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8: 앨범 속의 잔상

by 아이린

스튜디오 내부는 여전히 고급스럽고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촛불 향이 은은히 퍼지며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공기에는 어딘가 차갑고 비밀스러운 기운이 감돌았다.

하진은 스튜디오의 매니저와 약속한 공식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가 기다리던 순간, 무거운 표정을 한 남자가 조용히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Sedme 스튜디오 매니저입니다.”

그는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중후한 인상이었다. 예의 바르게 악수를 건넸지만,

눈빛은 어딘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탐정님이시죠? 유진 씨 관련 사건으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하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손을 단단히 잡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유진 씨의 결혼 촬영이 이미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마지막 촬영 일정과 관련된 기록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매니저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지만,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은... 이미 완료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말을 맺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무거운 가죽 사진 앨범 하나를 꺼내 하진에게 건넸다.


검은색 가죽 커버에는 금박으로 “Sedme Studio - Private Memories”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매니저의 손이 앨범을 건네는 순간,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진은 천천히 앨범을 열었다. 첫 페이지에는 유진과 한 남성이 찍힌 웨딩 사진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유진은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어딘가 불안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옆에는 키가 크고 잘생긴 남성이 서 있었다.

완벽한 비주얼, 부드러운 미소, 그리고 세련된 슈트 차림까지, 전형적인 이상적인 남편의 모습이었다.

하진은 사진을 가만히 응시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유진... 이 사람은 누구였던 거야?”

하진은 Sedme 스튜디오에서 앨범을 넘기던 순간 봤던 남자의 얼굴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의 완벽한 외모, 날카로운 시선, 그리고 어딘가 거만하면서도 차가운 미소.


‘이 남자를 어디서 봤지...?’

사무실로 돌아온 하진은 수첩과 파일을 펼쳐 과거 사건 기록들을 훑기 시작했다.

그의 기억력과 관찰력은 남다른 수준이었다.


앨범 속 남자의 얼굴은 분명 어디선가 본 인물이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기억은 흐릿했고, 마치 의식적으로 잊히기를 강요당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사무실 복도를 지나던 동수가 커피잔을 들고 무심코 지나치다 하진의 책상 위 사진을 힐끗 보았다.

“어? 이 사람... SP 그룹 둘째 아드님 아니야?”

하진은 눈이 번쩍 뜨였다.


“뭐라고?”

동수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사진을 가리켰다.


“이 사람 맞잖아. 뉴스에 자주 나오던데.”

하진은 빠르게 인터넷 검색 창을 열었다. 동수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SP 그룹의 둘째 아들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 최도윤(Choi Do-yoon)

SP 그룹의 부회장 최경철의 둘째 아들.

연령: 35세 / 직함: SP 그룹 해외사업 총괄 이사


하진은 검색 결과의 프로필 사진을 확인하자마자 충격에 빠졌다.

“바로 이 남자야...”

화면 속 최도윤은 앨범 속 남자와 완벽히 일치했다.


“이 남자가 유진의 약혼자라니...”

하진은 뉴스 아카이브를 검색하며 SP 그룹과 최도윤에 관한 과거 기사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SP 그룹, 의료 사업 확장 및 재활병원 인수 발표”

“회장 후계자 경쟁의 핵심 인물, 최도윤”


그중 예전 기사가 하진의 눈길을 끌었다.

“SP 그룹 차남, 비공개 결혼 발표... 신부 정보는 미공개”

하진은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기사는 공식 결혼 발표를 알리면서도 신부의 정보는 완벽히 감춰져 있었다.

하진은 사무실의 희미한 조명 아래에서 유진의 결혼사진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담긴 행복한 미소와 불안한 눈빛이 교차하는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과거의 한 장면이 불현듯 떠올랐다.


몇 년 전, 하진과 유진이 함께 산책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들은 도시 외곽의 작은 공원 근처에서 우연히 결혼식이 열리고 있는 야외 행사장을 발견했다.

그곳은 작고 아늑한 정원에 은은한 조명과 화려한 꽃 장식이 가득했고,

피아노 선율이 잔잔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유진은 눈을 반짝이며 하진의 팔을 툭 치며 말했다.


“와, 이런 곳에서 결혼하고 싶다~ 너무 예쁘지 않아?”

하진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때 유진은 상상에 빠진 듯한 표정으로 결혼식 풍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너도 결혼하면 이런 곳에서 할 거지?”

그녀는 장난스럽게 물었지만, 그 안에는 어딘가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때의 하진은 유진의 불안정한 감정 상태를 알고 있었다.

가끔 사라지고, 흔들리는 표정, 예민해지던 순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진지하게 답변하지 않고 그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네. 진짜 멋진 곳이네.”

유진은 조금 실망한 듯한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았지만, 곧 다시 환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바꾸었다.


“언젠가 나도 멋지게 결혼할 수 있겠지?”

그때의 유진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하진은 이를 악물며 사진 속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유진을 다시 응시했다.

그녀가 꿈꾸던 결혼식은 결코 SP 그룹과의 강요된 결혼이 아니었다.

그저 행복한 순간을 상상하며 미래를 그리던 여자의 모습이었을 뿐이다.


“유진... 대체 왜 이런 결혼을 받아들였던 거야...?”


“행복만을 꿈꾸던 그녀는... 이제 여기에 없어.”

하진의 목소리는 공허하게 사무실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과거의 행복한 유진의 모습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결혼식의 가면을 쓴 고통받는 여성일 뿐이었다.


하진은 인터넷 검색창을 열고 SP 그룹과 최도윤의 과거 기사를 다시 조사하기 시작했다.

“SP 그룹, 의료 사업 확대 발표... 재활병원 및 제약회사 인수”

“SP 그룹 차남 비공개 결혼 발표... 신부는 미공개”

“비밀스러운 투자 프로젝트: SP 그룹의 의료 혁신 계획”


어둠이 짙게 드리운 사무실.
하진은 책상 위에 펼쳐진 앨범을 응시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진...
그녀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앨범 속 유진의 아름다운 미소와 불안한 눈빛이 교차하며 비밀스러운 신호를 보내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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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연재부터는 요일이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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