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선택과 집중'의 뜻을 깊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는 의미는 나머지 것을 버린다는 것이다.
나머지 선택에 대한 미련과 집착없이 그 선택에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아니 그 선택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머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말이다.
내가 이것을 선택했는데 집중이 되지 않는다 싶으면 나머지 것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된다.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택 이후의 나의 태도이다. 내가 그 선택을 어떻게,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이다.
내 자녀를 사랑하겠다는 나의 선택은 지금 이 순간 아이를 어떻게 대하느냐와 연결된다.
매일 아침, 등교하는 아이를 꼭 껴안아주고 '엄마가 사랑하는 거 알지?, 오늘도 우리 잘 지내보자'라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매 순간 자신의 선택에 집중하는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을 괴롭히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
'오케이 내가 그랬구나. 내일은 꼭 다시 실행해야지.'라고 다짐하는 것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엄마가 아이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에 가치가 필요하듯, 자녀를 양육하는데 있어서도 가치(value)는 뿌리가 된다.
단단한 뿌리 역할을 하는 핵심 가치가 있다면 각양각색의 문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매번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어려움을 겪으며 흔들리지 않아도 된다.
'내 아이가 매일 학습지 3장을 풀고 책을 하루에 두 권은 읽어야 되고 숙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 되고 잠은 10시 이전에는 자야 되고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은 적어도 하지 않아야 된다'는 신념체계가 있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가치에 기반한 것인가?
여기에서 더 중요한 것은 그래서 '지금 그 생활로 아이와 내가 고통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아울러 매일 그렇게 해야 한다는 신념은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온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이 '그냥 해', '네게 좋은 것이니 하면 돼' 등 이유나 목적을 설명하지 않고 강요하는 말과 행동들이며, 결국 이 말들로 상처받아 회복되지 않는 관계로 치닫게 된다.
더 나아가 대학생이 되어서도 내가 왜 이 전공을 선택했는지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해 늦은 방황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또 앞에 닥친 문제들만 보며 더 좋은 취업을 하기 위해 무작정 공부하고 직장에 들어가서도 승진만을 바라보며 눈 앞에 놓인 일들을 처리하다 소진되어 버린다.
우린 늘 이렇게 바쁘다.
학교에서 돌아 온 아이의 말을 제대로 들을 시간 조차 없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래서 어땠어?, 우리 지수는 그때 어떤 마음이었어?'라고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아이를 바라보는 것이다.
꼭 마쳐야 하는 일이 있다면 '그런데 엄마가 더 듣고 싶지만 이거 설거지 마무리하고 또 들을까?'라고 말하면 된다.
우리가 이걸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빠서'라고 말하지만 우린 지금 이 순간을 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린 이렇게 늘 미래를 향해 산다. 지금 이 순간을 살지 않아 마음이 늘 분주하다.
이렇게 분주한 마음은 감정적으로 초조하고 분노를 일으키기도 한다.
강의 중 내게 이 메시지를 들은 한 어머니가 펑펑 울며 자신의 사례를 말한 적이 있다.
설거지하는 자신을 아이가 방해한다고 느껴
'엄마 설거지하는 거 안 보이니?, 다 끝나고 들을테니 기다려!!'라고 말했다는 고백을 하면서 이제야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아이에게 상처가 되었을지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고 후회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처음 강의에 참여했던 이 분의 표정을 또렷이 기억한다.
현재 자신의 감정 중 가장 큰 것이 '원망감'이라고 말한 것이다.
프로그램 중반에 들어서자 그 딱딱하고 굳었던 표정이 유연해지면서 편안해지는 과정을 교육에 참여했던 우리 모두는 함께 볼 수 있었다.
자신이 그런 감정을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 그 감정을 인정하게 된다.
그랬을 때 자신의 행동이 이해가 되고 그로인한 결과를 받아들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