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고 준비의 경험
혹시 '강남엄마 따라잡기'라는 2007년작 드라마를 아는가?
우리 어머니는 딱 그 드라마가 방영될 즈음 나를 데리고 서울로 상경하였다.
평소에 들으신 것 때문인지, 정말 그 드라마 때문인지, 중학교를 시작하며 올라온 서울에서
아들의 공부 실력이 너무 차이가 나지 않을까 많이 걱정하셨고 나한테 미리 말씀도 많이 하셨다.
'실력 차이가 많이 날 수도 있다'
그 말과 드라마에 지레 겁먹었던 나는 중학교의 첫 중간고사에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생각보다 나의 성적이 나쁘지 않자 어머니는 욕심을 좀 더 내셨다.
당시에는 공부 좀 잘하는 중학생들은 영재고 준비를 시키는 게 유행이었다.
나는 나의 꿈인지도 모르지만, 아마 나의 꿈이겠거니 정도로 생각하고 영재고 준비반에서 일 년 반정도를 학원을 다니며 공부하였다.
결론적으로 나는 '영재'는 전혀 아니었다. 나는 그 학원을 열심히 다니는 게 내가 서울로 올라온 이유를 충족시키는 것이라 생각하며, 그리고 어린 마음에 '영재'고 준비반이라는 그 타이틀 안에 내가 들어있어서 느껴지는 조금의 우월감에
전혀 맞지도 , 따라가지도 못하는 수업을 어머니에게 말도 못 하고 일 년 반을 다녔다.
당연히 나는 영재고에 들어갈 실력도 적성도 맞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부모님과 나는 그 수업을 더 이상 듣지 않고 포기했다. 그리고 허겁지겁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따라잡느라고 다시 고생했다.
상당히 힘들었던 학원 과정이었음에도, 그리고 어머니가 처음에 나를 학원에 보낼 때는 이 길이 내길 인 것처럼 설명했기에
어느 날 돌연 이걸 포기시키려는 어머니와 많은 충돌이 있었다.( 물론 딱 사춘기가 시작할 때였다)
스스로 결정할 줄도 모르고 , 그게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였기에, 그리고 그럴 나이였기에 일 년 넘게 준비했던 과정을 포기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다.
살면서 그때 처음으로 부모님이 다 맞지 않다는 것 , 말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았던 것 같다.
지금 초등학교 의대반을 보면 흡사 내가 예전에 영재고 준비반을 다녔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초등학생이 도대체 어떻게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단 말인가)
그 학원에는 나뿐만 아니라 영재가 아니지만 뭔가 하고 있다는 의무감을 채우기에 부모님 손에 이끌려온 적당히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드글거렸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첫 수능 때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하고, 재수를 했고, 의대를 갔고 현재는 졸업하여 의사이다.
열심히 자기 아이를 미래가 창창하고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기만 하는 의대에 보내기 위한
'멋지고 깨어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일부 부모님들에게 정말 죄송하지만
그렇게 초등학교 때부터 의대준비반에 들어간다고 의대를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행동은 아이에게 물어보고 하는 것인가?
그리고 물어봤다 한들 아이가 정상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나도 학창 시절 학원과 함께 선행학습을 했지만 초등학교 때 고등학교 과정을 하진 않았다. 적당히 일 년에서 한 학기 정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결국 해당 교과과정은 그 학년을 보내면서 현재에 좀 더 집중해서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부모님은 언제나 자기 자식을 너무나 사랑한다.
그렇다 그게 문제다. 너무나 사랑하는 나머지, 너무나 감정적인 나머지
내가 지금 아이에게 하는 것이
아이를 위한 것인지, 주변의 광적인 유행에 휩쓸린 것인지, 나의 내면에서 피어나지만 나는 모를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것인지, 남들은 무언가 하고 있는데 나의 불안감을 지우기 위한 것인지,
눈이 멀어버린다.
한 개개인을 붙잡고 이런 교육을 시키는 이유를 묻는다면 누구나 그럴듯하게 설명할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답해 보자
초등학생이 고등학교 3학년 과정을 공부하는 게 맞나요?
그리고 그게 정말 아이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게 확실한가요?
어머니의 귀가 얼마나 얇은가, 내 귀가 얇지 않은지 고민하고 최소한의 주관은 가져야 한다.
다시 나의 어릴 적 경험으로 돌아가보자
나는 이유도 정확히 모른 채 영재고 준비를 하다가 허망하게 포기했을 때 어머니와 충돌도 있고 개인적으로도 여러 의문을 품었다.
만약 초등학교 의대반부터 그렇게 했다가 잘 안된다면?
내가 말하는 잘 안 된다는 매우 다양한 것이다.
단순히 의대에 못 가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의대에 가면 모든 게 잘 된다고 생각하는가?
부모님한테는 좋을지 모르겠다.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닐 수 있으니
당신 자식이 첫 해부학 실습 때 기절하는 20명 중 한 명이라면?
수술 실습을 보다가 졸도하는 한 명이라면?
방학도 거의 없는데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 의학강의를 하루 종일 듣고, 매주 피피티 천장 분량의 시험을 보고도 뒤에서 세 번째에 드는 등수를 받는다면 그 박탈감은 어찌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이 온전히 자기가 한 게 아니라면
그때 당신 자식의 마음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아이가 어려서 결정을 하기 힘들수록,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