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의 장벽
금요일에 조금 일찍 퇴근해서 연극을 보러 용인의 한 대학교로 향했다. 각 대학교들의 연극영화과에서는 학기말, 또는 학기초에 제작실습이나 워크샵 결과물을 무대에 올린다. 무대에 올리는 작품들은 체홉, 닐센, 아서 밀러 등 고전 작품 부터, 처음 들어보는 창작 작품까지 다양하다. 연출과 연기는 프로 수준인데 입장료는 무료. 우리 회사와 집 근처에 있는 대학교 예술학부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찾아보니 역시~ 학기말이라서 공연들이 있었고, 초대권도 미리 예약해 두었다.
대학 캠퍼스 주차료는 15분당 천원 (=1시간에 4천원)이지만, 연극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4시간용 할인주차권을 2천원에 판매한다. 초대권을 받으면서 할인 주차권도 함께 구매했다. 공연이 끝난 뒤 차를 몰고 교문을 통과하면서 구매한 할인 주차권을 기계에 넣을 준비를 하는데, 아차차, 나는 카카오 T앱의 주차패스도 사용하는 상태였다. 내가 구매한 할인 주차권을 주차기계에 넣기 전에, 이미 주차요금 12,000원이 자동으로 청구 되어 버렸다.
카카오T 주차패스는 번호판을 인식, 입차/출차시간을 감지해서, 지정된 주차요금 규칙대로, 내 신용카드를 통해 주차요금을 자동으로 결재해준다. 아마 지난번에 다른 장소에 갔을때 이 기능을 사용 시작, 신용카드를 연동시켜놓았던 것 같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몰라서, 몇십 초간 멍~ 하니 멈춰있었다. 결국 주차요금으로 12,000원(3시간) + 2000원(할인 주차권) = 총합 14,000원을 지불한 셈이다. 내 돈...
다음날 아침에는 기업환경에 도입되는 생성형 AI 기술들에 대한 세미나에 참석했다. 세미나가 끝난 뒤 참석자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IT서비스 제공자와 구매자 양쪽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었다. 각 기업별로 "맞춤형" AI 서비스를 구축해주려면, 서드파티가 만든 LLM + 기업 내에 축적된 knowledge base 에 RAG를 적용해서 만드는게 일반적인 접근방식인데, digitaized knowledge base 를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 기업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wiki나 sharepoint 등을 사용하는 대기업들도 실상을 보면 outdated documents 가 꽤 많다.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핵심적인 지적 자산의 대부분이 해당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속한 시니어 직원들의 머릿속에 머물러있다. 이 시니어 직원들이 이직하거나, 나이가 들고 정년 퇴직하면 지식과 경험은 사람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 퇴사할 때 머리는 회사에 두고 떠나시라고 할 수는 없다.
주말의 두 경험을 통해 digital world와 physical world사이의 단절에 대해서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동일한 서비스 제공자(학교 주차장) & 사용자(주차한 사람)라는 조건에서 수행되는 사용자 경험이지만, 온라인 - 오프라인 시스템이 연동되어 있지 않았다. 시스템 레벨만이 아니라, 데이터 레벨로 내려가면 오프라인에만 저장되고 온라인과 실시간으로 동기화되지 않는 데이터가 무수히 많다 (예: 수기로 입력하는 점검 일지). 오프라인에 떠도는 데이터를 온라인과 연동하려면 단절된 시스템 사이에서 복합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것들이 모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장벽으로 남아있다. 아쉽지만 당분간 주차패스 서비스는 사용하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