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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kir Jun 14. 2024

사람이 좋아서 사람이 싫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의 이야기

어릴 때부터 나는 남들과는 조금 달랐다.

또래보다는 어른이 편하고 말이 잘 통했다.


당시 사람 사귀는 것의 필요성을 못 느껴서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사람들과의 활동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렇게 지내더라도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다 보니 사람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순간은 사라지지 않았 오히려 내 주변에 사람이 없으니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도 없어 그 상처를 회복하기는 훨씬 어려웠다.


평소 고민이 많아 인터넷에 있던 고민 상담 카페에 상담을 부탁한 적이 있는데, 그분은 내가 '사람을 정말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그 반대라며 적극 부인했지만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건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혐오라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는데, 무언가를 혐오한다는 것은 너무 불결하게 느껴져서 닿기만 해도, 보기만 해도 싫은 것이다. 끔찍이 싫으니 당연히 평소에도 그것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하지만 나는 사람에게 그런 마음을 느끼지는 않았고 일상에서도 타인을 배려하며 잘 지내고 있었으며, 한때 내 머릿속에는 사람에 대한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사람이 싫다면서도 내 고민에 도움을 받고자 다른 사람을 찾았네?'


사람을 받아들이는 내 생각과 행동에 모순을 느끼고 과거를 되돌아보았더니, 나는 사람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았고 기대가 높은 만큼 상처를 많이 받아왔었다.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하는 상황이 수차례 반복되니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사람이라는 존재를 회피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깨달았지만 딱히 변하는 건 없었다.

나는 내 성향이 사회적으로 소수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크게 외로움을 느끼지도 않던 나는


'나와 잘 통하는 사람을 찾는 과정에서 다시 상처받는 상황을 견뎌낼 가치가 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회피해 버렸다. 아니, 적어도 주변 사람들이 성인이 되기까지를 기다렸다. 어른들과는 잘 통하고 있었기에 주변인들이 성인이 되어 성숙해지면 잘 통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이후 대학생이 되었으나 딱히 달라진 게 없었고, 오히려 더 문제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조금 더 기다렸다. 대학생은 고등학생과 별 차이가 없을 수도 있는 거니까.


'사회에 진출하게 될 즈음에는 뭔가 달라지겠지'


직장에 다니게 되는 순간까지 기다렸으나 내 기대는 무너졌다.

사람은 어린 시절에 수준이 정해져서 변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버리고서 회피하는 삶으로 돌아갔다.


사람에 대한 희망은 사람에 대한 절망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은 사람에 대한 증오로 바뀌었다.


사람이 가소롭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서웠다.

사람이 사라지길 바랐지만, 한편으로는 곁에 있어주길 바랐다.


모순되는 감정과 생각들은 서로 더 큰 충돌을 일으켜 나를 힘들게 했다.



비슷한 나이대 사람을 대할 줄 몰라서 그런 걸까.

나를 직접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나이 차이가 별로 없다 보니 

좋은 평가를 바라기도 어려웠고 결국 나는 무너져 내렸다.


하지도 않은 일들로 온갖 누명을 쓰고 커리어는 박살이 나

강제로 꿈을 포기하게 되었고, 사회가 원망스러웠다.


인간이 모여 집단이 되고, 집단은 사회를 이룬다.

사람에게 당한 상처는 자연스럽게 사회에 대한 분개로 이어졌다.


'실력중심 사회인 줄 알았더니, 실적중심 사회였어'

실력은 내 것이고, 실력이 있어야 실적을 낼 수 있지만

실적은 갈취당할 수 있는 것이었다.


'능력중심 사회인 줄 알았더니, 자격중심 사회였어'

능력은 내 것이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어떤 기회도 연결되지 않았다.

반면 자격이 있다면 능력이 없어도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마음은 끊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몸도 망가졌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데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살고 싶어서 방문을 보호막으로 삼아 견뎌내기로 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요즘 표현으로 은둔형 외톨이처럼 지냈다.


'왜 나만 이렇게 다른 걸까?'

나에 대해 알아가고 싶었고 과거를 되짚으며 나에 대해 하나 둘 정보를 습득해 나갔다.

내가 왜 힘들 수밖에 없었는지, 어떤 선택이 잘못된 길로 나아가게 했는지,

앞으로 어떤 기회를 공략해 볼 수 있는지 조금씩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렇지 못했나 보다.

깨달음을 얻으며 치유되어 가고 있다고 느낄 때쯤 병원에 끌려갔다.


너무 억울했다.

'당장 이틀 전에도 구인 공고를 확인하고, 계획을 짜서 공부도 하고, 운동도 시작한 참이었는데..'



하지만 그 사건은 나에게 긍정적인 결과로 작용했다.


운이나 재능의 중요성 외에도 노력의 중요성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근면성실하게 지속한 사람에게 찾아오게 될 성취는 달콤하다.

아무리 처음 실력이 좋아도 지속하지 못하면 달콤함을 맛볼 수 없다.


세상은 내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내 주변에 일어난 일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현재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 역시 노력을 지속하는 것이었다.


하나의 세상에도 여러 사회가 있고 조그만 땅에서도 옆을 돌아보면 나와 맞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했다.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고자 노력하는 건 충분히 고생할만한 가치 있는 일이었으며, 진정성 있는 관계를 원한다는 이유로 인간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고 여겼던 나의 문제를 깨달았다.


나는 온실 속 화초이자 우물 안 개구리였으며 타고난 재능에만 의존하며 노력의 중요성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살아가다 보면 또다시 상처받게 될 수도 있고 그 상처가 연달아 찾아오며 포기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인내해 낸다면 우리는 결국 성숙해지고 성장할 것이다.



나는 사람이 좋아서 사람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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