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어진 방에서 보낸 이틀 밤(1)

아이들의 삶 곁에서 잠시 머문 여행

by 허정호

아이들의 삶 곁에서 잠시 머문 여행

딸은 4평짜리 원룸에서 7평 방으로 이사했다며 자랑을 했다.

“엄마 아빠, 이제 방이 넓어졌으니까 놀러 오셔도 돼요!”

그 말 한마디에 벌써부터 가슴이 뭉클해졌다.

마침 아들과 며느리도 방학을 맞아 여행 계획을 알려왔다.

“3박 4일로 갈 거야.”

하지만 아무리 방이 넓어졌다 한들, 다섯 명이 한 공간에 묵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와 아내는 조심스레 말했다.

“너희 둘은 방을 따로 잡는 게 낫지 않겠니?”

아들과 며느리는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가 보고, 불편하면 그때 생각할게요.”

우리는 각자 덮을 이불과 베개를 챙기고, 아침을 해 먹기 위해 죽 제조기와 사과, 딸기, 귤 같은 과일도 가방에 넣었다. 여행이란 늘 준비하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는 법이다.

가는 길, 함양휴게소에서 허리를 펴고 잠시 바람을 쐬었다. 근처 옷가게 앞에서 아내와 나는 동시에 발걸음을 멈췄다.

“이거 괜찮은데, 며느리한테 한번 입혀보자.”

가성비 좋아 보이는 바지를 발견한 아내는 며느리를 불렀다. 하지만 막상 입어보니 바지는 너무 딱 달라붙고 짧았다.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빨리 벗고 나가자.”

우리 모두 웃으며 가게를 나왔다.

딸의 퇴근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예전에 아들이 면접을 보러 왔을 때 간 갑사로 향했다. 갑사 입구 식당거리의 한 식당에서

비빔밥 네 그릇을 시키고, 채소를 좋아하는 아들이 가져온 쌈채소를 내밀며 씻어달라고 부탁했다. 주인은 아무 말 없이 주방에서 깨끗이 씻어 건네주었다.

“1,500원 절약했다!”며

야무진 아들은 카드 결제를 취소하고 급히 공주페이를 사서 결제했다.

그 말에 우리는 박수를 치며 웃었다. 잘했다고.

절 초입의 수국 정원을 지나자, 교과서에 실렸던 이상보 선생의 ‘갑사 가는 길’ 비가 눈에 들어왔다. 길을 걷는 동안 나무들은 잎을 떨군 채 가지만 남기고 겨울의 위세를 드러내고 있었다. 무장애 길은 완만했고, 고요한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아내와 나는 대웅전에 들어가 앉아 밖을 바라보았다.

그날은 아내가 발을 다쳐 깁스를 하고 잘 걷지 못했었다. 나는 아내를 업고 대웅전까지 왔다. 그 자리에서 밖을 바라보며, 아들의 합격을 기원하며 간절히 기도했었다.

겨울비가 내리던 날, 나뭇가지마다 얼음꽃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 영롱한 빛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강당 계단 옆 그 나무를 한참 바라보던 기억. 그날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해가 어둑해질 무렵, 딸과 만나기로 한 청국장집으로 향했다. 대통령이 다녀갔다며 간판을 내세운 집이었다. 우리는 차 안에서 어떤 대통령일지 맞혀보는 게임을 했다. 입구 사진을 보고 먼저 맞힌 사람이 저녁을 사기로 했다.

딸의 원룸에 도착하자, 우리가 가져온 이불 보따리와 짐들로 방은 금세 가득 찼다. 당장 쓰지 않는 짐은 보일러실로 옮기고, 캐리어와 가방은 주방 복도에 줄지어 세웠다. 욕실 사용 순서는 묵찌빠로 정했다. 그러나 묵찌빠와 관계없이 여성들이 먼저, 나는 마지막이었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었다.

화장실에 자주 가는 나는 현관 쪽에 자겠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아내는 내 옆에, 딸은 엄마 옆에, 아들 부부는 맨 안쪽에 누웠다. 딸이 쓰던 두 겹의 요는 나뉘어 매트리스는 아들 부부가, 그 위의 요는 아내와 딸이 썼다. 나는 가져온 얇은 이불 세 장을 접어 깔았다. 체중이 줄고 나서부터 엉치뼈가 배겨, 깔개가 두툼해야 잠을 잘 수 있다.

환경이 갑자기 바뀌어서였을까. 딸은 새벽 두 시가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내와 나는 자는 둥 마는 둥 뒤척였고, 아들 부부는 아무 말이 없는 걸 보니 곤히 잔 듯했다.

긴 밤이 지나고, 나는 일찍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미리 준비해 온 견과 죽을 끓이고 사과 네 개를 씻었다. 견과 죽 한 컵에 사과, 딸기, 귤로 간단한 아침을 먹었다.

딸은 회사를 구경시켜 주겠다며 나섰다. 아침을 간단히 먹어서인지, 회사에 도착하기도 전에 점심부터 먹자고 했다. 딸은 회사 근처에 잘 알려지지 않은 맛집이 있다며 허름한 칼국수집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작은 면소재지에 자리한 식당은 관광객도, 북적임도 없이 한적했다. 점심시간이었지만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칼국수와 콩나물 비빔밥을 먹고 있는데, 손님이 더 없자 사장님은 옆 테이블에서 젊은이와 조기 축구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나이에 조기 축구라니, 문득 궁금해졌다.

“사장님, 식당은 얼마나 하셨어요?”

“한 30년 됐어요.”

“연세는요?”

“올해 85입니다.”

모두가 놀랐다.

“그런데 조기 축구를 하세요?”

“그럼요. 고향 내려와 식당 시작한 뒤로 하루도 안 빠지고 공을 찹니다.”

대기업에서 퇴직한 뒤 부모님이 하던 식당을 물려받았다고 했다. 매일 아침 조기 축구로 하루를 열고, 식당 일이 끝나면 책을 읽으며 공부도 한다고 했다. 과일은 가리지 않고 먹지만 키위는 하루에 하나씩 꼭 챙긴다며, “꼭 키위 드세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딸의 회사를 둘러본 뒤, 건축상을 받았다는 카페에서 잠시 쉬었다. 저녁은 초밥집에서 함께했다. 하지만 아내는 며칠 전 씌운 어금니가 맞지 않아 초밥을 먹다 배가 결린다며 약국을 찾았다. 큰일은 아니었지만 어딘가 아쉬움이 남는 저녁이었다.

두 번째 밤이 찾아왔다. 전날 잠을 거의 자지 못해 깔개를 한 겹 더 추가했다. 덕분인지, 못 잔 잠에 대한 보상인지 나는 깊이 잠들었고, 아내도 편안히 잤다고 했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