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립미술관
미술관은 어릴적부터 그리 많이 가던 곳은 아니였다. 미술관 하면 왠지 미술품에 조애가 깊거나 아니면 미술가와 관련된 사람들만 가는 곳이라 생각해서 어릴 때는 제대로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중학교 때 생각없이 가 본 현대미술관은 나에게는 큰 세상과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는 환상을 주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와 함께 미술간에 간 적이 있었다. 야외 전시물을 바라보며 “굳이 저런 걸 만드는 이유가 뭘까?” 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당시 친구는 “우리가 보라고 만든거야!” 라며 심드렁하게 대답을 했었다. 그리고 나서는 잔디밭을 뛰어다니며 뭐가 그리 좋은지 한참을 웃고 떠들었었다. 그리고 생각없이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는데, 가을의 노을 빛과 조각상이 겹쳐 보이는 게 아닌가. 아무 생각없이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조각상이 그날은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의 소망을 바라는 애절한 한 사람의 모습으로 보였다. 그리고 고백이라도 하듯이 물끄러미 나를 다시 내려다 보는 것 같은 모습에 한참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가보고 싶은 마음은 있으면서도 이런 저런 핑계를 되며 가지 않던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며 친구들과 함께 했던 스타트업에서 처음 맡은 일이 전시장 전시 담당 큐레이터였다. 당시 큐레이터는 전시품을 어떻게 전시하고 홍보물을 만들어 홍보하는 일이 주 업무었는데, ‘하필 역사전공한 내가 왜 여기서 뭘 하는 거지?’ 하며 알지도 못하는 작가의 작품을 어디에 걸어야 하고, 어떤 전시 주제를 잡아야 하는지 작가와 전문가들과 회의를 거듭하며 미술관이 얼만 역동적인 곳인지를 알게 되었다.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한 전시만을 온전히 준비하고 철거하면서 전공과 맞는 박물관으로 갔지만 그 뒤로 미술관은 혼자만의 생각할 것이 있거나 지칠 때면 찾아오는 곳이 되었다.
결혼 후 미술관은 아이가 볼 수 있는 곳으로만 다녔다. 딸아이는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미술관만 가면 뭐가 그리 좋은지 까르르 거리며 멀뚱멀뚱 작품을 한참을 바라보곤 했다. 그때마다 나 또한 작품세계에 빠지곤 했다. 그런 아이가 크면 클수록 미술관은 아이에게 자신의 그림 소재가 되거나 아이디어를 얻는 곳이 되었다. 요즘도 아이패드 하나 딸랑 들고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그리는 딸아이 때문에 자주 미술관에 간다. 그런데 항상 집 주위에 미술관이 있음에도 멀리 다니는 걸 알게 되었다. 주중에 수원 화성 서장대에 올랐다가 내려오며 더워서 들어간 수원시립미술관. 항상 행궁만 들렸다가 휙 지나가는 곳이었는데, 널디 넓은 한 공간에서 더위를 식히며 둘러 보게 되었다.
수원의 역사와 문화를 그대로 투영한 전시를 하는 곳이 바로 수원시립미술관이다. 이번 전시는 실과 관련된 전시를 하고 있었다. 실 하면 우리는 실로 뜬 물건이나 혹은 방직을 생각하게 된다. 수원은 다른 곳과 달리 노동과도 굉장히 관련이 높다. 생각없이 온 이곳에서 실과 노동의 연결된 전시회를 보면서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수원은 모그룹의 본사가 처음 있었던 곳이고, 당시에는 전자가 아닌 방직공장을 운영했었다. 대부분의 노동자가 여성으로 이루어졌었고, 그러다 보니 집안 일과 회사 일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여성들의 삶은 어쩌면 더 팍팍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시회는 여성의 노동착취부터 자식을 보살피는 모든 걸 실이 옷이 되고, 가방이 되는 과정과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우리의 삶도 어쩌면 저런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수원의 대표적인 미술가인 나혜석이 생각이 났다. 그녀가 쓴 화홍문 루상에서 쓴 냇물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냇물
나혜석
쫄쫄 흐르는 저 냇물
흐린 날은 푸르죽죽
맑은 날은 반짝반짝
캄캄한 밤 흑색같이
달밤엔 백색같이
비 오면 방울방울
눈 오면 녹여주고
바람 불면 무늬지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밤부터 새벽까지
춥든지 덥든지
싫든지 좋든지
언제든지 쉬임 없이
외롭게 흐르는 냇물
냇물! 냇물!
저렇게 흘러서
호(湖)되고 강되고 해(海) 되면
흐리던 물 맑아지고
맑던 물 퍼래지고
퍼렇던 물 짜지고
냇물!! 수원은 수원천이 흐른다. 흐르는 냇물을 바라보며 나혜석은 집안에서의 가정사와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을 것이다. 요즘 거의 가정주부처럼 사는 나에게도 가정주부와 연구자로서의 모습이 함께 보이는 듯 하다. 미술관은 누구에게나 영감을 주는 곳은 아닐까? 어쩔 땐 미술관에서 삶을 돌아보는 건 어떨까?
<수원시립미술관>
경기도 수원시 신풍동 행궁 바로 옆에 있는 수원시립미술관은 2015년 수원의 많은 작가들의 염원을 담아 건립되었다. 화성행궁과 팔달산, 팔달문, 장안문 사이에 길제 늘어진 도시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통로이다. 콘크리트 시공을 기초로 송판 무늬를 차용하여 현대와 자연의 조화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고 한다.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전시를 돋보이게 하였더고 한다. 역사의 현장이 행궁과 함께 수원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미술관도 관람하면 참 좋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