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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인 쿼카 Aug 22. 2024

2. 적을 만들 용기

나는 평화주의자였어. 갈등 상황에 처하면 무척 불편해지고 하루 종일 신경 쓰이며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했지. 그래서 항상 나를 굽히고 한 발 물러섰어. 인간관계에서는 절대 적을 만들면 안 되고, 적을 만들면 나중에 큰 곤경에 처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이 생각이 깨진 날이 왔어. 친구들이랑 여행 다녀온 뒤 뒤풀이 자리에서 한 녀석이 나한테 굉장히 무례한 말을 했어. 내 노력을 깎아내리고 내게 소중한 사람을 조롱하는 말이었지.


그 순간 기분은 엄청 나빴고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그냥 웃어넘겼어. 왜 그랬는지 알아?


여기서 정색하면 사람들이
나를 진지충으로 볼 거야.

내가 화내면 나를
예민한 사람이라고 여길 거야.


이런 생각 때문이었어. 내 감정보다 남의 시선을 더 신경 썼던 거지.


집에 와서도 찝찝했어.


아, 그때 그렇게 말할 걸.


OO이는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한 거지?


그래도 OO이가 나한테
잘해줄 때도 있으니까...


이런 생각으로 가득했어. 상대방을 탓하기는커녕 오히려 이해하려 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나를 자책하면서 수치심에 빠졌지.


너무 괴로워서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한테 전화했는데, 그 친구가 해준 조언이 나를 깨우쳐 줬어.


그런 상황에선 절대 웃어넘기지 마.


그 XX가 분명히 선을 넘었는데
넌 그냥 웃어 넘기고 있었잖아.


웃지 말고 정색해.


이 말을 듣고 머리가 띵했어. 나도 모르게 계속 웃어넘기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거든. 친구는 계속 말했어.


그리고 너, 그 자식 감싸주지 마.


너 자꾸 무의식적으로 걔 편을 드는데,
걔는 너의 적이야.
그냥 개XX라고 생각해.


이 말도 충격이었어. 난 항상 누군가가 나한테 무례하게 굴면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고만 했거든.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말도 안 되는 논리였어. 애초에 변명이 필요하다는 것부터 동등한 친구 관계가 아니라는 뜻이니까.


그 후 난 그 녀석한테 전화해서 단호하게 말했어. 나는 너를 존중하는데 넌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그리고 다시는 사람들 앞에서 내 여자친구를 네 개그 소재로 쓰지 말라고 경고했지.


놀랍게도 그 녀석은 사과했어. 당황한 것 같더라고. 그동안 내가 계속 웃어넘기니까 그런 행동이 괜찮은 줄 알았나 봐.


이 경험에서 두 가지를 깨달았어.   


첫째, 무례한 사람들은 대부분 강약약강이야. 자기보다 세 보이거나 인맥이 넓어 보이는 사람한테는 절대 그러지 않아. 무조건 자기보다 약해 보이는, 심한 말해도 그냥 웃어 넘기는 착한 사람들한테만 그래. 웃어넘길수록 더 만만하게 보고 더 무례해지지.


그러니까 그런 놈들한테 약해 보이면 안 돼. 내가 '강하다'는 걸 보여줘야 해. 근데 이게 꼭 어려운 건 아니야. 무례한 말 들었을 때 정색하고 경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진짜 싸울 자세를 보이면 그런 나쁜 놈들은 얍삽하게 더 이상 덤비지도 깝치지도 않아.


물론 무조건 화내고 욕하라는 건 아니야.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선 참았다가 나중에 개인적으로 경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그게 더 현명할 수도 있지.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경고는 해야 해.


둘째, 누군가와 갈등이 생겼다고 해서 그 주변 사람들까지 다 적이 되는 건 아니야. 처음엔 그게 두려워서 모임도 피했는데, 이제 알았어. 그게 아니라는 걸.


예를 들어, 내 친구 철수가 영수랑 싸웠다고 해서 철수가 영수를 욕한다고 내가 갑자기 영수를 싫어하게 되는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이런 일이 있을 때 오히려 더 당당하게 모임에 나가고 나를 드러내야 해.


누군가 나에 대해 나쁘게 말할 수 있다고 숨지 말고, 오히려 그 사람 주변 사람들이랑 더 많이 소통하고 내 영향력을 넓혀야 해. 가만히 있으면 다 그 사람 말만 듣게 되는 거잖아. 그 사람은 내가 위축돼서 아무 말도 못하길 바랄 테니까.

 

이제 '강강약약'은 내 삶의 모토가 됐어. 강한 사람한테는 강하게, 약한 이들에게는 약하게 부드럽게 대하는 거지. 이제 나쁜 놈들한테 상처 받을까 봐 숨지 않을거야. 그 놈들이 나 욕할까봐 다른 사람들 피하지도 않을 거고.


앞으로는 더 당당하게 맞설 거야. 왜? 난 착한 사람이니까. 내가 착하게 대하면 그걸 알아줄 사람은 꼭 있을 거야. 그러니까 내가 참는 것은 더이상 내가 약해서, 눈치 보느라 그러는 게 아니야. 그냥 내가 봐주는 거지.


이 사실을 깨닫는 데 정말 오래 걸렸어. 그동안 나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적이 많았지. 이제부터는 나를 적극적으로 지키면서 살거야. 적은 안 만드는 게 좋긴 해. 하지만 적으로 삼아야 할 사람을 그냥 넘어가면 나중에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어. 이 사실을 나는 평생 잊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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