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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나물 Jun 22. 2024

향수 선물

엄마아빠가 예쁜 그릇에 밥을 해 먹었으면 좋겠어.

 향기는 많은 것들을 떠오르게 한다. 어떤 것들은 우리를 영원히 떠난 곳으로 되돌리고, 다른 것들은 우리의 체류지에 다시 떨어뜨린다. - 시드니 해리스


  오늘은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향수를 뿌리고 외출에 나섰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당시에 집으로 잡지 부록이 딸려서 온 적이 있다. 새로 나온 향수를 맡아보라며 준 5mg짜리 작은 병에 담겨 온 향이 18살 나에게 너무 달콤하고 우아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 대학교 입학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냐는 물음에 나는 고이 간직해 온 향수 샘플을 들고 향수를 사고 싶다고 말했다. 어른이 된 나에게 이런 향이 났으면 좋겠는 마음이었다. 비싸봤자 5만 원 정도 하겠지 생각했던 그 향수는 11만 원이었다. 지금이야 향수가 워낙 비싸져서 유명한 향수 브랜드는 기본이 15만 원에 어쩔 땐 30만 원은 가볍게 넘어 가지만,  그 당시엔 11만 원이 넘어가는 향수면 정말 비싼 향수였던 것이다. 엄마는 머뭇거리다가 딸이 콕 집어 사달라고 한 향수를 비싸다고 거절할 새도 없이 사줄 수밖에 없었다.

 너무 신이 나서 새내기였던 봄 내내 그 향수를 정말 많이 뿌렸었다. 아직도 이 향수의 향을 맡으면 새내기였던 나의 봄이 생각난다. 그 뒤로 나는 향수를 모으는 것을 취미로 가지게 되었다.  그 당시 모 연예인은 여행을 할 때마다 향수를 정해놓고 가서 여행지를 추억한다고 했던가. 남들이 취미가 뭐냐고 물어봤을 때, 향수를 모으는 것이라고 하면 뭔가 멋있고 세련되어 보이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향을 찾아가는 게 정말 좋았다. 지금은 쓰던 것만 쓰고, 선물 받은 것만 쓰지만 말이다. 세월이 10년쯤 지났나. 향수라는 것이 다쓰는 게 참 어렵기에 몇 번 뿌리다 만 향수들이 몇 병 생겨나고, 나는 결혼해 쓰지 않는 몇 병의 향수를 남겨놓고 본가를 나왔다.


향수의 의미


  올해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부모님께 뭘 선물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현재 미국에서 지내는 데다가 지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좋은 선물은 못 드리지만, 내 마음을 담아내고 싶었다. 어떤 마음을 담고 싶었을까. 항상 부모님께 편지를 쓰다 보면 결국 건강관리를 잘하라며, 운동을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는 잔소리만 늘여놓기에 내가 부모님께 그런 잔소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딸 둘을 금이야 옥이야 공주처럼 키워낸 부모님, 이제는 당신들을 스스로 아끼고, 소중히 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 아빠가 매일매일 공주, 왕자처럼 지냈으면 좋겠다. 한 끼를 먹더라도 건강하고 맛있게, 예쁜 그릇에 담아서 먹으면 좋겠다. 재작년 어버이날에 엄마가 갖고 싶어 했던 그릇세트를 사드렸더니 찬장에 고이 모셔놓아 다시는 식탁 위에서 볼 수 없었기에, 이번엔 매일매일 쓸 수 있고, 부모님이 돈을 들여서 사지 않을 것 같은 것으로 고민했다. 향수였다. 나와 남편은 한껏 꾸미고 외출하는 날엔, 꼭 향수를 뿌리고 나간다. 나는 부모님이 매일매일을 그렇게 지내셨으면 좋겠다. 하루하루 특별하고, 소중하게. 별일 없는 날에도 화장을 해보고, 아끼는 옷을 입고 향수를 뿌리고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길 바란다. 이는 어느 자식의 마음도 같으리라.


  지금도 엄마, 아빠는 내가 사준 향수를 아끼느라 뿌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어느 정도 전해졌으면 한다. 스무 살의 내가 향수를 뿌리며 느꼈던 설레는 마음과 봄향기, 그 따뜻하고 기대에 찬 마음을 전하고 싶다. 분명 엄마와 아빠도 젊었을 때 그런 기억이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흘렀지만, 나를 키우며 보낸 지난 세월들을 떠올리며, 그것이 아름다웠던, 아름답지 않았던 이제는 엄마와 아빠에게 그 감정을 다시 전하고 싶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나를 키우느라 보낸 그 수많은 봄을 뒤로하고 스무 살의 봄을 다시 엄마, 아빠에게 안겨드리고 싶다. 그렇기에 내가 부모님께 드린 흔한 이 향수는 단순한 선물 이상이라고 하고 싶다. 나의 사랑과 감사, 그리고 당신들을 향한 그리움이 담겼으니 말이다. 엄마와 아빠에게 이 향수가 얼마나 당신이 소중한 존재인지 기억하게 하기를, 그리고 아름다웠던, 지금도 아름다운 당신을 생각하며 이 향수(鄕愁)를 느끼기를 바란다.


물론 편지도 따로 드렸다.





P.S. 얼마 전 언니와 통화하다 보니 부모님 선물로 향수를 드렸다고 하니 잘했다며, 며칠 전 외식 할 때 보니 엄마가 내가 대학생 때 사놓고 간 향수를 화장대에 놓고 뿌리신다고, 안 그래도 자기가 향수를 사드려야 하나 고민만 하고 있었다고 했다. 앞으로 매년 이런 선물을 해드려야겠다. 좋은 사치재 선물 추천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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