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레온 같은 체스키크룸로프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매력을 뽐내는 곳

by 김연큰

도착지 체스키크룸로프에만 폭풍우 예보가 있는 건 아니었다. 출발지 할슈타트도 마찬가지였다. 아침만 해도 맑던 할슈타트는 떠날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두터운 구름에 덮이기 시작했다. 날씨가 좋을 때 할슈타트에 머물다 가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 한편, 체스키크룸로프는 어떠할지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출발할 때만 해도 약간 흐린 날씨였으나 국경에 다가갈수록 구름빛이 어두워졌고, 이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차창 유리에 비 흔적이 보인다.

지도상 체스키크룸로프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착하면 아무래도 비를 맞으며 다녀야 할 듯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가 내내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줄었다 많이 왔다를 반복하고 있었고 일부 구간에서는 흐리기만 한 곳도 있었다. 현 상태대로라면 비가 많이 올 때는 카페나 음식점 등으로 대피해서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면 될 것으로 보였다.


참고 1. 둘은 CK 셔틀이라는, 체코에서 운영하는 최대 6인이 탑승 가능한 운송 서비스를 이용했다. 할슈타트에서 체스키크룸로프까지 직통으로 갈 수 있는 코스를 이용한 것.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고, 중간에 10~15분 정도 한 번 쉰다고 했다. 둘 외에도 세 명의 일행이 함께 탑승하여 다섯 명이 이동하게 됐다.

참고 2. 이 이동 수단은 ChatGPT를 통해 알게 됐는데, 체코 여행은 이제 ChatGPT가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녔던 헝가리 부다페스트, P가 코스를 책임진 오스트리아와 달리 체코는 둘 다 뭘 알아봐야 할지 모르겠어서 ChatGPT가 짠 코스대로 다녀보기로 한 것이다. 심지어 음식점까지!


이윽고 체스키크룸로프에 다다랐다. 다행히 비는 이슬비 수준으로 적게 내리고 있었다. 함께 탄 세 명의 여행객이 먼저 버스 터미널에서 하차했다. J가 추측하기로 그들은 당일치기 여행으로 보인다고 했다. 버스 터미널에 짐을 보관하고 체스키크룸로프 구 시가지를 당일치기로 여행한 후 다시 버스 터미널로 돌아와 프라하 등 다른 곳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둘은 구 시가지에 있는 숙소를 예약했다. 구 시가지는 길이 좁아 CK 셔틀이 숙소 앞까지 데려다주지는 못하고 관광 안내소가 있는 광장에 하차하게 된다고 들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운이 좋은 것이었다. 관광객으로 혼잡할 경우는 광장까지도 진입하지 못하고 버스 터미널 부근에서 내린다고 들었기에.


아니, 그들은 운이 생각보다 더 좋았다. 광장에 하차한다는 게 곧 숙소 앞이라는 걸 그들은 하차한 후에 깨달았다. 광장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해외에서도 흔히 보는 탁 트인 너른 광장이 아니었고 분수대와 동상이 있는 소규모의 트인 장소였고 바로 옆에 숙소가 있었다. CK 셔틀 운전자는 친절하게도 짐을 호텔 앞까지 옮겨주고 작별 인사를 한 후 쿨하게 떠났다.


오후 3시가 약간 넘어 도착했기에 바로 체크인할 수 있었다. 체크인 카운터에서는 A4 사이즈의 지도를 줬다.

한국인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알 수 있는 지도. 한국어가 두 번째로 안내되어 있다.

구글맵 등을 통해 익히 지형을 알고 있었지만 마치 어딘가를 향해 가는 뱀처럼 구불구불한 블타바 강이 마을과 성을 둘러싼 형태다. 어쩌면 이런 지형 덕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배정된 방에 들어가 보니 동화나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중세 분위기 물씬 나는 특이한 곳이었다. 욕조도 있고 창문도 두 방향으로 있는 넓은 방이었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냉장고가 없고, 에어컨이 있었지만 동작하지 않았다. 카운터에 문의해 보니 장기체류자에게만 제공하는 모양이었다. J는 시무룩해하며 '오늘 밤도 (더위로) 힘들겠구나'라고 중얼거렸다.


이미 이리된 거 어쩔 수 없으니 즐겨야지 어쩌겠는가. 둘은 대충 짐 정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그 사이 비가 그쳐 파란 하늘이 보였고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좌) 호텔 바로 앞에서 본 성 탑, (중)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광장, (우) 골목길 풍경

좁은 골목, 과거의 건축 양식이 그대로 남아있는 풍경, 시멘트나 아스팔트라곤 전혀 찾을 수 없는 돌길. 마치 중세 한복판에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분위기는 중세가 아니었다. '중세'하면 대개 암흑기, 음울한 분위기를 떠올리지만 이곳은 차분한데도 뭔가 밝고 경쾌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관광객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돌길이었다.

바닥을 주시하시라. 어딜 가나 돌길이다.

P의 운동화는 밑창이 다소 얇은 편이었고 그래서 돌길을 걷기는 좀 어려웠다. 오히려 밑창이 두툼했던 샌들이 더 걷기 좋았다. 체스키크룸로프에서는 '무조건 운동화'라기보다는, '밑창이 두툼한 신발'을 선택하는 것이 더 좋은 듯했다.




ChatGPT는 이발사의 다리를 통해 크룸로프 성으로 가서 전반적으로 구경하고 이후 구 시가지를 둘러보다가 화로에 직접 굽는 BBQ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일정을 추천했다. 둘 다 고기를 좋아하기에 저녁 메뉴까지 그대로 따라보기로 했다.


이발사의 다리는 구 시가지와 크룸로프 성을 연결하는 다리 중 하나로, 둘은 처음에 이발사의 다리를 찾지 못해 난관을 겪었다. 체크인 시 숙소에서 나가서 바로 쭉 가면 크룸로프 성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래서 사람들을 따라가 보았는데 어떤 남자의 상과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이 마주 보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게 이발사의 다리였다. 둘이 찾지 못했던 이유는 구글맵에 Lazebnický most로 표기된 탓이었다.


둘은 이발사의 다리를 건너며 이발사의 다리인 줄도 몰랐지만 다리가 워낙 멋있고 사람도 많아 여기가 뭔가 명소인 거 같다는 촉이 왔다. 사람이 많아선지 다리 위나 강 주변에서 버스킹하는 사람도 보였는데 대체로 둠칫둠칫 신나고 즐거운 연주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리 한복판에서 블타바 강을 감상하는 이도 많아 둘도 합류했다. 지켜보니 재밌는 점을 발견했는데, 유람선이 아닌 보트가 다닌다는 것이었다.

좌측의 배가 유람 성격이라면, 우측의 보트는 래프팅 중

아마 강 너비나 깊이가 강이라기보다는 하천 정도이고, 앞서 지도에서 확인한 것처럼 강이 굽이진 특성 때문에 그런가 싶기도 한데, 재밌는 점은 이 보트들 중 래프팅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가장 재밌어 보이는 구간을 찍어보았다.

보트가 떨어지는 구간도 있었는데 그 규모가 둘이 보기엔 귀엽고 하찮아서 '후룸라이드(롯데월드에 있는 어트랙션 중 하나) 미니 버전 같다'며 까르르 웃었다. 우리나라의 물살 빠른 계곡에서 하는 래프팅에 비하면 소소한 수준이라서 스릴은 떨어지겠지만 대신 남녀노소 두루 즐기기에는 좋을 것 같았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저걸 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정상 어려웠고 그저 다른 이들의 즐거움을 구경하다 크룸로프 성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길을 잃고 둘은 헤매고 말았다. 다리를 통해 성으로 들어오긴 했는데 입구가 대체 어디인지 몰라서 숲 같은 곳을 돌아다녔다. 이 또한 나중에 알고 보니 크룸로프 성 뒤에 있는 옐레니 정원이라는 곳을 돌아다닌 것이었다. 어쩌다 길을 잘못 들었는지는 추측이 어려웠다. 아무튼 이래저래 돌아다니다 우여곡절 끝에 입구를 찾아 들어갔다.

좌측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망토 다리-성 내부 벽화-성 탑-성에서 본 구 시가지 풍경

P는 특히 유럽 여행 경험이 많아 여러 성을 가보았는데 가본 곳 중 최고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성이 아름다웠다. 성 곳곳에 벽화가 많았는데 보통 벽돌을 쌓고 조각을 붙이지만 그럴 돈이 없어 성벽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어려운 살림살이에 그리 한 것이겠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다른 성에서 보기 힘든 멋진 문화유산이 되었으니 세상 일은 정말 모르는 거구나 싶다.


이 성은 특히 망토 다리에서 보는 전경과 망토 다리에서 더 나아가면 있는 터에서 보는 전경이 멋지다. 비록 입구에서 망토 다리까지 가는 길은 내내 오르막길이라 다소 힘들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중간중간 멋진 풍경을 보거나 사진을 찍으면서 쉬엄쉬엄 가면 된다.


성 내부를 둘러본 둘은 입구 쪽으로 돌아오다가 성 탑에 올라가 볼까 생각이 들었다. 탑에 올라가려면 티켓을 별도로 구매해야 하는데 뮤지엄 입장권과 통합이다. 아마 뮤지엄을 보게 하려고 이렇게 티켓을 파는 것으로 보인다. 크룸로프 성의 역사도 볼 겸 뮤지엄도 다 보고 탑으로 향했다. 이런저런 무기와 방어구, 크룸로프 성에 살았던 이들의 초상화 등 여러 가지를 구경할 수 있다. RPG 게임을 많이 해봐서 거기 등장한 무기나 방어구에 관심이 있거나, 중세 역사에 관심이 많은 경우 꽤 볼만하다.

성 탑을 향해 가는 길

뮤지엄을 갈 때는 티켓 판매처에서 바로 들어가기 때문에 별도의 티켓 검사를 하지 않지만 탑에 갈 때는 개찰구 같은 곳에 티켓을 찍고 넘어가야 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 적당한 간격이 필요하다. 연이어 통과하면 뒷사람이 통과할 때 문제가 생긴다. J가 먼저 입장한 후 이어 P가 입장하려고 했는데 티켓은 읽혔으나 입구는 열리지 않았고 재차 티켓을 인식해도 빨간색 불만 들어올 뿐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티켓 판매처로 향했는데 티켓을 들고 들어온 P를 보자마자 (P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직원이 따라오라고 했다. 아마 이런 일이 꽤 잦은 듯했다. 그는 P가 통과할 수 있도록 빠르게 처리해 줬다.


이후는 당연히 천국의 계단, 아니 탑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계단의 연속이었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중간에 쉴 수 있는 곳도 있는데, 역시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계단은 좁고 가파르다.

천국의 계단 끝에는 멋진 전망이 기다리고 있다

헉헉 가쁜 숨을 내쉬며 올라가자마자 멋진 전망이 보였다. 이 탑에서는 360도 파노라마 전망을 볼 수 있다. 한 바퀴 쭉 돌면서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현대적인 건물이 하나도 없어 마치 중세 한복판에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든다.


참고: 성 동편 라트란 지구에 화장품 브랜드인 록시땅 매장이 있는데, 그 매장조차도 이곳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좇아 매장을 만들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록시땅인지 모를 정도이다. 건물 외관 색상이 너무도 록시땅이 연상되는 색상이어서 유심히 보다가 알게 되었다. (본글 하단에 사진 첨부)


탑에서 내려오자마자 둘은 저녁 식사 장소로 가기로 했다. 앞서 언급한, GPT가 추천한 화덕에서 바로 굽는 비비큐집을 가기로 했는데 지도에서 확인해 보니 세미나르니 정원이 가까웠다. 이 정원은 P가 유일하게 체스키크룸로프에서 갈 곳으로 정해놓은 곳이었는데 마침 식사 장소 근방이라고 하니 들렀다 가기로 했다. 가보니 매우 작은 공원이었지만 구 시가지와 크룸로프 성이 한눈에 보여 조금 전 성 탑에서 본 뷰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공원은 패키지여행으로 올 때 전망을 보는 장소로 많이 오는 모양이다. 체스키크룸로프에 처음 진입할 때 사람들이 몰려있던 곳을 보았는데 이 공원을 본 것이었다. 하지만 둘은 패키지 여행객이나 당일치기 여행자가 대부분 빠진 시간에 방문한 덕에 공원에 사람이 적었고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었다. 둘이 이상한 컨셉 사진 찍으며 노는 모습이 재밌어 보였는지 다른 관광객이 사진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어 저녁 식사 장소로 향했다. 여타 레스토랑이 야외석이 더 인기가 많은 것과 달리 이 레스토랑은 실내가 더 인기 있었다. 이유는 동굴처럼 만든 곳에 화덕을 설치했고 거기서 고기를 굽는데 그 과정을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둘은 모둠 세트를 주문했는데 닭, 소, 돼지 등 다양한 고기가 고루 나왔다. 맛도 괜찮았다. 다만 이곳이 꽤 인기 레스토랑이라 예약 없이 실내에서 먹으려면 1시간 내에 나가야 한다는 타임어택 미션(?)이 있어 여유 있게 먹을 순 없었다. 나왔을 때 대기가 생긴 걸 보고 둘은 타이밍 맞춰 잘 왔다 생각을 했지만, P는 다소 회의적인 생각도 들었다. 편하게 먹을 수 없었다는 점이 마이너스로 작용한 것.


둘은 숙소에서 좀 쉬다가 야경을 보러 가기로 했다. 그전에 광장에 있는 마트에 들러 물, 음료수 등을 샀는데 베트남 사람이 하는 듯한 아시안 마켓이어서 빼빼로 같은 한국 과자도 있었다. 숙소에는 에어컨은 물론이고 냉장고도 없었기에 J는 마트에 있는 가장 시원한 음료를 찾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이윽고 일몰 시간이 지난 9시 10분쯤 둘은 산책을 나왔다. 낮에 느꼈던 후텁함은 사라지고 선선한 공기가 느껴졌다. 크룸로프 성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그 사이 하늘이 흐려져서 뭔가 음침한 느낌이 들었고 이야말로 진정한 우리가 생각하는 중세의 분위기구나! 싶었다.


그러다 9시 30분을 좀 넘긴 시간에 크룸로프 성에 불빛이 들어왔고, 둘은 강가로 향했다.

망토 다리와 성 탑 쪽 야경

강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둘처럼 야경을 보러 산책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망토 다리에 사람이 있는 걸 보고 올라가 볼까 싶기도 했지만 J 입장에서는 숙소에 에어컨이 없으니 더 이상 땀 빼고 싶지 않았다. 그저 강가를 걸으며 크룸로프 성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낮과 다른 분위기를 보는 것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크룸로프 성 야경과 흥겨운 연주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몰라도 밤의 크룸로프 성은 유령이나 드라큘라가 살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P는 '흐리거나 비 오는 체스키도 멋질 거 같은데 내일 비나 왔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 창가에 뭔가 떨어지는 소리에 눈을 떴다. 밖을 보니 정말로 비가 오고 있었다.

이왜진? 진짜 비가 오다니

예보에 없던 비였다. 지나가는 비인지 강수량이 많지 않아 둘은 바람막이 후드를 믿고 나가보기로 했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적어서인지 몰라도 조용한 마을에 비가 부스스 내리니 전날과 완전 다른 분위기로 보였다. 둘은 우천 분위기를 좀 더 느끼고자 강가에 있는 카페를 가보기로 했다.

강가 카페에서 커피탐

전날 사람들로 꽉 차 있던 야외석은 서너 명 밖에 없었다. 둘은 강에 가까우면서 가장 외진 자리에 앉았는데 무슨 장난인지, 이때 갑자기 비가 많이 왔다. 둘은 빗소리와 서늘한 공기를 즐기며 오랜만에 맘 편히 따뜻한 커피를 주문하여 마셨다. 둘 옆으로 오리 가족들이 올라와 잠시 털을 고르고 쉬길래 한참이나 구경했다.


그 와중에 P는 또 딴생각을 했다. '여유가 되면 이렇게 비 많이 온 후 래프팅하면 딱인데'라고. J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곧 떠나야 하니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좀 잠잠해질 때 근처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GPT가 추천한 브런치 카페였다. 샌드위치 두 종류를 주문했는데 그중 한 샌드위치에 김치가 들어있는 것 아닌가?! 둘은 뜻밖의 김치와의 재회에 빵 터졌다. 심지어 본격적으로 제대로 익은 김치였다. 샌드위치 빵과 치즈와 김치가 만나니 치즈 김치전을 먹는 느낌이었다. 뜻밖의 곳에서 친숙한 것을 만나 재밌는 경험을 한 셈이다.


둘이 식사를 마치고 나니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기왕 이리된 거 전날 가보지 못한 곳을 잠시 들렀다가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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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브런치 먹은 곳 (중) 부데요비체 문과 록시땅 매장 (우) 벽화가 있는 건물

전날 가지 못했던 곳은 구 시가지 동편에 있는 라트란(Latrán)이라는 곳이다. 삼각형 모양의 붉은 지붕을 가진 부데요비체 문(Budějovice Gate)까지 가보았다. 이 부근에도 건물 벽에 그려진 그림 때문에 많은 관광객이 있었고 기념품 가게도 많았다. 그냥 지나기 아까워 기념품 하나를 샀다.


이제 체스키크룸로프와 안녕할 시간이다. 숙소로 돌아가 체크아웃 후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가는 길에 성 비투스 성당이 있었는데 J는 아무래도 지금껏 머문 곳 중 유일하게 성당에 가지 못해 신경 쓰여 P에게 잠시 짐을 맡아달라고 부탁하고 성당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성당에서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오고 J도 그 뒤에 달려 나왔다. '설마 혹시 또 미사였냐'라고 P는 웃으며 물었고, J는 그건 아니고 그저 단체 관광객과 겹친 것이라 했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라는데 과연 어떤 것일지? J만 알 것이다.


버스 터미널로 가는 길은 내내 오르막길이었다. 다행인 점은 완만한 경사라는 점과, 구 시가지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이 몇 있어 쉬엄쉬엄 가기 좋았다는 것이다. (구글 지도에 표기된 대로 옮겨오면 Buraco dos RatosVyhlídka 등 두 군데가 대표적이다. 특히 후자 쪽이 뷰가 좋다.) 만약 구 시가지에서 버스 터미널로 가야 한다면 시간 여유를 두고 출발하여 뷰를 감상하며 가면 좋을 것이다. 또한 세미나르니 정원을 가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버스 터미널 가는 길에 전망을 보면서 대체할 수 있을 듯하다.


참고: 이 글의 표지 사진이 버스 터미널에 가는 길에 Vyhlídka에서 찍은 것이다.




숙소에 있는 에어컨을 사용할 수 없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둘 다 대만족 한 여행지였다. 중세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기대한 만큼의 색다른 경험이었으나, 조용하고 차분한 곳일 줄 알았는데 의외의 역동성이 있던 곳이라는 점이 새로웠다. 듣던 대로 2-3시간이면 다 둘러볼 수 있는 작은 곳이지만 1박을 하는 편이 좋다는 것에도 공감했다.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이렇게 다른 분위기가 나는 곳일 줄은 몰랐기에.


앞서 언급한 것처럼 ChatGPT의 추천 코스로 돌아다닌 최초의 여행지가 되었는데,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GPT가 안내한 대로 돌아다니는 것도 생각보다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느꼈다. 앞서 몇 번이나 길을 헤맸지 않은가. 또한 GPT는 '실패하지 않을' 코스를 안내하는 특징이 있다. 대중적이고 튀지 않으며 안전한 선택을 권장하는 것. 그래서 GPT 추천 코스를 따르되 본인이 느낌 오는 여행 코스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해도 좋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둘은 버스를 타고 프라하로 간다. J가 부다페스트에 이어 그토록 야경을 보고 싶어 했던 바로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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