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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아민 Jun 27. 2024

두 사람의 화장법

두 가지 의미



2013년 2월 14일

네가 내 얼굴에 화장을 해주었다. 내 앞머리를 걷어 올리고 눈썹을 정리해주며 말했다. 사람 인상은 여기서부터야. 나는 답했다. 일단 난 앞머리가 눈썹을 덮어, 그리고 먼저 보이는 건 눈 아니야? 너는 슬쩍 웃으며 다시 말했다. 그냥 앞머리 없는 얼굴이 한 번 보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고. 나는 거울을 보자마자 웃음이 터졌다. 자기가 해준 화장이 마음에 안드냐며 우는 소리를 했지만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있잖아, 나 개강해도 너랑 밥 먹고 싶어. 너 자퇴해도 너랑 있을래. 학교 안갈래. 내 말에 넌 얼굴이 살짝 굳어지고 은은한 미소만 남겼다. 알겠어. 당장 떠날 듯이 말했다. 지금 니 표정 진짜 싫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앉은 자리에서 뒤로 넘어졌다. 양반다리를 한 다리가 저렸다. 좁은 방 안에서 다리를 펴자니 그것은 그것대로 불편했다. 너는 다리를 펴고 내 옆에 그대로 누웠다. 밥 먹자. 내 손을 잡으며 니가 말했다.


2014년 2월 14일

내가 내 얼굴에 화장을 했다. 내 앞머리를 걷어 올리고 눈썹을 정리하며 말했다. 사람 인상은 여기서부터야. 나는 답했다. 일단 난 앞머리가 눈썹을 덮어, 그리고 먼저 보이는 건 눈 아니야? 나는 슬쩍 웃으며 다시 말했다. 그냥 앞머리 없는 얼굴이 한 번 보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고. 나는 거울을 보자마자 웃음이 터졌다. 우는 소리가 났지만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있잖아, 나 개강해도 너랑 밥 먹고 싶었어. 너랑 있을래. 학교 안갈래. 알겠다고 말해줘. 당장 떠날 듯이라도 말해줘. 지금 내 표정 진짜 싫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앉은 자리에서 뒤로 넘어졌다. 양반다리를 한 다리가 저렸다. 좁은 방 안에서 다리를 펴자니 그것은 그것대로 불편했다. 밥 먹어. 니 사진을 보며 말했다.


2013년 3월 1일

방학이 끝났다. 다행히 오늘은 1교시 수업이 없어서 10시에 일어날 수 있었다. 난 밥을 자주 거른다. 오늘 역시 아침을 거른다. 양치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치약을 칫솔에 짜고 입에 넣었다. 거울을 보며 양치를 했다. 앞머리가 눈을 가렸다. 아예 넘겨볼까.. 장발을 잠깐 고민했다. 음. 넘겨보자. 칫솔을 이로 물고 왼손으론 세면대를 짚었다.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오른손으로 연신 머리를 걷었다. 그 아이가 정리해준 눈썹이 보였다. 인상이 좀 나아보이려나. 다시 상체를 펴고 양손으로 뒷머리를 만져보았다. 장발을 하기엔 애매했다. 그냥 오대오로 까기만 해야지. 입에서 거품이 흐른다. 양치를 마저했다. 물로 입을 헹구고 수건으로 스윽 닦았다. 너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밥을 거른 것을 역시나 알고 있었다. 밥 좀 먹어. 니가 전화 너머로 소리쳤다.


2014년 3월 1일

방학이 끝났다. 다행히 오늘은 1교시 수업이 없어서 10시에 일어날 수 있었다. 난 밥을 자주 거른다. 오늘 역시 아침을 거른다. 양치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치약을 칫솔에 짜고 입에 넣었다. 거울을 보며 양치를 했다. 앞머리가 눈을 가렸다. 왼손으로 세면대를 짚었다.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오른손으로 연신 머리를 걷었다. 정리가 필요해 보이는 눈썹이 보였다. 자를까. 인상이 좀 나아보이려나. 다시 상체를 펴고 양손으로 뒷머리를 만져보았다. 기른 것이 아까워졌다. 많이 아까웠다. 그 1년 하고도 2주일이 너무 아까웠다. 입에서 거품이 흐른다. 양치를 마저했다. 물로 입을 헹구고 세수를 했다. 양손으로 세면대를 잡고 고개를 떨궜다. 물이 뚝뚝 떨어졌다. 너는.. 너는..


2013년 8월 24일

와- 이거 진짜 맛있어.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니가 건네는 오므라이스를 먹지 않았다. 입맛이 없다고 음을 붙여 말을 했다. 너도 말에 음을 붙여 답했다. 그러니 위장 장애가 생기지요. 오빠는 이런 오므라이스 나중에 먹고싶어도 못 먹지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2014년 8월 24일

와- 이거 진짜 맛없어. 나는 고개를 저으며 눈 앞의 오므라이스를 먹지 않았다. 입맛이 없오용. 돌아오는 음이 없다. 이러니 위장 장애가 생기지염. 오빠는 이딴 오므라이스 줘도 안 먹지염. 선웃음을 지었다.


2013년 9ㅇej/!,@3

니가 왜


2014년 9월 5일

니가 왜 그랬을까.


2013년 9월 6일

아직도 정신이 안차려진다. 매일 해주던 밥이 더는 없겠지. 아, 넌 나에게 매일 밥을 해줬는데 난 너에게 아무 것도 못 채워줬구나. 예쁜 것도 못 보여줬다. 좋은 것도 못 들려줬다. 맛있는 것도 못 먹여줬다. 오빠로써 아무것도 못 해주고 병원비, 상담비만 대주면 다라고 생각했다. 이제 나 어떡하지


2014년 9월 6일

배가 고프다.


2013년 9월 7일

화장을 했다. 내 앞머리를 걷어 올려준 너를 화장했다. 니가 해준 화장 맘에 안들어. 하나도 맘에 안들어. 세수하고 다시 올 테니까 다시 해줘


2014년 9월 7일

대청소를 했다.


2013년 9월 8일

니 방을 치워야 할까, 그냥 둬야 할까


2014년 9월 8일

00에게


안녕. 오빠야. 하하. 오빠라고 오빠. 니 오빠. 알아? 아냐고. 나 니 오빠야. 안다고? 아냐 넌 몰라. 넌 아무것도 몰라. 나 분명 @ 다 해주지 않았어? 너 원래 씩씩했는데, 왜 그랬어. 그래, 니가 날 못 알아 보진 않아. 근데 나는 널 몰라봤어. 그랬@나봐. 널 하나도 몰랐어. @

@. 말 좀 해주지. 지금이라도 말 해주라. 꿈에도 안나오고 씨 진짜. @@ 나 니가 너무 보고싶어. 오빠가 이렇게까지 널 기다린다. 소용없이. 기약없이. 그리움만 있어. 내 눈 좀 맞춰줘.







2015년 9월 8일


내새끼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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