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떠날 거야, 항저우
愛와 憎_0
항저우와의 첫 만남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나와 중국, 그러니까 중국어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부터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너무 오래전 이야기라, 너무 구구절절한 것 같아서 매번 얼렁뚱땅 설명하고 넘어가던 이야기다.
중학생 시절,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가 보낸 영어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조금은 장난스럽던 영어 선생님께서 같은 반 친구한테, ‘너 중국어 배운다면서? 한 번 해봐!’ 하면서 중국어를 시키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 친구가 중국어를 몇 마디 했는데, 어찌나 우아하고 예쁘던지. 그 길로 중국어가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한테 중국어 학원에 보내달라고 했다. 난 기억나지 않지만, 보통 몇 번 말하다가 마는데 내가 몇 달을 보내달라고 했단다. 그렇게 영어 학원에서 우연히 들었던 중국어가 너무 예뻐서 중국어에 호기심이 생겼다.
나는 보내달라고 했는데, 엄마가 딱히 별 반응도 없고 안 보내주길래, ‘아- 중국어 못 배우나 보다’ 했다.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엄마가 중국어 학원으로 날 데리고 갔다. 그 시절은 한국에서 중국어 붐이 불고 있었고, 그 덕분에 원어민 선생님이 지방 학원에도 꽤 많았다. 그렇게 나는 발음은 원어민 선생님께 배우고, 그 뒤로 열정 넘치는 원장 선생님께 1~2년 정도 중국어를 배우게 되었다. 생각보다 중국어는 너무나 재밌었고, 나도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 거의 책을 그대로 다 외우면서 중국어를 쭉쭉 흡수했다. 그래서 중국어만큼은 같이 배우던 언니 오빠들한테도 뒤지지 않는 정도가 되었다. 그쯤 전북권에 외국어고가 새로 생겼는데, 원장 선생님이 외국어고를 노려보자고 꼬실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여느 일반 가정집처럼, 우리 가족도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수능 과목 외의 다른 것에 시간 쓰는 걸 반대했다. 정말 과하게. 얼마나 과했냐면, 온 친척들이 다 합심해서 날 포기하게 만들었으니까. 그 반대에 화가 잔뜩 났던 나는, ‘그래, 앞으로 다시는 중국어 쳐다도 안 본다’의 방법으로 복수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선택했지만, 삐딱한 태도로 들었고, 시험도 대충 봤다. 뭐, 삐딱하게 듣고 시험을 대충 봐도 이미 몇 개 안 틀리는 수준이었지만. 대학교 입학 후에도 중국어는 쳐다도 안 보고, 중문과 근처에도 안 가고, 중국 문화 체험 따위도 쳐다도 안 봤다.
그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정말로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지만, 많이 뜬금없이 중국 문화 체험을 신청했다. 학교에서는 다양한 학과 참여를 원했던 건지 뭔지 그게 덜컥 됐고, 난징으로 1개월짜리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다녀오게 되었다. 오랫동안 하지 않아서 많이 까먹고, 발음도 성조도 엉망이 되었지만 그래도 해둔 것이 있어서 수월하게 따라갈 수 있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나는 또다시 급속도로 중국어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중문과 복수 전공 신청, 교환학생 신청까지.
그렇게 정신 차려보니 이번에는 하얼빈이었다. 1년 교환학생 과정이었고, 하얼빈으로는 2명이 선발되어 보내졌는데, 독특하게도 이번 교환학생 선발에서 유일했던 타과생 2명이 같이 하얼빈으로 오게 되었다. 어쩌면 그래서 서로를 더 이해하고 의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그 친구는 이미 중국 체류 경험이 있어서 중국어도 유창하고, 중국 현지 상황에 밝았다. 나는 뭔가 힘숨찐의 느낌으로 어리바리하게 학교에 도착했고, 역시나 같이 온 듬직한 친구의 도움으로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첫 학기에는 입문 수준의 어학당 수업을 들었다. 아직 중국어는 잘 못하고, 낯도 가리고, 소문자 정도의 I이지만, 이 모든 것보다 호기심이 앞서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저녁, 캠퍼스 산책을 하는데 묘기 롤러스케이트를 연습하는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신기하기도 하고 나도 같이 하고 싶어서, 못하는 중국어로 ‘그거 뭐야? 어디에서 살 수 있어? 나도 같이 할 수 있어?’를 시작으로 그 무리에 끼게 되었다. 웃긴 건, 친구들이 ‘넌 어차피 곧 가니까 롤러스케이트 굳이 사지 말고 우리랑 놀자’고 해서, 롤러스케이트는 1년 내내 구경만 했다. 암튼, 그 친구들 덕분에 나는 중국어도 빠르게 늘고, 중국 친구들의 대학 생활을 같이 즐길 수 있었다.
하얼빈에서 1년이 너무 좋았고, 중국 친구들의 무한 격려로 용기도 차올랐고, 나도 1년은 너무 아쉬워서, 내 전공으로는 잘 오지 않는 중국으로의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럼 내 원래 전공과 복수전공이었던 중국어까지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오만했지. 본래 전공에서 중국으로 유학은 워낙 드문 일이라 조언을 구할 선배는 당연히 없었다. 그래서 혼자서 찾아보고 지원했다. 그런 것 치고는 운 좋게 항저우로 유학올 수 있었다.
2014년 9월 14일, 항저우에 도착했다. 사실 이때가 처음은 아니고 난징 어학연수 프로그램의 일부로 짧게 항저우로 여행을 왔었다. 여행으로 왔던 항저우는 좋았다. 커다란 나무, 바다 같은 호수, 과하지 않게 번화한 거리. 게다가 우리가 갔던 날에는 쉽게 보기 어렵다던 눈이 소복하게 쌓인 항저우를 볼 수 있었고. 눈 때문인지 뭔가 들뜬 도시의 분위기, 같이 갔던 좋아하는 친구들, 여행이라는 설렘, 신기함이 복잡적으로 적용해서 항저우에 대한 첫인상은 참 좋았다. 그래, 여기까지였다. 다시 항저우에 도착한 날부터 시작한 멘붕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까.
좋았던 기운을 앞에 너무 몰아서 쓴 탓일까? 항저우 음식은 온통 밍숭맹숭한 맛들 뿐인데, 나는 이곳에서 12년째 인생의 매운맛과 쓴맛을 보고 있다. 정말이지 애애증증증의 항저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