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레인 쿼카 Aug 12. 2024

[1편] 두 번의 공황, 하루만에 정신과 뛰쳐나온 이유

공황의 시작

제 첫 공황 발작은 가족 여행 중에 일어났습니다.

해변에서 돗자리에 앉아 회를 먹고 있을 때였죠.


갑자기 시야가 좁아지고, 심장이 두근대고,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불안감이 전신을 엄습했죠.


그 순간 저는 무력했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짧았지만 정말 길게 느껴진 순간이었습니다.


두번째 공황

시간이 흘러 저는 테니스 학원을 등록했습니다.


그 날엔 유독 공이 라켓에 잘 맞지 않았습니다. 

공을 받아치는데 계속 네트를 넘기지 못했죠. 


그러다 갑자기 공황이 또다시 찾아왔습니다. 

여행 때와 동일한 증상이었죠.


그 순간에는 왜 공황이 왔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이대로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길로 정신과로 향했습니다. 


숨겨진 고통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나중에 돌아보니 

그때 저는 무척 외로운 상태였습니다. 


저는 방학이 싫었습니다

공부에만 열중하면 됐던 학기 중과 달리, 

방학이 되면 혼자서 할 게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공부하기 위해 고립을 '선택'했다 믿었지만,

언젠가 그것은 '회피'에 대한 변명이 되었습니다.


친구가 필요없다고 자신을 위로했지만

사실은 길거리에 친해보이는 사람들

다정한 연인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사실 정말 괴로운 것은 '외로움' 자체가 아니라, 

'속 터놓을 친구 한명 없는 처량한 내 모습'

에 대한 수치심과 자책감이었습니다.


연락할 사람이 없으니 공허하고, 

제 존재 이유 자체를 느끼지 못했죠


치료의 시작

선생님은 제 얘기를 듣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근데 쿼카씨, 친구가 꼭 있어야 할까요?"


"혼자서 잘 노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 말을 들었을 땐 조금 당황했습니다.

'사람 놀리나? 이게 뭔 X소리야'
'그렇게 사는 게 별로 안 행복하다고! 
나는 친구를 원한다고!

라는 반발심이 들었죠.


선생님은 사람들을 만날 때 도움이 될 것이라며,

SSRI(항우울제의 일종)를 처방해주셨습니다. 


인생 첫 항우울제, 과거로 떠나는 여행


그날 저는 생애 처음으로 항우울제를 복용했습니다. 그리고 밤에 각성되어 잠이 깨는 부작용을 경험했죠.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건 아니다.
지금 문제는 나의 생각하는 방식에 있는데, 
이걸 약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문제는 내 기억 속 과거 어딘가에 있다. 
시초가 된 트라우마를 찾아야 한다.


그렇게 제 인생에 대한 성찰이 시작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 시절까지,

모든 기억을 꺼내 진지하게 탐구하기 시작했죠.


'초등학교 시절 나는 참 발랄했지....'

'중1 때까지만 해도 참 재밌었어...'

'중2 때 기분 나쁜 일이 있었지....'

'고등학교 때는 항상 친구는 한 두명뿐이었고....'

'코로나 때는 집에만 있었어...'


과거에서 현재로

처음에는 답을 찾은 줄 알았습니다.


"그때 그 놈이 나한테 그런 짓을 했는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게 잘못이었어!"


"그때 그런 행동을 했었지, 

부끄럽게 왜 그랬을까?"


하지만 지금 관점에서 보면

이건 성찰이 아니라 자책이었습니다.


그러다 깨달았습니다.

시초의 트라우마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나의 문제는 과거에 있는 게 아니야.


나의 문제는 지금 이 순간,
과거를 탓하려는 나에게 있어.


내가 불행했던 이유는,
내가 '나'의 편이 되어주지 못하고
항상 '나'를 질책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아, 나야말로 '나'의 가장 큰 적이었구나.


이 깨달음을 통해 과거의 공황 발작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행 중의 공황도, 테니스를 치다 겪은 공황도 

모두 제가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아까 왜 친구들 앞에서 그런 말을 했지? 

굉장히 쪽팔리고 부끄러운 일이었어"


"나는 무조건 친구가 많아야만 해. 

친구가 없는 나는 전혀 멋있지 않아"


"친구 하나도 만들지 못하는 내가 될 바엔, 

차라리 고립을 선택하는 내가 되겠어"


"나는 무엇이든 무조건 잘해야만 해. 

이걸 못하는 나는 쓸모없고 가치가 없어


같은 생각이 저를 평생동안 압박했던 것입니다.

이 진실을 알게 되면서,

'나'에게 진심으로 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변화와 치유

이 깨달음은 제게 큰 변화의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정신과 선생님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이번에는 상담을 받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감사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였죠


선생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 이제 더 이상 

상담이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제 문제가 무엇인지 깨달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말 감사했습니다."


선생님은 제 결정을 존중해 주셨고,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다시 찾아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날 상담실을 나서는 제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습니다.

이후로 저는 모든 일에서 

스스로를 탓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시험을 좀 못 봐도 오히려 나를 다독이고

인간관계에서 실수를 해도 내 편이 되었죠. 


나를 비난하는 대신

다음에 같은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할지 

해결책을 세는 건설적인 태도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서서히

'친구가 없어도 괜찮은 나', 

'테니스를 못쳐도 괜찮은 나'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괜찮은 나'가 되자, 

'친구를 만들고 싶은 나', 

'테니스를 잘 치고 싶은 나'가 되었죠. 


이것은 과거의

'친구가 없어서 무가치한 나', 

'테니스도 못치는 볼품없는 나'와는 달랐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마음에는 여유와 용기가 넘쳤죠.

그렇게 3년이 지난 오늘날,

제 주위에는 소중한 연인과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이 있습니다. 


쓰레드에서 알게된 훌륭한 분들도 

제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죠


저는 공황을 두번 다시 겪지 않았고, 

자책 없는 바람직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진정한 자기애(Self-love)란

이제 정신과 선생님의 말씀도 이해가 갑니다.


단지 그 당시에는 제가 스스로의 적이었고,

스스로 엄격한 기준을 몰아붙였기 때문에,

그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죠.


제가 아래 적힌 이 말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건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이제 저는 친구가 한 명도 없는 자신이어도 

사랑할 자신이 있습니다. 


테니스를 못쳐도 저를 사랑할 자신이 있고

공부를 못해도 저를 사랑할 자신이 있습니다


이제 제가 그동안 

'자책하지 말고 스스로를 사랑하라'는 말을 

특히 강조했던 이유를 아시겠나요?


저는 이 여정을 통해 

진정한 자기애(Self-love)와 수용의 힘을 깨달았고, 그것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경험했습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자신을 사랑하고 수용하는 것의 기쁨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마음의 평화로 가는 길임을, 저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