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냉이가 가득한 된장찌개를, 여름에는 얼음 동동 올라간 콩국수를, 가을에는 공원 돗자리 위에서 먹는 닭강정을, 겨울에는 천막을 들춰 들어가 사 먹는 붕어빵과 호떡이 나를 웃음 짓게 한다. 제철에 맞는 음식이 있다. 그 계절이 되어야만 등장하는 것들도 있고, 그 계절에 맛을 봐야 더 풍미가 가득한 게 있다.
제철 음식과 마찬가지로, 오직 그 계절이 되어야만 보이는 꽃들도 있다. 봄에는 누가 뭐래도 벚꽃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전국적으로 벚꽃 명소 지도가 생길 정도로 한 달 정도 반짝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비와 바람에 날려 바닥에 수북이 쌓인다. 들었던 이야기로, 벚꽃에 흥미가 잃게 된다면 나이가 든 거라고 한다. 생애주기로 빗대어보면 청춘에 해당하는 벚꽃, 아직 싱그럽게 느껴진다. 그런 벚꽃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돗자리를 챙겨 소풍을 떠나야 한다. 강렬한 태양을 닮고자 하는지 꽃들의 색도 더 짙어지는 느낌이다. 특히 색색의 장미와 수국은 마음을 간드러지게 한다.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어 사진을 찍도록 한다. 홀로 있어도 아름답고 모여 있어도 색을 잃지 않는다. 여름은 장미와 수국을 꼭 봐야 한다.
가을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은 코스모스다. 줄기와 이파리는 로즈메리를 닮았다. 유려한 곡선을 선보이는 코스모스의 자태를 감상하다 시선을 더 위로 올리면 코스모스의 꽃을 볼 수 있다. 흰색, 보라색 코스모스가 보여주는 풍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산책을 할 때 코스모스가 보이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무언의 응원을 보내고 있는 듯한 코스모스를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겨울에는 곳곳에 만개한 눈꽃을 보는 재미가 있지만, 짙은 빨간색이 돋보이는 동백꽃을 봐야 한다. 공교롭게 겨울 제주도 여행을 종종 갔다. 갈 때마다 들른 동백꽃 명소는 시기를 잘 맞춰가야 한다.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라 동백꽃 시기를 놓치면 아름다운 꽃을 보기 어렵다. 날이 좋은 시기를 인내한 동백꽃은 매화와 같이 눈치 게임에 성공한 듯하다. 겨울 하면 떠오르는 동백꽃은 한 계절을 대표하는 꽃이 되었다.
계절마다 피는 꽃을 기다리고 구경하는 재미로 시간을 보내고 싶다. 각진 건물숲과 사람을 싣고 다니는 철물이 가득한 풍경이 아닌, 울퉁불퉁한 곡선이 펼쳐진 하늘색과 푸른색의 세상에 살고 싶다. 가끔 하늘과 초록이 가득한 세상에 발을 담근다.
녹음 아래에서 살랑살랑 부는 부는 바람을 맞고 있노라면, 과거 선조들께서 자연을 사랑한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이 마음속 짐을 덜어가 주는 것 같고, 풍경 안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 우거진 나무들 아래에서 계절마다 피는 꽃을 떠올리고 맛있는 닭강정을 한 입 먹는 상상은 저절로 웃음을 짓게 만든다. 이게 천국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