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없는 할슈타트에서 폭염을 견디는 방법
둘은 빈 중앙역에 이틀 만에 돌아와 잘츠부르크행 기차를 탔다. 다만 목적지는 잘츠부르크가 아니었다. 중간에 다른 기차로 갈아타고 할슈타트로 갈 참이었다.
할슈타트는 사실상 오스트리아를 온 이유였다.
빈은 그저 거쳐가는 곳이었을 뿐.
J는 예전부터 오스트리아 중 다른 지역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할슈타트는 달랐다. J는 평소 홈쇼핑에서 여행 상품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데 동유럽 상품이 나올 때면 등장하는 할슈타트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생각했다. 저 풍경을 본인이 직접 볼 수 있다면 무척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P는 잘츠부르크 여행 중 할슈타트를 당일치기로 다녀온 적 있다. 돌아오는 길에 '언젠가 1박을 해보면 좋겠다' 생각했다. 할슈타트 자체는 넉넉히 잡아도 2시간 남짓이면 다 둘러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그 마을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고, 고즈넉한 할슈타트를 보면 마을 분위기를 원형 그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려면 1박을 해서 늦은 밤 혹은 이른 아침의 할슈타트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둘은 1박 2일 일정으로 할슈타트를 가기로 했다.
기차가 할슈타트 역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내렸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제히 한 방향으로 향했다. '관광지' 할슈타트로 이동하려면 배를 타야 했기 때문. 배 타러 가는 사람들의 패턴은 비슷했다. 캐리어를 끌고 보트를 타러 내리막길을 걸어가면서 주변 풍광에 감탄하며 연신 사진을 찍는 것. 물론 J와 P도 예외가 될 순 없었다. 그 대가로 줄을 뒤늦게 서서 다음 보트를 타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되긴 했지만.
하지만 보트는 예상보다 승객을 많이 태울 수 있었다. 이미 앞서 사람이 많이 탄 상황이었는데도 계속 사람이 들어갔다. J와 P가 탑승한 후에도 몇 명이 더 탔고 그제야 출발했다. 뒤에 줄이 아직 더 있었던 걸 봐서는 정원이 있긴 한가 본데 얼마나 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보트는 이미 사람, 배낭, 캐리어로 빡빡했는데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밖을 구경하려고 이리저리 꿈틀댔고 인파에 떠밀리다 둘은 서로 떨어지게 됐다.
J는 어찌 운 좋게 앞부분 창을 통해 할슈타트 풍광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J는 할슈타트 풍경을 보며 계속 '우와, 우와'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호숫가에 가니 호수는 무척이나 투명하고 맑아 얕은 곳은 바닥까지 훤히 보였다. 호수 자체도 규모가 컸지만 거대하고 급격한 경사를 가진 산이 여럿 둘러싸고 있는 상황도 꽤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P는 캐리어를 지키며 사람들 사이로 기웃거리며 밖을 보았다. 예전에 왔을 때는 4월 중순이라 그런지 보트에 사람이 많지 않았고 산 정상 쪽에 눈도 약간 쌓여있었다. 또 흐린 날씨여서 산에 구름이 걸친 풍경을 봤었다. 반면 지금은 여름이고 완연한 초록빛이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온통 초록초록한 할슈타트를 보다니 '구라 같다'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J는 제발 할슈타트에서는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부다페스트나 프라하의 야경은 비가 오거나 날이 흐려도 볼 수 있지만 할슈타트만은 날씨가 맑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 소원을 하늘이 들어준 것인지 무척이나 맑은 날씨였다. 그리고 한국 여름 못지않은 폭염도 덤으로 주었다.
마을에 도착 후 둘은 마치 그림에 나올 것 같은 할슈타트 마을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숙소로 향했다. 캐리어를 맡기고 돌아다닐 참이었다.
숙소는 할슈타트 마을 남쪽에 있었다. 그쪽은 둘 다 처음 가보는 위치였다. P가 예전에 왔을 때는 그저 관광객이 많은 부분만 훑듯이 보고 갔었기에 마을 남쪽이나 북쪽까지 가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따라서 숙소로 가는 길은 P에게도 생소한 풍경이었고 감탄 나오는 예쁜 길이기는 했으나……
문제는 당시 섭씨 30도가 넘는 날씨에 시간은 오후 1시 무렵으로 해가 중천에 있어 숙소로 가는 길에 그늘은 거의 없었다. 즉 햇빛을 거의 정면으로 받으며 캐리어를 끌고 십여 분을 걸어야 했다. 폭염이나 다름없는 날씨 속에 둘은 땀에 절고 지쳐갔다.
대체 숙소는 언제 나오는 것인가 의문이 들 때쯤 드디어 찾아낸 숙소. 체크인 카운터에는 아무도 없었고 둘의 객실 키로 추정되는 열쇠가 책상 위에 있었다. 어쩌지 망설이던 차에 숙소 주인이 등장했다. 그는 숙박객 정보를 확인하더니 바로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했다. 더위에 지친 둘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소식이었다! 숙소 주인은 할슈타트에 대한 몇 가지 정보를 알려주었고 이후 객실 열쇠를 주었다. 조금 전 추정한 열쇠가 그들이 묵을 방의 열쇠가 맞았다.
숙소는 예상대로 엘리베이터 따위는 없었고 걸어서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객실을 보니 룸 컨디션은 꽤 좋았으나 환경 정책 탓인지 에어컨은 없었다. 선풍기는 있다는 게 그나마의 위안거리였다.
참고1: 할슈타트 숙박 시에는 숙박 요금과 별도로 환경세를 현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이는 숙박 예약 웹사이트 등에도 고지되어 있다. 2025년 7월 당시 인당 3유로였다.
참고2: 유럽은 대도시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에어컨 보급률이 낮은 편이고, 할슈타트나 체스키크룸로프와 같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경우는 더더욱 에어컨이 설치된 곳이 드물다. 이는 숙박업소뿐 아니라 식당이나 카페도 마찬가지다.
앞서 할슈타트 마을은 여유 있게 돌아도 2시간 정도면 다 볼 수 있다고 언급했는데, 통상 Lahn이라는 여객선 항구부터 할슈타트 전망대까지 돌아다니고, 이는 최단 경로로 걸으면 15분 밖에 안될 정도로 짧은 거리다.
특히 실 거주하는 사람도 있어 골목을 다니고자 한다면 조용히 다녀야 한다. (곳곳에서 조용히 해달라는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다.) 맘껏 떠들고 놀아도 되는 곳은 마르크트 광장 주변 정도로 매우 작은 규모다.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은 보트를 타거나 소금광산을 가거나 스카이워크까지 가거나 혹은 Lahn 항구 남쪽 하이킹 코스를 가기도 한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는데 그건 조금 후 소개를 하도록 하겠다. 둘이 직접 한 것이기에.
J와 P도 카약이나 보트를 탈까 잠시 망설였지만 이 땡볕과 이 더위에 햇빛 가릴 곳도 없는 걸 타는 건 즐기는 것보다 고생할 것이 더 뻔하다 싶어 우선 마을 곳곳을 조용히 돌아다니기로 했다.
우선 숙소에서 가장 먼 쪽에 있는 할슈타트 전망대로 가서 시그니처(?) 사진을 찍고 풍경을 좀 감상하다가 숙소 쪽을 향해 골목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방식으로 둘러보았다. 조그마한 할슈타트 마을 뒤로 바로 경사 높은 큰 산이 보이는 것에서 이미 복선이 된 셈이지만, 호숫가를 벗어나 안쪽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그것은 곧 오르막길이나 계단을 만난다는 뜻이었다. 특히 성모승천 성당과 납골당 가는 길은 다소 힘들어서 성당에서 더위를 좀 식히다 돌아왔다.
숙소 근처 슈퍼마켓에서 물과 음료수를 사고 나니 저녁 먹을 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있었다. 둘은 체크인 때 숙소 주인에게 들었던 정보를 떠올렸다. 그중 하나는 숙소에서 5분 정도 걸어 나가면 다리를 통해 작은 섬을 갈 수 있는데 거기서 수영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숙소 주인은 그 섬을 강력 추천한다고 했다.
"수영복을 부다페스트에서만 쓰고 묵히긴 좀 아까우니 가볼까?"
수영복으로 환복하고 겉에 대충 쉽게 벗을 수 있는 옷을 걸친 후 숙소 주인이 알려준 곳을 향했다. 정확히 5분 정도 걸으니 작은 섬으로 연결되는 다리가 있었고 그곳은 이전에 그들이 보지 못한 세상이었다.
할슈타트 호수가 너무 맑아서 수영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에 둘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분위기를 보니 관광객도 있었지만 이 근방에 실거주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으앗, 차가워!!!"
둘은 조심스레 호수에 발을 담가보았는데 물이 매우 찼다. 조금 전까지 겪은 폭염이 다 날아가는 듯 찌릿했다. 대충 물을 손으로 퍼서 몸에 적셔준 후 용기를 내서 몸을 담갔고 막상 들어가니 그새 차가운 물에 익숙해져 그저 시원함만 남았다.
그때부터 둘에게 폭염은 없었다. 물놀이의 세계가 있었을 뿐.
물은 얕은 곳도 있었지만 꽤 깊은 곳도 있었다. 수심이 깊은 곳 쪽에는 다이빙할 수 있는 곳도 있었고 어린아이들도 잘만 들어가는데 정작 성인이 된 지 한참인 둘은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냥 다른 사람의 다이빙을 구경하며 근처에서 첨벙첨벙 놀다가, '우리는 그냥 얕은 곳에서 빠져보자!'라며 각종 포즈로 물에 빠지기를 시도했다.
유럽에 와서 가장 즐겁게 놀았던 시간이었다. 폭염을 잊을 수 있던 시간이라 더욱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물론 둘 다 수영을 좋아하기에 가능했던 것이지만, 어쨌거나 숙소 주인의 말은 옳았다. 이 섬을 가장 추천할만했다.
P는 한 술 더 떴다.
"할슈타트 한 번 더 와야겠어. 그땐 2박을 해서 첫날은 아예 캠핑장에서 보내고, 두 번째 밤을 호텔에서 보내는 거지. 호수에서 수영도 좀 더 오래 하고."
J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지만 한편 동의했다. 어차피 대부분의 숙소가 에어컨이 없는 게 현실이라면, 하루 정도는 캠핑장에서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수영하고 고기 구워 먹고 라면까지 먹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마침 숙소 근처 마켓에서 컵라면 파는 걸 봤었는데 말이지.
"지금은 너무 더우니 봄, 가을에 오면 좋으려나?"
"봄, 가을에 이 호수를 들어가겠다고? 지금도 차가운데 그때는 차갑다 못해 추울걸? 호수에서 수영하고 싶은 거라면 설사 폭염이 오더라도 여름에 와야 해."
J는 더위에도 약하고 추위에도 약하다. 최고 기온 섭씨 30도가 넘고 햇살이 강해 체감온도는 실제 기온보다 높았던 당시의 유럽 날씨에 지쳤던 J는 어떻게든 덜 더울 때 오고 싶었지만, P는 단호했다. 지금처럼 더웠기 때문에 이렇게 도파민 터지는 즐거움이 있는 거라고.
오후 5시가 넘어가자 단체 관광객이 거의 없고 거리도 한산해졌다. 그래서인지 할슈타트에는 오후 4시까지만 영업하는 가게도 꽤 많다. 둘은 저녁 메뉴를 고민했다. 물놀이를 한 탓인지 배가 많이 고팠다.
이번에도 숙소 주인 찬스를 썼다. 할슈타트에서는 송어 구이를 많이 먹는다고 한다. 추천해 준 곳에서 저녁 식사를 했는데, 맛은 좋았으나 아무래도 가시 바르는 건 귀찮았다. 그냥 맛보았다 정도로 만족하고 돌아왔다.
더위에 약한 J는 숙소에 에어컨이 없어 힘들어했다. 선풍기로도 해결이 잘 안 되는 듯했다. P는 주변 다른 집을 둘러보았다.
"다들 창문 열어두고 있는데..."
객실은 코너 쪽이어서 두 방향에 창문이 있었고, 창문을 조금 열자 시원한 바람이 훅 들어왔다. 낮에는 폭염이지만 호수 옆이고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라 그런지 해가 지고 나니 꽤 시원했다. 날씨 앱을 통해서 보니 20도도 안되었다.
"밖이 더 시원할 거 같은데 밤 산책 좀 해보자."
창문을 좀 열어두고 시원한 바람이 돌게 해둔 후 둘은 산책을 나섰다.
할슈타트의 밤은 시원하다 못해 약간 차가웠다. 낮에 그 뜨겁던 더위는 어디로 갔나 싶을 정도였다. 낮과 다른 점은 또 있었다. 낮과는 비교도 안되게 조용했고 길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간간히 이들처럼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다들 긴소매 차림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길고양이도 만나 반갑게 인사했다.
숙소로 돌아오니 그새 시원한 공기가 들어와 한결 방이 시원했다.
둘은 다음날 아침에도 잠시 산책 시간을 가졌다. 낮에는 단체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Lahn 선착장 및 주변 주차장이 고요한 상황이 낯설어 사진을 찍었다. 호숫가에 앉아 백조와 오리를 구경했다. 특히 둘의 시선을 끈 존재는 이제 막 세상 적응 중인 듯한 아기 오리들이었다. 사냥 배우기 쉽지 않겠지만 호수에 물고기가 많으니 그래도 얘들은 참 복 받은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체크아웃 시 숙소 주인의 뜻밖의 모습을 보았다. 헬멧을 쓰고 몸에 딱 붙는 옷을 입었는데, 이미 그날 체크인할 사람들의 명단을 확인하고 키를 정리해 두었으며 11시까지 체크아웃 절차를 정리한 후 자전거를 타러 나가려던 것이다. 할 일 하고 한낮에 자기 취미 생활 하러 가는 모습이 참 부러웠다. 직장인이 평일에 그렇게 하려면 휴가를 내야 가능하니.
이제 둘은 체코의 체스키크룸로프로 이동한다. 그런데 일기 예보에 무시무시한 경고가 떴다.
다른 날씨 앱에서 확인해 봐도 Thunderstorm warning이 떠있다. 이럴 수가...!!!
둘에게는 우산이 없는데 비를 맞고 다녀야 하나, 아니 그보다 돌아다닐 수는 있는 것인가. 걱정에 휩싸인 채 체코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