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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혜 Jul 01. 2024

I ♥ PT

프롤로그: 내향인은 큰 용기가 필요해서

“네. 결제할게요.”


  단 몇 초 만에 1,260,000원이 결제되었다.

복잡한 이 감정. 내향인은 속으로 이거 잘한 건가, 호구된 건가, 몇 번 나오고 못하면 어떡하지, 

안 맞는 트레이너 만나면 어떡하지, 남자 트레이너는 부담스러운데, 혼자 운동 다닐 수는 있는 건가 등등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한다.

에라, 모르겠다. 이미 주사위는, 아니 돈은 굴러졌다.


  나는 극 I의 성향을 가졌다. 

MBTI(성격유형검사) 테스트를 하면 10번 중의 9번은 I(내향성) 성향이 나타난다. 

언젠가 한 번 E(외향성) 성향이 나온 적이 있는데, 그때는 텐션이 아주 높았을 때였다.

  아무튼 대문자 I 성향으로 살아온 내게는 헬스장 또한 진입장벽이 높다.

내 생각에 헬스장은 울끈불끈, 늘씬날씬 쭉쭉빵빵 몸짱들이 모여있는 인싸들의 성지이기 때문이다(벌써 쿵쿵쾅쾅 음악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런 내가 PT를 시작하게 된 건 논문의 노예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학업과 직장을 병행하면서 온갖 핑계는 다 대며 살았다. '힘들어서', '우울해서'라는 이유로 보상심리가 작용했는지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다 먹어가면서 암흑의 시절을 버텨냈다. 운동 또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멀리해 왔다.

  그러는 동안 좋아했던 청바지보다 밴딩이 있는 바지만 찾게 되고 살은 살대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암흑이 걷히고 마침내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어서' 운동을 못한다는 핑계는 적용되지 않았다.

  미루고 미루고 미루고 또 미뤄왔던 운동을 시작하기로 다짐했다. 

근데.. 어떤 운동을 하지? 요즘 젊은이들은 PT를 많이 하던데. 근데 너무 비싸. 근데 또 효과는 있나 봐. 근데 나도 할 수 있을까? 

헬스장 기구 사용법을 알게 되면 나중에라도 나에게 좋지 않을까? 등등 백만 가지 생각을 하다가 '그래 나도 PT 해보자!'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PT는 나의 운명이었나 보다. 직장 점심시간에 밖에 나가니 마침 아주머니들이 회사 근처 피트니스 전단지를 마구마구 나눠주고 계셨다. 

전단지에는 ‘최고의 서비스’, ‘최고의 강사진’, ‘골프, 사우나, 수영장 완벽 구비’, ‘1,000평 헬스장’, ‘최신식/최고급 머신’, ‘특별 대박 이벤트’ 등등 ‘너 이래도 안 와?’라는 느낌을 풍기며 누구나 혹할만한 문구들이 도배되어 있었다.

  흠. 직장 근처면 퇴근하고 바로 가게 될 테니까 자주 갈 수밖에 없겠지. 

근데 그러면 또 집에 언제 가지?라는 생각과 함께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 

그렇게 집 근처로 헬스장을 알아보다가 세 군데의 헬스장이 후보에 올랐다. 알아본 결과 PT는 보통 1회 5~7만 원 정도인 듯했다. 

그런데 그중 한 곳에 '1회 4만 원'이라는 홍보가 있었고, SNS로 살펴보니 시설도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운동복, 수건 제공!'.

  사실 헬스장에 다니게 되면 어떤 옷을 입어야 될지도 고민이다. 

예쁘고 기능 좋은 운동복이 많이 나오면서 부가적인 것들에 비용이 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1회 4만 원, 운동복 제공, 수건 제공, 집과의 거리 5분!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었던 나는(여기서 의심을 했었어야 했다) PT 상담을 예약했다.


  퇴근 후 저녁, 예약상담을 한 당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당당한 척, 쫄지 않은 척을 하며  ‘호구되지만 말자.’를 되뇌면서 헬스장 문 앞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PT상담 예약했는데요~”

헬스장 데스크에는 인형 같은 속눈썹을 깜빡이고 화려한 네일아트를 한 매니저님이 “이쪽으로 오세요^^”하며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왜 PT를 하려는지, 헬스장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등등을 이야기하고 제일 중요한, 금액이 나와 있는 가격표를 보았다. 

  난 오기 전에 '1회 4만 원'에 꽂혔었고 대충 20회 정도를 예상하며 계산을 했는데 안내를 듣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그런데 저 인터넷에서 1회 4만 원이라는 글을 보고 왔는데 아닌가요?”

“아, 회원님^^ 4만 원은 해피타임(사람들 이용이 적은 낮 시간을 말하는 듯하다)에만 적용이 되는 거라서요^^”

  ... 아... 낚였다.. 낚인 거였다.. 어쩐지..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든다 싶었다.....

뿐만 아니라 PT 이용 따로, 헬스장 이용 따로 비용이 든다고 하는 것이다.

.. 예상보다 훨씬 초과되는 비용에 멘붕이 왔다.

어떡하지. 큰 결심하고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 도 없었다.

PT 횟수를 늘리고 헬스장 이용 개월 수를 더 늘리면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는 매니저님의 유혹이 있었지만(총액은 더 비싸잖아요),

PT 20회 + 헬스장 3개월만 먼저 이용해 보겠다고 (나름) 단호하게 말을 했다.


  그렇게 1,260,000원..... 1,260,000원을 할부로 결제했다.

“담당 선생님 배정되면 메시지 보내드릴 거예요^^”라고 친절한 자본 미소를 짓는 매니저님의 인사를 받고 헬스장을 나왔다.


  그리고 그날 밤. “카톡!”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상대방 프로필 사진을 확인해 보니 어깨는 태평양이고 허리는 잘록한, 사람 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조각 같은, 그러니까 말로만 듣던 '역삼각형 근육' 몸을 한 사나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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