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필심 Nov 16. 2024

조건부 사랑

못된 어른들

나는 청소년 관련 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그곳의 선생님들께 본인의 이야기를 편하게 하고

자랑할 거 있으면 자랑하는 모습을 보인다.

때로 그 아이들은 선생님들께 고민거리도 얘기하곤 한다.

그러면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정성스럽게 청소년들을 맞아준다.


부러웠다.


내 청소년 시기에는

내가 기쁠 때 같이 기뻐해줄 어른

내가 슬플 때 같이 슬퍼해줄 어른

이 거의 없었는데...


기쁜 소식을 누군가에게 공유해도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채찍질했고

슬픈 소식을 나누려 하면

내 상처를 더욱 후비파고 아프게 했다.



또 기관의 선생님들은 

청소년들이 왔으면 왔냐고 먼저 반갑게 인사해 주신다.


내 청소년 시기에는 내게 먼저 ‘반갑게’ 인사해 주는 어른 대신

내가 먼저 인사해야 ‘받아주는’ 어른들이 존재했는데...

심지어 내 인사를 안 받아주는 어른들도 많아서

내 마음에 상처가 되었는데...



‘존재’만으로 존중받고 사랑받는 그 아이들이 부럽다.

난 ‘조건부’로 겨우 사랑받을 수 있었는데...


공부를 잘해야 사랑받고

수업 시간에 모범적인 태도를 보여야 사랑받고

얌전해야 사랑받고...



조건부 사랑.


무언가를 성취해야만 스스로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고

어떤 존재가 되어야만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었다.



“OO(전교 1등의 이름) 빼고 여기 너네 다 인서울도 못 가.”

중학교 1학년 때, 과학 교사가 수업 도중 했던 발언.


반면 성적이 우수하지 못했던 내게는 교사들이

“이해력이 달린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등의 말을 뱉으며 나를 조롱하였다.


억울하고 분했다.

학업 성적이 높지 않다는 이유로 교사들로부터 무시를 당한다는 게.

전교 1등에게는 무조건적인 편애를 하는 반면, 

학업 성적이 우수하지 못한 내게는 무시하는 교사들을 학교에서 봐야 한다는 게.


그래서 다짐했다.

그 전교 1등을 따라잡겠다고.


그리고 반장이었던 그 전교 1등처럼,

교사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일종의 감투, 타이틀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그래서 중학교 2, 3학년,

반장이 되고, 

전교회장이 되고, 

전교 3등으로 올라가며, 

특목고에 합격하니


‘모범생’

‘착한 아이’

‘우등생’


교사들은 위 같은 칭호를 내게 붙여주며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지고 

나를 대하는 태도가 호의적으로 변했다.


‘나’ 다운 내 모습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보기에 좋은 모습일 때만 어른들이 나를 좋아해 주었다.

그 자체로 상처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일하는 센터의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던 못 하던

감투를 쓰던 안 쓰던,

활발하던 활발하지 않던,

수업 태도가 바르던 바르지 않던,


각자의 개성대로 존중받고

각자 그 모습 그대로 

센터 내의 선생님들께 사랑받는다.



이들과 달리,

존재 자체로 사랑받은 기억이 없는 내게는

‘관계 결핍’과 ‘공감 결핍’ 이 생겼다.


관계 결핍으로 인해

별로 안 친한 사람한테도 연락하고

별로 안 친한 사람한테도 인사하고

누군가 내게 호의적인 것 같은 반응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금세 마음이 움직이고 이들에게 이용당한다.


공감 결핍으로 인해

끊임없이 상담사들을 찾아다니며

공감을 수혈받으려 한다.

스스로에게 너무 잔인한 표현이지만

그렇게 ‘공감 구걸’을 해왔다.


나 이렇게 힘들었다고

나 이렇게 망가졌다고

제발 내 이런 힘든 모습을 알아달라고

나를 사랑해 달라고



그리고 조건부 사랑이 습관이 된 나는

아직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어떻게 갖추어야 하는지 고민을 한다.


누가 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학벌을 가져야 하나?

엄청난 경제력을 갖추어야 하나?

외모를 바꾸어야 하나?

말솜씨를 길러야 하나?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려나?


이 말을 반대로 바꾸면 다음과 같다.

나는 좋은 학벌을 갖추지 못해서 사랑받지 못해

나는 경제력이 없어서 사랑받지 못해

나는 외모가 좋지 않아서 사랑받지 못해

나는 말솜씨가 별로라서 사랑받지 못해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괴롭게 해 왔다.

글을 쓰면서도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존재 자체로 귀하고 사랑받을 자격 있다.’

라는 문장은 누구나 옳다고 명목상으로는 동의하겠지만

내가 살아왔던 삶에서 이를 실천했던 사람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