수 있다.
들쥐 가족은 모두 식량을 구해 나르는 일에 열심을 낸다. 그런데 식구 중에 단 한 명 프레드릭은 일을 하지 않는다. 그림 속에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식구들과는 다르게 한 마리는 돌아앉아 눈을 감고 있다.
식구들이 너는 왜 일을 안 하느냐는 질문에 자신도 일하는 거라고 답한다. ‘춥고 어두운 겨울날을 위해 햇살을 모은다’고. 또 ‘겨울이 온통 회색이므로 색깔을 모은다’고, 그리고 ‘길고 지루한 겨울날을 위해 이야기를 모으는’ 거라고 말한다.
프레드릭은 겨울에 대한 대비가 남들과 다르다. 식량만으로는 춥고 어둡고 긴 회색의 겨울을 나기 힘들다는 것을 미리 내다볼 줄 아는 인물이다.
이쯤에서 프레드릭이 어떤 인물을 상징하는지 잠시 생각해 보고 넘어가야 하겠다. 겨울에 대비해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으는 사람이란, 살기 힘든 시간이 왔을 때 사람들에게 어떻게 따뜻함을 느끼게 해 줄까를 생각하는 사람, 알록달록 살맛나게 해 줄까를 고민하는 사람, 어떻게 희망을 갖게 해 줄까를 찾는 사람이다.
머지 않아 겨울이 닥칠 것이므로 식구들이 식량 모으느라 분주한 만큼 프레드릭도 마음이 바쁘다. 자신이 준비하는 게 식량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긴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식구들의 노동을 거들 여유가 없다. 눈을 반쯤 감고 조는 듯 보이지만 머릿속으로는 치열하다.
그런 프레드릭에게 자신들과 같은 일을 하자고, 또는 해야 한다고 다그치는 식구가 없다. 물론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의 말을 들어 주고 그대로 인정해 주고 믿어 준다. 가족은 이래야 함을 독자들에게 깨우쳐 주는 부분이다.
겨울이 되었다. 초기엔 먹을 것도 이야깃거리도 많아서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비축해 둔 식량이 바닥났고 추위는 기승을 부린다. 더 이상 말할 기분도 아니고 그럴 기운도 없다. 화기애애하던 둥지엔 침묵뿐이다.
그때, 그들은 프레드릭이 말한 것을 기억해냈다. 아, 프레드릭이 모은 건 어떻게 되었을까?
이제 프레드릭이 나설 때다. 그는 커다란 돌 위에 올라가 그들에게 눈을 감으라 하고 햇살을 나누어 준다. 햇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그의 가족은 마법처럼 햇살을 쬐는 듯한 따뜻함을 느낀다. 그들은 기대감을 갖고 색깔들에 대해서도 물었다. 프레드릭이 그들에게 온갖 색깔을 가진 식물들을 대해 묘사하자, 그들은 마음 속으로 그 색깔들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프레드릭이 모은 낱말들은? 멋진 시가 되었다. 프레드릭은 자작시를 멋들어지게 읊었다. 들쥐네 가족이 등장하는 시는 감동적이었다. 들쥐들은 환호했다. 그들은 프레드릭이 시인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겨울의 혹독함을 잊게 만드는 일, 곤궁함 속에서도 따뜻한 위로를 주고, 삶의 아름다움을 되찾게 해 주고 희망을 갖게 만드는 일, 그것이 시인이 하는 일이다.
프레드릭은 시인이다. 프레드릭의 햇살 이야기에 따사로운 햇살이 몸에 닿는 듯한 느낌, 색깔을 가진 식물들 이야기에 색깔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 이것을 우리는 '심상(心象, image)'이라고 부른다.
시인 프레드릭은 지금껏 모은 낱말들로 따뜻함과 알록달록함을 심상으로 빚어서 거기에 멋진 가락(운율)을 붙여 아름다운 시를 창조해 냈다. 그의 시는 겨울을 나느라 지쳐 있는 가족에게 기쁨과 위로가 되었다.
프레드릭은 삶의 즐거움을 구가하는 시인이 아니라, 곤궁에 놓인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시인이다. 그가 하는 일은 양식을 구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시절이 곤고할수록 시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김기석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한 태도>) 시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과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다시 책 표지로 돌아가 보자. 독자들은 이제 모두 안다. 회색의 바위 틈서리에서 프레드릭이 들고 있는 선명한 빨간 꽃은 바로 시가 주는 ‘위로와 기쁨과 희망’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