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교통의 또 다른 이름, 피서지

부다페스트의 뜨거운 더위에 쉼표를

by 김연큰

부다페스트에서는 단 하루 동안 온전히 보낼 수 있었다. 일종의 시간제한 미션 같은 상황 속에서 둘은 두 가지 티켓을 두고 고민했다. 부다페스트에서는 구매 시간부터 24시간 동안 유효한 대중교통 자유이용권(24-hour Budapest-travelcard, 이하 '교통권'으로 표기)을 살 수 있다. 예를 들어 2025년 7월 22일 오전 10시 15분에 교통권을 샀다면 다음날인 23일 오전 10시 14분까지 사용 가능하다. 대부분의 대중교통을 횟수 제한 없이 탈 수 있지만 공항버스는 이용할 수 없어 이미 시내에 있는 상황에서 이동이 잦을 때 유용하다. 한편 교통권 및 여러 관광지에 대한 혜택이 포함된 부다페스트 카드(Budapest Card)도 있다. 역시 24시간 동안 유효한 것을 살 수 있다. 물론 어떤 것도 사지 않는다는 선택지도 있다. 전날 밤에 이미 어부의 요새, 국회의사당 정도는 도보로 갈 수 있음을 알았으니 뚜벅이 여행을 고집하면 그만이다.


최종 선택은 교통권이었다. 둘은 오전에 세체니 온천에 다녀오기로 했는데 그곳을 가려면 지하철을 타야 해서 최소 두 번의 대중교통 이용이 예정됐다. 또한 전날 어부의 요새를 걸어갔을 때 오르막길로 힘들었던 기억에 이번에는 대중교통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이미 최소 3회 이용이 예정되어 있으므로 아예 맘 편히 다닐 수 있게 교통권은 필요하다 생각했다. 부다페스트 카드의 경우 세체니 온천 20% 할인 외에 활용할 혜택이 없어서 굳이 구매할 이유가 없었다. (만약 부다페스트에 오래 머물면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여러 차례 갈 것 같다면 이쪽이 좋다.) 결과적으로 이는 잘한 선택이었다.




헝가리는 전반적으로 온천이 많고 특히 부다페스트에는 '3대 온천'이 있다. 그중 하나가 세체니 온천이다. 여독도 풀 겸 오전에 일찍 다녀오기로 했다. 흔히 상상하는 뜨끈뜨끈한 온천은 아니라고 하지만 여름이니 오히려 나을 수 있었다. 둘은 이 온천 때문에 수영복을 챙겨 왔다. 그야말로 수영복'만' 챙겨 왔다. 유럽에서 물놀이할 때 래시가드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국적이 한중일 중 하나라는 말을 들어 '우리도 저들처럼 놀자!'라고 결심한 것.


세체니 온천은 듣던 대로 규모가 컸고 마치 하나의 문화유산 속에 만든 워터파크 같았다. 실외 온천과 실내 온천이 있고, 맥주 스파도 있었다. 맥주 스파는 고민하다 비싼 가격 때문에 포기했는데 실내로 가보니 온천 종류가 생각보다 다양하여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물 온도는 듣던 대로 약간 따뜻한 정도라서 뜨끈한 온천을 원한다면 적합하지 않을 듯했다. 물론 둘에게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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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체니 온천의 풍경, 그리고 맥주. 온천 중 마시는 맥주는 매우 시원했다.

위 두 번째 사진에 있는 원형 풀 중에는 유수풀도 있는데 속도가 랜덤이었다. 빠를 땐 내 의지로 이동하는 게 아닌 휩쓸려 간다는 게 맞을 정도로 빨라 꽤 스릴 있고 재밌었다. 다만 중앙 스위밍 풀(세 번째 사진의 맥주 마시는 곳 옆이다. 공사판이라 손과 맥주잔으로 가려서 찍은 면도 있다.)이 하필 공사 중이어서 이용할 수 없는 점은 아쉬웠다. 스위밍 풀은 말 그대로 수영(각종 영법)을 할 수 있는 곳이라 들었었다.


둘은 세체니 온천이 매우 맘에 들었고 훗날 다시 한번 부다페스트를 올 수 있다면 그때는 3대 온천을 모두 가보기로 했다.


세 시간 가까이 온천에서 놀고 나니 너무 배가 고파 둘은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시내로 가기로 했다. 평소 같으면 그 나라 전통 음식을 고집할 둘이지만 그런 걸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구글맵 평점 높은 가까운 곳을 가서 배를 둔둔히 채운 후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간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수영복을 말리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물이 필요해서였다.




이번엔 버스를 타고 부다성으로 이동했다. 사실 전날 저녁에 걸은 거리 중 하나다. 버스를 타고 세체니 다리를 건넌 셈인데, 낮에 버스를 타고 건너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세체니 다리 중앙에서 대낮의 풍경을 찍어보지 못한 건 아쉽지만 눈으로 담아도 되는 일이고, 무엇보다 날씨가 참으로 더웠다. 이 날 최고 기온은 32도였다.


부다성에는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갔고 내부 입장은 하지 않았지만 부다성 끝(Turul statue, 헝가리의 국조 투룰 상)에서 끝(S. Maria Mater Dei, 성모 마리아 상)까지 걸어도 꽤 긴 거리였고 그래서 서로 다른 각도로 전경을 볼 수 있었다. 부다성의 끝과 끝이 조형물인 만큼 갖가지 다양한 조형물이 많은데 이런 것들을 보는 것도 꽤 재미있다. 부다성 외부 자체가 하나의 야외 미술관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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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니쿨라를 이용하면 투룰 상 쪽으로 가고, 성모 마리아 상 쪽에는 지붕이 있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푸니쿨라 탑승장 옆에는 헝가리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데, 내려가는 푸니쿨라를 타기 전 둘은 운 좋게도 의장단 사열식을 봤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영상도 못 찍고 넋 놓고 구경만 했지만 뭐 어떠리. 눈으로 그 광경을 담고 머리에 기억을 각인하면 그만 아니겠는가.




전날 둘을 개고생 시켰던 어부의 요새로 이동할 때다. 버스로는 달랑 두 정류장을 이동하는 거리지만 전날 호되게 당한 둘은 망설임 없이 버스를 탄다. 무엇보다 그들은 교통권을 사지 않았던가!


버스 덕에 시원하고 편하게 오르막길을 구경하던 중 전날 그들이 갔던 길을 힘겹게 오르는 이들이 보였다. 오후 3시가 다 되어가는, 하루 중 가장 더울 시간. 선선한 바람이 불던 밤에 가도 힘들었는데 이 땡볕에 저 고생을 했을 수 있다 생각하니 차라리 전날 밤에 겪은 게 다행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왔어도 성곽 계단 한 번은 올라야 했다. 둘은 계단을 면할 수는 없었구나 한탄하며 올라갔다. 문제의 계단은 Schulek Staircase 라는 곳인데, 전날에는 내려왔던 길이어서 버스를 타고 오면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여기가 사진이 잘 나와서 인스타 명소라지만 둘은 그런 거 관심 없고 그저 계단이 미웠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마차슈 성당 뒤편에 버스 정류장(Szentháromság tér)이 있다. 이쪽으로 올 수 있다면 계단 오를 일이 없다.


드디어 올라온 어부의 요새. 그런데 가만 서있는데도 너무 더웠다. 그늘은 그래도 시원한데 주요 볼거리는 땡볕에 있다 보니 더위에 지쳐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일단 그늘에서 쉬자며 성당 옆 큰 건물 앞으로 갔는데, 그 건물의 정체는 힐튼 호텔이었다. 그리고 그 1층에 스타벅스가...?!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자!!!"


둘은 메마른 사막 속 오아시스를 찾은 것 마냥 스벅 안으로 들어갔다. 십여 분을 기다려 획득한 아아의 시원함은 한껏 오른 열을 식히기 충분했으며 카페인은 제정신을 돌아오게 각성시켰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전날 밤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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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이상하게 롯데월드 매직캐슬이 떠오르던 레스토랑 (우) 마차슈 성당

분명 모양과 색이 다른데 이상하게 롯데월드 매직캐슬이 연상되는 어떤 지붕이 눈에 들어왔는데 사람들을 좇아 올라가 보니 레스토랑으로 운영 중인 듯했다. 또한 전날 밤에 P가 궁금해했던 마차슈 성당도 보다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유독 새까만 첨탑 하나가 눈에 띄었고, 새가 앉아있는 듯한 첨탑도 눈에 들어왔다. 가장 높은 첨탑은 예전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본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일부 첨탑 모양이 연상되기도 했다. 물론 사그라다 파밀리아보다 이게 더 먼저 만들어졌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만큼 다양한 첨탑이 섞인 매력을 가졌다는 의미다.

tempImageiDjugc.heic 마차슈 성당에서 P가 관찰했던 부분을 확대한 사진

마차슈 성당에서 P가 가장 감탄한 부분은 타일로 장식된 지붕이었는데, 사실 P의 감정에는 탄식도 섞여있었다. 예전에 오스트리아를 여행할 때 슈테판 대성당의 타일 지붕을 보고 너무도 색다르다고 생각했고 다른 성당과 가장 차별화된 슈테판 대성당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하여 그곳을 J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타일 지붕이라는 특색이 그 성당만의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P는 J에게 자신의 시야가 너무 좁았던 것 같다고 솔직히 말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동유럽은 특이하게도 이런 방식의 타일로 장식한 지붕을 가진 성당이 많았다.


전날 둘러본 곳도 다시 가보았다. 부다페스트 전경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밤과는 다른 매력을 볼 수 있었다. 푸른 하늘 밑에 적갈색 지붕을 가진 국회의사당. 전날 밤에 봤을 땐 부다성처럼 녹색 계열일 줄 알았는데 붉은색 계열이라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J는 국회의사당도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시간도 아직 4시밖에 안 됐다.


"국회의사당도 가까이 가볼까? 여기서 지하철로 갈 수 있는데."


여담이지만 진지한 경고. 부다페스트의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는 조심해야 한다. 에스컬레이터 속도가 빠른 경우가 많다. 경사가 급한 경우도 있다. 내려가는 방향으로 탔는데 하필 둘 다 해당되었다면 손잡이를 절로 잡게 만드는 공포심을 느낄 수도 있다.




국회의사당 앞에는 노면분수가 뿜어져 나오고 있어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신나게 뛰어다니는 걸 볼 수 있었다. 저런 물줄기에 애들이 즐거워하는 건 만국공통인가 보다. 국회의사당 옆과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늘이 져서 시원하게 산책하듯 다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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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노면분수에 즐거워하는 아이들 (중) 어부의 요새 (우) 부다성

다 돌고 도나우 강 건너편을 바라보니 여기서 보는 부다성과 어부의 요새도 예쁜데 오후에 와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다성과 어부의 요새는 서쪽에 있다 보니 오후 시간대에는 역광이 되어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르게 사진에 그 아름다움이 잘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 날 오전에라도 시간이 있다면 다시 오면 좋을 텐데 일정상 그럴 수 없어 아쉬울 따름.


국회의사당 뒤편 광장과 헝가리 영웅들을 기리는 기념물까지 보고 나니 약간 허기졌다. 저녁 식사 전 마지막으로 그레이트 마켓 홀을 가보기로 했다. 유럽에서 트램 타는 걸 즐기는 J는 호시탐탐 트램을 탈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드디어 코스가 맞아떨어져 이번에는 트램을 타보기로 했다. 23번 트램을 타야 했는데, 아니 이렇게 코스가 좋을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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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을 끼고돌아 도나우 강변을 타고 주욱 남쪽으로 가는 코스인데, 너무도 편하게 강변을 구경할 수 있다. 안 그래도 낯선 곳에서 아무 버스나 타고 일주해 보는 습성이 있는 J는 특히 신났다. 그 일주는 장소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종점까지 그 동네를 구경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이 23번 트램을 타고 뜻하지 않게 편하게 강변을 구경하니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하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좋지 않은 일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생긴다. 인생이 그렇고, 여행도 그렇다. 세체니 온천에서 스위밍 풀이 공사 중인 상황을 만났듯이, 이번에도 뜻밖의 불운을 만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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