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어진 방에서 보낸 밤, 이틀 밤 (2)

그가 남기고 간 색은 바다 위에 오래 머물렀다

by 허정호

그가 남기고 간 색은 바다 위에 오래 머물렀다

3일째 아침.

아내는 계획을 바꿨다. 하루 더 머물려던 일정을 접고, 집으로 내려가자고 했다.

딸의 원룸은 이불과 옷가방, 펼쳐 놓은 짐들로 가득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좁은 공간에서 자는 불편함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딸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집을 비워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 듯했다.

딸은 작별 인사 대신 가벼운 산책을 제안했다.

“잠깐 걷고, 점심 먹고 가요.”

그렇게 우리를 산정호수로 안내했다.

호수 둘레길을 천천히 걷는 동안, 아들과 며느리는 멀찌감치 앞서 나갔다.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겨울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잔잔한 물결이 바람결을 따라 일렁였다.

이따금 스쳐 가는 갈대 사이로 햇살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때 배낭을 멘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왔다.

아파트 광고지 몇 장과 칼라 행주를 말없이 내밀었다.

이유 없는 친절은 설명보다 먼저 마음을 데운다.

되돌아오는 길에 다시 마주쳤다.

우리가 행주를 들고 있는 걸 본 아저씨는 빙긋 웃더니 물었다.

“몇 분이세요?”

그리고는 사람 수대로 행주를 다시 건넸다.

괜한 말이 없어서, 그 친절은 더 따뜻했다.

점심을 먹고 집으로 향하려던 찰나, 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긴급출동을 불러 시동은 걸었지만, 기사님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오래 못 갑니다. 배터리를 교체하셔야겠어요.”

추천받은 정비소는 부담스러웠다.

결국 검색으로 찾은 곳에서 배터리를 교체했다.

그대로 집으로 가기엔 마음이 쉽게 접히지 않았다.

가는 길에 변산반도에 들러 노을을 보고, 저녁을 먹고 가기로 했다.

하지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배터리를 교체하는 동안, 태양은 이미 붉은 흔적만 남긴 채 서산 너머로 기울고 있었다.

변산해안에 도착했을 때, 바다는 말없이 노을을 품고 있었다.

태양은 사라졌지만, 그가 남기고 간 색은 바다 위에 오래 머물렀다.

우리는 그 앞에 멈춰 서서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다.

딸과 함께 보지 못한 순간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어쩌면, 아쉬움이야말로 여행의 끝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해변에는 겨울바람이 불었다.

모래 위를 스치는 바람이 조용히 하루의 끝을 알렸다.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백합죽과 백합비빔밥으로 따뜻한 저녁을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

가족과 함께한 삼일, 그리고 한 장의 노을.

그 하루가 남긴 것은 풍경보다도, 오래 머무는 마음의 여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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