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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환대가 흐르는 집

온삶집

by 아공간

따뜻한 환대가 흐르는 집, 온삶집


Episode.2

Text | Chanho Hwang

Photos | Chanho Hwang



연남동의 한 골목, 오래된 건물 사이로 마주한 집에는 유난히 따스한 온기가 감돌았다.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이라는 책에서 영감을 받아 이름 붙인 ‘온삶집’은, 그 이름처럼 삶의 결을 고스란히 품은 공간이다. 10년의 시간이 고요히 쌓인 이곳에서 손민정(브리스)은 온삶집이야말로 자신을 가장 닮은, 가장 자신다운 공간이었다고 말한다. 이곳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환대와 나눔의 기억은 오랫동안 머무를 듯하다.



간단하게 본인과 공간을 소개해 주세요.

2007년부터 ‘브리스’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는 손민정입니다. 로마 여성 브리스길라의 이름에서 따온 이 별명에는 ‘숨을 쉰다’는 뜻이 담겨 있어요. 저는 지난 20여 년간 교육 기획과 교육 디자인을 해오며, 교육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함께 배우는 일을 해왔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공간의 이름은 ‘온삶집’이에요. 파커 J. 파머의 책 제목에서 영감을 받아 지었는데, 완벽함이 아니라 온전함을 향해 가는 여정을 담고 싶었어요.




온삶집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해 주세요.

이곳에서 산 지도 어느덧 10년이 되었네요. 결혼 후 살게 된 집이지만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많은 사람들을 환대하는 장소가 되기도 했어요. 편히 와서 마음을 나누고, 함께 머물며 이야기하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재밌는 건, 이 집을 찾을 때 남편과 함께 현실적인 조건과 관계없이 바라는 것들을 자유롭게 적어본 적이 있어요. 솔직히 써놓고도 말도 안 된다며 웃어넘겼는데 신기하게도 이 집이 조건을 대부분 갖추고 있더라고요.



어떤 조건이었는지 궁금한데요.

정말 터무니없는 조건들이었어요. (웃음) 대출 없이 구입할 수 있고, 교통이 편리했으면 좋겠다고 적었죠. 그 밖에도 좋은 집주인, 큰 창문과 좋은 채광, 깔끔한 인테리어, 안전한 치안, 주변 산책길까지 원했어요. 남편은 한술 더 떠서 옥상까지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놀랍게도 이 집의 옥상이 저희 전용 옥상이었어요. 오래된 빌라지만 우리가 원했던 조건을 거의 다 갖춘 집이었죠.





정말 듣고 보니 모든 조건이 대부분 맞아떨어지네요.

시간상 이 자리에서 10년의 이야기를 모두 풀어낼 순 없겠지만 참 고맙고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죠. 곧 이사를 가는데, 너무 아쉬워서 집주인 노부부와 부둥켜 울기까지 했을 정도니까요. 그들은 10년 동안 한 번도 월세를 올리지 않았어요. 저에겐 너무 감사한 분들이죠.





이 집에 많은 분들이 오셨던 거 같아요. 주로 어떤 분들이 여기에 왔나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어요. 가까운 친구들은 물론이고, 개인적인 모임이나 우연히 친해진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이 공간에 녹아들었죠. 한 번은 단골이던 책방 사장님께 “꼭 한 번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라고 소개받은 친구와 밤을 새워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그 만남을 계기로 또 다른 친구를 데려오고, 그렇게 인연이 이어지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됐죠.


제가 운영하는 북클럽도 비슷한 흐름으로 이어졌어요. 처음에는 1:1로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는 소규모 모임이었는데, 자연스럽게 북클럽 형태로 발전해 지금은 6기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모집이나 홍보를 한 적은 없지만, 참여자들이 “이 사람도 함께하면 좋겠다”며 자발적으로 소개해 주면서 점점 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어요. 디자인을 하는 분, 인재 개발을 하는 분, 시사 잡지에서 사진을 찍는 기자까지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만나고 연결되었어요.





모임은 주로 어떤 분위기에서 이뤄졌나요?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고 따뜻한, 그런 분위기였어요. 너무 심각하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균형을 유지하는 공간이었죠. 그렇다고 파티 같은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진지한 대화도 하고, 유쾌한 웃음도 터지는 곳이었습니다.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위치나 물건도 궁금해요.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바로 거실에 지금 제가 앉아 있는 자리예요. 이곳에서 차를 마시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거실에 있는 책장을 정말 아낍니다. 인연이 닿은 목수님이 저를 위해 최소한의 금액으로 제작해 주신 건데 제가 가진 책을 고려해서 칸의 높이를 조절하고 칸수를 줄여 맞춤 제작해 주셨거든요.

또 하나 소중한 건 제 동생이 찍은 사진이에요. 지금은 동생이 아파서 사진을 찍지 못하지만, 그 사진을 보면 애정이 담겨 있어 더욱 의미가 깊어요.






이 집을 꾸미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가 있나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새것을 최대한 사지 않는 것’이었어요.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기존 물건을 고치거나 다시 사용하는 걸 선호했죠. 어릴 적 자취할 때 쓰던 물건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고요. 필요한 건 중고로 구하거나 버려진 물건을 수선해서 사용했어요.

인연이 닿아 생긴 물건도 많아요. 그중 하나가 거실에 있는 도마인데, 비행기에서 만난 목수님을 우연히 제가 일하는 곳에서 만났거든요. 그때 선물 받은 거예요.





인복이 굉장하신 거 같아요, 조금 부러운데요.

그런가요?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많이 하셨대요. 저는 사실 사람 자체를 막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거든요. 인간관계에서 애쓰거나 억지로 만드는 게 없는데도, 자연스럽게 좋은 인연들이 이어지는 것 같아요. 지금 이렇게 인터뷰하고 있는 이 순간도 그렇고요.



이제 곧 여길 떠나시잖아요. 기분이 어떠세요?

솔직히 몇 주 전이었다면 이 질문을 듣고 울었을 거예요. (웃음) 떠나는 것이 확정되고 나서 많은 분이 다시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사진도 찍으면서 애도의 시간을 가졌어요. 이제는 새로운 공간에 집중하려고 해요. 여전히 슬프고 아쉽지만, 좋은 이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는 집이 단순한 거주 공간일 수 있는데, 이 온삶집은 의미가 남다른 거 같아요.


이 집은 제 삶에서 가장 나다운 공간이었어요. 사람마다 공간이 가지는 의미가 다 다르겠지만, 저에게 온삶집은 단순한 집이 아니었어요. 누군가에게 집은 투자 수단이거나, 단순히 잠만 자는 공간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에게 이곳은 제 삶을 꾸려나가는 힘이 되어 준 공간이었습니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항상 열려 있는 공간이었고요.






새롭게 이사하는 곳에서는 어떤 것을 기대하고 있나요?

새로운 곳에서는 거주 공간과 모임 공간을 분리했어요. 온삶집에서 이어가던 북클럽과 모임을 계속할 예정이고, 익숙한 느낌을 주기 위해 이곳의 가구들도 그대로 가져가려 해요. 여전히 그곳은 ‘브리스의 거실’이 될 거예요.

또한, 다회 모임과 반나절 북스테이 같은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에요. 한국 사회에는 침묵하고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새로운 공간이 그런 콘텐츠를 만들어 가며, 사람들이 연결되는 ‘베이스캠프’가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해당 인터뷰는 금전적 대가를 받은 광고가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아래 사이트에서 인터뷰에 수록되지 않은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hwangchanho.com/onsa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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