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미숙 Oct 31. 2024

14. 지하 정원

그림이야기책 상징 읽기

14. 지하 정원


                                                    글·그림 조선경 / 보림출판사


작가 조선경


  홍익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초현실주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SVA(School of Visual Arts)에서 Illustration as journalism essay로 MFA를 받았다. 1994년 귀국하여 일러스트레이션과 그림책 작업을 병행하며 특히 예술적이고 철학적인 이미지 그림책에 관심이 있다.

1995년에 <마고할미>로 제16회 한국어린이도서상 일러스트레이션부문 문체부장관상을 받았다. 그림을 그린 책으로 <마고할미>, <잔니 스키키>, <아기 돼지 삼 형제>, <혹부리 영감>,<지하정원>, <랄라라>, <In the beginning>, <The crow>, <What is it>,< 어머니 이야기> 등이 있다.  

   

작품 줄거리

  지하철역의 청소부인 모스는 터널 안을 청소하다가 땅 위로 통하는 환기구를 발견한다. 그는 환기구에 가득한 쓰레기를 치워내고 그 아래에 흙을 가져다 쌓은 다음 나무를 심는다. 나무는 환기구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과 빗방울을 받으며 잘 자라 땅 위로 가지를 뻗는다. 환기구에서 나무가 자란다는 소문이 퍼지자 지하철역은 나무를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대다가 곧 조용해진다. 누군가 환기구로 솟아오른 나무 주변 땅에 나무를 가져다 심었고 그 나무들이 자라 도시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쉼터가 된다.


작품 들여다보기


  모스는 어두워질 무렵 출근 채비를 하며 밖에 내놓았던 화분을 들여 놓는다. 비좁은 화분에 심어 놓은 나무는 뒷산 쓰레기 더미에서 가져온 것이다. 나무를 적당한 곳에 옮겨 심어야 할 텐데 하고 그는 생각한다. 집 안에 나무를 심을 공간이 없는 모양이다. 

  모스는 지하철역 청소부다. 낡은 역이지만 청소를 열심히 하며 보람을 느낀다.



  아저씨는 깨끗이 빨아서 물기를 꼭 짠 걸레로 계단을 한 칸 한 칸 닦습니다. 그러고 나면 낡은 계단도 잠시나마 옛 모습을 되찾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역 안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난나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불편했다. 그는 다음날 일찍 출근하여 계단 청소를 마치고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고인 물을 훔쳐 내고 벽에 붙은 묵은 때와 곰팡이를 벗겨 냈다. 물비누를 풀어 벽을 닦자 파란 벽이 드러났다. 모스는 매일 시간을 내서 터널 안을 청소했다. 


  그러다가 터널 벽에서 땅 위로 통하는 환기구를 발견했다. 그곳을 막고 있던 쓰레기 더미를 치우고 나자 바깥의 시원한 공기가 들어왔다. 그는 환기구 아래쪽에 흙을 쌓고 집에 있는 나무을 옮겨 심어 터널 안에 작은 정원을 만들었다. 



  모스가 역과 터널을 청소하며 지하 정원을 가꾸자 터널 안의 고약했던 냄새가 풋풋한 냄새로 바뀌었다. 사람들의 표정도 밝아지고 모스의 기분도 좋아졌다.     

  모스는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하는 것을 넘어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다. 사람을 위하는 것뿐만 아니라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긴다. 어떤 사람은 생명을 가진 나무를 쓰레기로 취급하여 버린다. 그러나 모스는 그것을 소중한 생명으로 여겨 정성 들여 가꾸고 기른다. 



  모스의 보살핌을 받은 나무는 환기구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과 빗방울을 받으며 잘 자라 가지를 환기구 덮개 위에까지 뻗었다. 생명의 힘이다.



  어느 봄날, 작은 나무는 땅 위로 살짝 가지를 내밀었습니다.

  “엄마, 엄마, 이것 좀 봐요!”

  지나가던 아이가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나무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이가 환기구 구멍 사이로 삐져 나온 나뭇가지를 신기해하는데 엄마는 들은 척도 않고 아이 손을 잡아끈다. 새로운 생명, 작은 생명체는 순수한 어린아이의 눈에만 보인다. 어른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어른들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월이 더 흘러 나뭇가지는 무감각한 어른들 눈에도 띌 만큼 자랐다.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신문과 방송국에서도 취재했으나 이 나무가 어디서 어떻게 자란 것인지, 누가 나무를 심고 돌보는지는 관심 밖이다. 일의 근원보다는 현상에만 쏠리는 현대인의 성향을 풍자하는 그림이다.

  지하철역은 수많은 사람들로 한동안 북새통을 이루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관심이 끊기고 더 이상 나무를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어른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도 무언가 화제거리가 있으면 반짝 유행처럼 몰려든다. 그러다가 관심이 급격히 식곤 한다. 현대인의 특성이다. 



  텅 빈 거리에 나무가 외롭게 서 있다. 집들이 차갑다. 문과 창이 굳게 닫혀 있다. 작은 창들은 남들과 소통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의 대변한다. 더러 노란빛의 창들이 집 내부의 따사로움을 느끼게 하지만 집 안의 광경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외부과 단절된 모습이다.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들어가 남들을 차단하고 사는 현대사회의 차가움, 메마름, 무관심, 그리고 현대인의 외로움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가로등의 따뜻한 불빛과 그것을 받아 반짝이는 나뭇잎만이 차갑게 식어 있는 거리에 생명감을 주고 있다. 



  세월이 흐른 어느 봄, 누군가가 나무 둘레의 딱딱한 바닥을 걷어 내고 새 나무를 심었다. 그 나무들이 쑥쑥 자라 그늘을 드리우고 도시를 곱게 물들여 주었다. 그곳은 도시 한복판에 사람들이 머물다 갈 수 있는 쉼터가 되었다.     


  앞의 그림과 대조가 되는 그림이다. 나무는 더 자랐고 주변의 다른 나무들로 풍성해졌다. 모스처럼 사람들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이 또 있었다. 그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나무의 생명, 사람의 생명. 그것을 위해 시멘트 바닥을 걷어 내고 새 나무를 가져다 심고 물을 주고......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나무들은 생명감이 충만한 모습이다. 어둡고 냉랭하기만 하던 도시 거리가 풍성해지고 밝아졌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여유를 즐긴다. 굳게 닫혀 있던 창이 열렸다. 생명은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한다. 도시에 생동감과 활기가 생겼다. 

  모스 한 사람이 지하에 심은 작은 나무가 강한 생명력으로 지상에까지 뻗어 올라 다른 생명체들을 불러 모으고 삭막한 도시를 생기로 가득 채웠다. 생명의 힘은 위대하다.  

   

  모스의 지하철역으로 다시 가 보자. 처음에는 다 새것이고 깨끗했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모든 게 낡았다. 청소를 깨끗이 해도 그때뿐이다. 원인 모를 고약한 냄새도 난다. 

  사람도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문득 변질되었음을 느낀다. 이럴 땐 모스처럼 터널 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신의 내면, 사회의 이면 말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깊은 곳에 더러운 물이나 묵은 때, 곰팡이가 끼어 있지는 않은지 잘 찾아서 씻어내야 한다. 즉 자기 내면에 쌓인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들, 사회의 이면에 감추어져 있는 차별이나 억압과 같은 고인물, 불신이나 대립과 같은 묵은 때를 제거해야 한다. 철저히 반성하고 고쳐야 한다. 

  그 다음엔 환기구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바깥으로 통하는 환기구가 쓰레기로 막혀 있으면 내면에 있는 자신과의 대화도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도 불가능하다. 불통한 사람, 불통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환기구를 막고 있는 쓰레기란 편협한 고정관념이나 아집, 이기심, 배타심 같은 것들이다. 이것들을 걷어낸 후에라야 너와 나를 살리는 새로운 생각이 자신 안에, 사회 구석구석에 통하게 된다. 비로소 생기가 있는 사람과 사회가 된다.

  이것은 사람들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치는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낮추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하려는 마음을 가진 어떤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모스 같은 사람 말이다.

  이것이 이 책의 상징성이다. 어린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지하 정원>이 도서관에 유아용 도서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림책이라고 무조건 어린이 책이라고 생각하는 건 속히 버려야 할 고정관념이다. 

작가의 이전글 13. 할머니의 찻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