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에서는 클래식 버스킹 감상을

낯설지만 아름다운, 잊을 수 없는 공연들

by 김연큰

볼 때는 참 멋있고 아름다웠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별로 기억나지 않는 곳이 있는가 하면, 별 거 아닌 거 같았는데 계속 생각나는 풍경이 있다. P의 경우 전자는 벨베데레 궁전과 쇤브룬 궁전이었고 후자는 버스킹과 슈테판 대성당이었다.


그럼에도 여행 코스에 벨베데레 궁전과 쇤브룬 궁전을 포함했다. 벨베데레 궁전의 경우 '클림트의 <키스> 원본을 볼 생각이 있느냐?'는 P의 질문에 J가 긍정적인 대답을 했기에, 쇤브룬 궁전의 경우 오스트리아 하면 역시 모차르트 아니면 합스부르크 왕가인데 합스부르크 왕가의 흔적은 봐야 하지 않겠는가 싶어서였다. 그리고 어쨌거나 빈의 대표 관광지인데 P가 그저 그랬어도 J에겐 다를 수 있고, 여름이라 궁전 정원이 예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벨베데레 궁전은 시내에서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빈 중앙역에서는 도보 10분 정도 거리에 있다. 둘은 부다페스트에서 빈 중앙역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 일정이었고 그래서 빈에 도착하면 캐리어를 물품 보관함에 넣고 벨베데레 궁전에 갈 계획이었다. 출국 전에 P가 티켓을 예약했는데, 입장 시간을 정해야 해서 기차가 연착될 수도 있음을 고려하여 [도착 예정 시간+1시간] 정도로 시간을 정했다.


그런데 열차가 예상보다 오래 지연되어 빈 중앙역에 도착하고 보니 예약 시간까지 아슬아슬했다. 심지어 역에서의 캐리어 보관도 문제였다. 규모가 큰, 수백 여개의 캐리어도 너끈히 보관할 듯한 넓은 락커 공간이 있었지만 카드 결제가 불가했고 동전이 있어야 했다. 둘에게는 유로화 지폐만 있을 뿐 동전은 없었고 이 규모가 큰 곳에 동전교환기조차 없었다. 결국 P가 잠시 짐을 갖고 있고 J가 어딘가 재빨리 뛰어다녀왔다. 손에는 파란 지갑 같은 것이 들려있었다.


"이거 장바구니야. 이게 제일 싸더라고?!"


후일담: 그 장바구니는 이후 여행에서 유용하게 썼으나 싼 만큼 품질도 별로였던 것인지 금세 찢어져 귀국길까지 함께할 수는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캐리어를 보관함에 넣고 둘은 벨베데레로 향했다. 예약 시간을 이미 넘긴 상황이라 마음이 다급했다. 막상 도착해 보니 다행히 시간을 넘긴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아 수월하게 입장할 수 있었다. 예약했던 시간은 입장 '시작' 시간이지 입장 '마감' 시간이 아니었던 덕이다.


생소한 현대 미술부터 한국인에게도 익히 잘 알려진 에곤 쉴레와 클림트의 작품까지 여러 작품을 두루 보면서 궁전 감상도 같이 했다.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는 정말이지 번쩍번쩍했다. 사진으로는 감히 담을 수 없는 황금빛 찬란함 그 자체였다.


"이거 예전에는 사진 촬영 불가였는데 지금은 되네."

"근데 허용한 게 이해는 된다. 어차피 사진에 안 담겨. 영상으로 여러 각도로 찍어야 그나마 근접할까 말까일 듯?"


모든 층의 작품과 0층에 있는 특별전까지 감상한 둘은 상궁과 하궁 사이에 있는 정원을 산책해 보기로 했다. 지나가다 창문에서 정원을 보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이다.

막상 가본 정원은 그늘이 없이 너무도 땡볕이어서 걷기 힘들었다. 분수나 조형물을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면 굳이 한여름에 정원을 가까이 갈 이유는 없어 보였다.

벨베데레 궁전 정원 비교. (좌) 4월 중순 (우) 7월 초

확실히 정원 자체는 여름이 보기 좋았다. 위 사진에서 알 수 있듯 4월 중순의 벨베데레 궁전은 분수에 물이 차있지도 않으며 정원에는 풀만 난 상태에서 모양만 잡혀있다. 정원의 형상을 제대로 보려면 여름에 오는 게 좋다. 조금만 덜 더웠다면 딱 좋았을 풍경.


다음날 오전에 둘은 쇤브룬 궁전에 다녀오는데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4월에 갔을 때는 튤립 밖에 없던 정원이었는데 7월엔 각종 꽃이 만발한 예쁜 정원이 되어 있었다.

쇤브룬 궁전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의 정원. 좌측이 4월 중순, 우측이 7월 초

쇤브룬 궁전은 그래도 정원 좌우로 숲이 조성되어 있어 더위를 피할 곳이 많다. 오히려 나무 그늘에 앉아있을 때는 시원하고 평안함도 느꼈다. 여기서 낮잠이나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기서 전망을 보겠다고 글로리에테(Gloriette)까지 걷는 케이스가 있는데 P는 이에 대한 유경험자다. 그때는 서늘한 4월 중순이라 걸어도 좋았지만 이 날씨에 글로리에테까지 걷는 건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쇤브룬 궁전을 뒤로 하고 글로리에테를 바라본 광경. 좌측이 4월 중순, 우측이 7월 초.

게다가 글로리에테에 올라가면 오히려 전망이 잘 안 보인다. 글로리에테와 쇤브룬 궁전 사이 거리가 꽤 멀어서 궁전이 아득하게 보인다. 그만큼 쇤브룬 궁전은 규모가 크고 넓다. P는 글로리에테를 향해 지그재그 형태로 난 길을 걷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저거 하지 말자."


대신 둘은 중간 지점인 넵튠 분수로 향했다.

넵튠 분수에서 시원한 물소리 들으며 바라보는 쇤브룬 궁전

쏟아지는 물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시원했고 무엇보다 뒤편으로 가면 그늘 속에서 쇤브룬 궁전을 볼 수 있었다. 기념사진 찍기에도 여기가 좋다.

넵튠 분수 뒤편에서 이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J는 쇤브룬 궁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했다. 다만 내부는 그냥 이렇구나 하고 마는 것이었고(그리고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서 좋았다 정도) 진짜 좋은 곳은 정원이었다고 했다. 이렇게 멋지고 예쁜 정원이 있다니. 빈에서 둘의 사진이 가장 잘 나온 곳도 여기였다.




"여기는 정말, 부다페스트랑 비교하면 신도시 느낌이다."


빈 중앙역 근처는 현대식 고층 건물이 많다. 그래서인지 J에게 부다페스트가 흔히 유럽 하면 떠올리는 고풍적인 도시였다면 빈은 사뭇 다른 분위기라 생소한 도시로 보였다. 두 도시는 에스컬레이터 문화도 달랐는데 부다페스트는 에스컬레이터 속도가 빠른 대신 한 줄 서기 같은 문화는 없었으나 빈의 에스컬레이터는 한국과 비슷했다. 속도가 비슷하고 한 줄 서기 문화가 있었다.


둘은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해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다음 일정은 숙소에 체크인 후 저녁 8시에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이어서 이제는 여유가 있었다. 빈 중앙역 근방에 슈니첼 맛집이 있다고 하여 가보기로 했다. 둘은 프로슈토 샐러드, 슈니첼, 굴라쉬와 맥주를 주문했다. 헝가리에서 구야시를 못 먹고 오스트리아에 와서 굴라쉬로 먹게 되다니!

참고: 구야시는 헝가리어로 발음할 때에 가까운 표기라고 하고, 굴라쉬는 독일어식 발음이라고 하여 각기 다르게 표현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첫 끼이자 점저

헝가리의 구야시는 야채수프에 가까운 느낌이라는데 오스트리아식 굴라쉬는 스튜 같은 느낌이다. 샐러드와 슈니첼이 아주 맛있었다! J 입장에서는 처음 먹어보는 슈니첼이었는데 일식/경양식을 가리지 않고 워낙 돈까스를 좋아하는지라 튀긴 돼지고기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P는 본인이 예전에 먹어본 슈니첼보다 훨씬 맛있다고 했다. 튀김도 바삭하고 육즙이 느껴지는 점이 매우 맘에 들었다.


배를 채우고 여유가 생긴 둘은 빈 중앙역도 둘러보고 이것저것 구경하다 캐리어를 찾아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과거 P가 묵었던 곳인데 그 근방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일정 중 가장 비싼 숙소이기도 했다. 빈의 물가가 높은 탓도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위치였다. 슈테판 대성당 등 온갖 관광지가 모여있는 곳인 Stephansplatz 근방에 있었다.




Stephansplatz 지하철 역에서 올라오자마자 J는 깜짝 놀랐다.


"와, 이거 뭐야?"


이 역은 나오자마자 슈테판 대성당이 보이고, 온갖 명품 브랜드 매장이 즐비한 그라벤 거리로 이어지는데 J를 놀라게 한 건 대성당도, 거리 풍경도 아니었다.

J가 접한 오스트리아에서의 첫 버스킹

올라올 때 어디선가 여자 성악가의 노래가 들려서 어떤 매장에서 노래를 튼 것으로 생각했는데, 길거리 라이브였던 것이다. 버스킹 하면 밴드 공연이나 춤 같은 것을 생각했던 J의 편견을 와장창 깨뜨리는 버스킹이었다. 길거리에서 이렇게 성악 공연을 한다고?


오스트리아 재방문자인 P에게는 낯선 풍경이 아니었지만 J가 놀란 건 이해됐다. P 본인도 처음 빈에 와서 이런 버스킹을 봤을 때 놀랄 수밖에 없었다. P는 빈에서는 버스킹만 감상해도 며칠은 후딱 갈 거라 했다. 여기서의 일반적인 버스킹은 시시해서 사람이 별로 모이지도 않았다. 클래식 공연을 하거나 뭔가 튀는 공연을 해야 사람이 모였다.

슈테판 대성당 근방에서 본 첼로 공연

"빈이 이 정도면 잘츠부르크는 대체...?

"아니야,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에서 탈출하려고 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어. 버스킹은 빈이 최고야."


사실 P도 동일한 기대를 가지고 잘츠부르크를 갔었는데 그곳에서 버스킹은 거의 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버스킹은 대중의 돈을 받아야 하는 특성상 빈과 같이 대도시이면서 Stephansplatz처럼 사람이 몰리는 곳에 많을 수밖에 없었다.




앞서 벨베데레 궁전의 다음 일정이 공연이었다고 언급했는데, 그 공연은 카를 성당에서 매일 오후 8시에 열리는 비발디의 <사계> 공연이었다. P는 '그래도 모차르트의 나라에 가는데 클래식 공연 한 번은 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아무래도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곡을 듣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J에게 제안했고, J도 흔쾌히 응했다. 후기를 검색해 보니 가격 차이가 얼마 나지 않으니 무조건 앞 열에 앉으라고 해서 10열 이내에 임의 좌석을 배정하는 티켓으로 예매했다. 입장할 때 티켓 검사하는 분이 한국 분이어서 매우 수월했다.


오스트리아에는 의외로 '일하는' 젊은 한국인이 많이 보이는데 대부분 유학생인 듯했다. 아무래도 음악을 전공하면 이쪽으로 유학 오는 경우가 많을 테니.

공연 직전/직후(공연 중에는 당연히 촬영 불가). 창 밖이 밝을 때 시작해서 어두워질 때 끝난다.

지휘자가 별도로 없는 소규모 공연으로, 바이올린 6, 첼로 2, 피아노 1로 구성된다. P는 예전에 이런 류의 공연을 해본 경험이 있어 어떻게 합을 맞추는지 알고 있지만 J는 몰랐기에 신기하고 신선하다 느꼈다.


다만 공연 자체는 듣는 귀가 예민한, 특히 음질 차이를 잘 잡아내는 J에게는 조금 아쉬운 공연이었다. 연주자들의 열정과 실력은 의심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우리가 흔히 듣던 오케스트라 공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퀄리티의 바이올린을 쓰는 것으로 보였고 그래서 바이올린 소리가 조금 아쉬웠다.


P도 동의했다. 사실 <여름> 3악장의 가장 유명한 부분-마치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구간이 있는데, 여기서 P는 조마조마하다고 느꼈다. 현이 끊어질까 봐 걱정될 정도였다고나 할까.


참고 영상: https://youtu.be/25zBoPn_XOo?si=VMkSrEE869u9AWNa

위 영상 2분 0초쯤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휘자가 없을 때 합을 맞추는 법도 이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오스트리아가 아니어도 유럽 곳곳에서 이런 류의 공연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추후 방문하는 체코에서도 성당마다 이런 공연을 홍보하고 있었다. 궁전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빈의 경우 호프부르크 왕궁에서 진행하는 공연이 있고, 잘츠부르크는 미라벨 궁전에서 하는 공연이 있다. 퀄리티로 따진다면 우리나라에서 고가의 티켓으로 볼 수 있는 오케스트라 공연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클래식 공연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그리고 궁이나 성당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 한 번쯤은 경험해 보는 것을 권한다.




이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드리는 작은 쿠키
과거 P가 오스트리아 빈 여행 중 찍은 피아노 버스킹 영상

P는 이 공연보다 멋진 버스킹은 아직 못 봤다고 한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동전을 놓고 마지막 환호와 박수까지 나온 거 보면 최고의 버스킹 중 하나인 건 분명하다.

keyword
이전 10화우연이 빚어주는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