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빚어주는 여행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에서 겪은 뜻밖의 사건들

by 김연큰

여행 중엔 행운과 불운이 교차되거나 겹치기도 하고 때론 행운도 불운도 아닌 예상치 못한 사건이 등장하기도 한다. 물론 우리네 인생도 그렇지만 말이다.




'그 나라에 갔으면 그 나라 전통 시장도 봐야지!'라는 게 J의 생각이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레이트 마켓 홀이라는 식료품을 주로 파는 전통 시장이 있다는 걸 알았고, 거기서 과일이나 간단한 먹거리를 살 계획이라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들리려 했다. 그런데 트램에서 내리기 얼마 전 P가 다급하게 말했다.


"일요일에는 문을 일찍 닫는 모양인데?"


구글 지도에서 보니 월~토는 오전 6시에서 오후 6시까지 영업하지만 일요일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까지 영업한다는 정보가 있었다. 이때 시간은 오후 4시 30분이 약간 넘어간 때였다. J는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기왕 근처까지 왔으니 일단 가보자. 늦게 문 닫는 가게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네, 그런 건 없었습니다.


이미 모든 가게가 문이 닫혀있었고 둘은 시장이 영업 종료한 후의 황량한 복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구 쪽 벽에 기대어 있던 어떤 관광객이 둘을 보고 미소 짓더니 중국어인 듯한 느낌으로 말을 걸었다. 아마 대충 '너네도 나랑 같은 처지구나?' 하는 뜻인 듯했다. 둘이 본인과 같은 나라 국적의 사람으로 보여서 그랬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외국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나라 언어로 말을 거는 자신감이란 대단하다 싶었다.

그레이트 마켓 홀 외관

시장은 신고딕 양식의 건물이라더니만 확실히 특이한 외관을 가지긴 했다. 그래서 더욱 내부가 궁금했다. 물론 다음날 아침 일찍 오는 선택지가 있긴 했지만 아침에 과연 둘이 움직일 것인가?를 생각했을 때 아니라고 봤다. 하지만 그래도 이대로 돌아가기 아쉬우니 호텔 근처에 있는, 그렇지만 그레이트 마켓 홀과는 반대 방향에 있는 성 이슈트반 대성당을 가기로 했다. 이때도 트램을 탔지만 트램에 대한 낭만이고 뭐고 없이 그저 가장 빠른 이동수단으로 생각하며 탑승했고, 도착하니 5시를 약간 넘겼다.


"티켓 부스는 5시 15분까지 하고 성당은 5시 45분에 닫는대. 서둘러야 해!"


둘은 일단 성당 앞으로 갔는데 대성당이라는 이름 그대로 외관의 규모가 컸다. 트램에서 내린 곳에서부터 꽤 둘러서 가야 했다. 안내를 보니 티켓 오피스는 성당 안에 있는 게 아니고 둘이 이미 지나온 길, 성당 옆 상가에 있었다. 둘은 미션을 수행하는 양 티켓 오피스를 향해 뛰었다. 그레이트 마켓 홀도 못 봤는데 이거는 봐야 한다는 게 둘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이거라도 봐야 한다는 보상 심리가 이렇게 세게 온 적이 있었나 싶다.


우여곡절 끝에 티켓을 사서 입장하니 대성당답게 매우 컸다. 그런데 뭔가 다른 성당과 분위기가 달랐다. 그리고 성가 같은 것이 들렸다. 게다가 중앙 및 앞부분(Sanctuary, 성역)은 통제되어 갈 수 없었다. 놀랍게도 미사 중이었던 것이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에서 본 미사 (소리를 들어보세요)

P는 눈이 휘둥그레진 상태로 J를 바라봤고, J는 매우 황당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J는 천주교 신자(그러나 냉담자)인데 신기할 정도로 P가 J와 해외여행을 가서 성당을 가면 미사 중인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이었는데 심지어 그때는 장례 미사였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 내부

대충 분위기를 보니 정규 미사는 아니고 다른 나라 교구에서 온 사람들과 교류하는 취지의 미사인 듯했다. 아프리카에서 온 듯한 전통 악기가 보였고,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 앞부분에 앉은 사람들은 누가 봐도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미사 중이라 돈을 내고도 저 앞부분을 가까이서 볼 수 없는 건 아쉬웠지만 반대로 말하면 흔히 하지 못할 체험을 했으니 오히려 더 좋을지도?


이런 우연은 이 여행 중 한 번 더 있었다. 이틀 후 오스트리아 빈에서 성 베드로 성당을 지나다 '숙소 근처니까 한 번 들어가 보기나 하자'며 들어갔고 또 미사를 봤다.

오스트리아 빈 성 베드로 성당 방문 당시. 규모는 작았지만 어쨌든 미사 중이었다.

P는 '크크큭'하고 웃으며 또다시 발생한 우연이 웃겨 죽겠다는 반응이었고, J는 '하 대체 왜 이러지'하는 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먹거리에 대한 우연 에피소드를 소개하려 한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이 P는 이미 예전에 오스트리아를 여행한 적 있는데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다. 날씨에 대한 에피소드도 있지만 그에 대해선 할 이야기가 많아 별도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당시 오스트리아를 여행할 때는 꽤 추웠다. 한국의 뜨끈한 국물이 그리워지는 때 '타펠슈피츠(Tafelspitz)'라는 요리에 대해 알게 됐다. 갈비탕 같은 국물 요리인데 마침 오스트리아 관광청 공식 홈페이지에서 레시피를 제공하고 있으니 궁금한 분은 여길 참고하시길.

https://www.austria.info/ko/recipes/tafelspitz/

여담: 오스트리아 관광청 공식 홈페이지는 정말 정보가 많다. 오스트리아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꼭 봐야 한다. P는 혼자 오스트리아를 갈 때 이 홈페이지를 참고하여 코스를 짰다고 한다.


한식집에서 웬만하면 김치찌개, 된장찌개를 팔듯이 이 음식은 오스트리아 요리를 파는 식당이라면 기본적으로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유독 타펠슈피츠로 유명한 맛집이라는 곳이 숙소 근처에 있어서 다녀온 적이 있었다. P의 기억에 그곳은 맛보다는 추위에서 자신을 구해준 존재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음식점을 J가 가겠다고 한 것이다. 사실 P도 오스트리아를 다녀온 지 오래되어 본인이 간 곳이 그곳이었는지 기억이 희미했는데 지도를 보고 알게 됐다. 본인이 갔던 바로 그 식당이라는 것을.

타펠슈피츠는 국물-골수(빵에 발라서)-고기와 야채 순으로 먹는다.

여름에 그 음식을 먹기에는 좀 더웠지만 저녁 시간대에 가서 시원한 맥주를 곁들이니 꽤 괜찮았다. 사실 와인이 더 어울릴 거 같은 맛이었지만 이 뜨거운 고깃국, 아니 수프를 와인과 곁들일 자신이 없었다. 재밌는 점은 여기서 사이드 메뉴로 쌀밥을 팔고 있고 그래서 한국인들은 밥을 주문해서 국물에 말아먹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고깃국이 맞는 듯하다.) 하지만 둘은 더워서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고 다만 메인 요리에 있는 고기와 야채를 남김없이 싹싹 깨끗이 먹으며 이 음식이 맛있었음을 증명했다.


J 입장에서는 유럽에서 시원~한 국물을 먹을 수 있던 점이 매우 만족스러웠고, 골수를 빵에 발라 먹는 색다른 경험이 좋았다. 또한 감자와 당근을 좋아하는 J에게 타펠슈피츠의 야채 조합은 아주 맘에 드는 구성이었다. P 입장에서는 자신이 알려주지도 않은 음식점을 J가 선택한 그 우연이 신기하면서도 좋았다. 본인만 먹어봤던 음식을 좋은 사람과 함께 먹는 추억이 생기는 것과 더불어 둘이 분명 취향이 다른데도 어떤 면에서는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걸 이런 상황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헝가리에서는 안타깝게도 구야시(굴라쉬)를 먹지 못했다.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세체니 온천을 간 이후 점심때였는데 참을 수 없는 허기 탓에 포기했다. 추후 오스트리아, 체코에서는 각 나라 방식의 굴라쉬를 먹는데 정작 본 고장이라는 헝가리에서 먹지 못하다니. 아마 헝가리에 다시 오라는 뜻일 게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여행은 여행 둘째 날 야경 크루즈를 끝으로 사실상 마무리되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그레이트 마켓 홀을 가려면 갈 수 있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가지 못했다. 야경 크루즈는 사실 첫날 도보로 본 것과 다른 뷰에서 보고 그래서 다른 매력이 있다는 것 정도만 덧붙여도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어부의 요새-세체니 다리-국회의사당-부다성 순


이제 둘은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동한다. 오스트리아는 P가 가봤다는 이유로 P가 일정을 진두지휘하기로 했다. 빈은 부다페스트와 마찬가지로 첫날 저녁과 둘째 날 전일 머물게 되고 셋째 날 오전 일찍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일정이다. 그 상황에서 P의 고민은 빈을 보기에 너무 짧은 일정이라는 것이었다. 예전 P가 빈에 갔을 때 일정은 3박 4일이었는데 이번에는 절반 이하로 축소된 상황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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