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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샘 Aug 02. 2024

늘 궁금한 옆 반 이야기_1편

시리즈가 될 수도 있고, 못 될 수도 있는 정글숲 밖 이야기



요절복통 우당탕탕 초등학교 교실


    아마 교사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 내 반이 아닌 다른 모든 반은 미지의 영역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단순한 이유는 나의 수업 시간이 곧 옆반의 수업 시간이고 내가 쉬는 시간에 옆반도 쉬기 때문에 서로 들여다볼 '기회'가 없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동료들과 모이면 나누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또 '우리 반 이야기'이다. 그러니 다시 말하자면, 옆 반은 '늘 가깝고도 먼 미지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날 때가 많다. 내 의도대로 흘러가는 교실은 거의 없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랬다. 교실 속 대상이 '아이들'이기에 이미 성인이 되어버린 교사의 입장에서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웃음을 만나는 경우가 참 많은데, 그런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 까먹어 버린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하여 나는 앞으로 웃긴 일을 만나면 꼭 글로 남겨 둬야겠단 생각만 하던 중이었다. ('말의 힘'에 나온 민진이와의 이야기도 약간은 웃긴 일)


    그러다 어느 날 K 선배('친애하는 선배님들께'에 등장한 그 K 선배이다.)를 만나 즐겁게 맥주를 마시다가, 선배의 교실에서 있었던 어떤 이야기를 듣고는 배를 잡고 웃는 경험을 한다. 선배님이 '이 이야기도 글로 써 봐' 지나가듯 말씀은 하셨지만, 아직 공식적인 허락은 받지 못한 채 그 이야기를 글로 옮겨 본다. 여기서 잠깐, 약간의 주의 사항이 있다. 음주 중(!) 들었던 이야기라 의도치 않은 각색이 조금 들어갔을 수 있다는 점을 참고하시길. (선배님, 보고 계시다면 조만간 제가 맥주 한 잔 살게요♡)


몇십 년 경력에 이런 일은 또 처음일세


    K 선배가 근무하는 학교는 올해 문을 연 신설 학교이다. 아직 입주가 진행 중인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학교인데, K 선배의 반은 자고 일어나면 전입생이 들어오는 학급이라고 한다. 전국 각지에서 오는 아이들의 생활 지도가 어려운 것은 두 번째 문제. 선배가 맡은 학년은 2학년인데, 학교에 겨우 적응을 마쳤더니 또 전학을 하게 되어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 문제의 학년(?)인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 온 아이들의 '무탈한 적응'이 선배님의 학급에서는 아마 가장 큰 목표일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야기의 주인공이 전학을 왔다. 새로운 전학생의 이름은 '주헌이'. (K 선배로부터 들은 본명을 까먹어서 진정한 가명이다.) 주헌이는 어떤 아이일까, 겪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추측만 할 뿐이지만 K 선배의 말에 따르면 만만찮은 어린이임에는 틀림없다. 주헌이가 어떤 이유로 화가 났던 날, K 선배는 보았다. 양손으로 연필을 쥐어짜며 토막 내는 방식으로 화풀이하는 주헌이를! 고작 2학년 어린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과격한 행동에 선배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실제 몇십 년이 넘는 경력에 화가 난다고 연필을 부러뜨리는 아이는 선배도 처음 보았다고 한다.


    교사라면 거의 공감할 이야기. 교실 속 폭력적인 행동은 초장에(!) 제압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폭력적 성향을 보이는 아이가 힘의 논리를 따르리라는 것은 당연한 이치. 그렇기에 교실 안의 모든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곳에 나보다 강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적어도 이곳에선 폭력성을 보여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려줄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그 한끝이 다르기에 내가 존경하는 K 선배님은 교실의 다른 아이들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다.

  "얘들아, 선생님이 지금부터 조금 큰 소리를 낼 수도 있는데, 절대로 너희한테 화를 내는 게 아니야. 우리 교실에 아주 위험한 행동을 하는 친구가 있어서, 선생님이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 안 된다는 말을 큰 소리로 할 수도 있어. 놀라지 마세요."

    그에 선생님을 닮아 똘똘한 학생들이 '맞아요, 선생님. 우리 부모님도 제가 위험한 행동을 할 땐, 갑자기 크게 화를 내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기도 해요. 그런데 화가 난 건 아니고 놀라고 걱정이 돼서 그러는 거래요.'와 같은 반응을 보이며 선배의 의견에 하나, 둘 힘을 실어 주었다고 한다.


결전의 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주헌이는 다시 연필을 쥐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 순간을 기다려왔던 K 선배,

  "누가 지금 교실에서 자기도 다칠 수 있고, 친구들도 다치게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걸까? 화가 났다고 연필을 부러뜨리는 친구는 우리 교실에서 공부할 수 없는데? 주헌이 그 연필 어떻게 할 거예요?" 하고 주헌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순수한 영혼 주헌이,

  "화가 나는 데 어떻게 해요!!! 저는 화가 나면 원래 이렇게 해요!!!" 하며 연필을 부러뜨리고 이윽고는 크게 폭발했다고 한다. 심지어 주헌이는 책가방을 챙겨 교실을 박차고 나가려는 시늉을 하며 교실 앞 문에 서서 K 선배를 쳐다보았다고. 드디어 때가 왔다는 사실을 직감한 선배는 주헌이에게 말했다.

  "주헌이가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잘 모르는 게 있는 것 같아. 선생님이 화가 나면 생각보다 무서울 수 있다는 걸? 수업 중에 교실을 나가면 다시는 우리 반에 들어올 수가 없어. 대신 나가지 않고, 자리에 가서 앉으면 선생님은 주헌이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얘기를 들어줄 거야. 자, 지금부터 셋까지만 셀 거니까 그동안 잘 생각해 보세요. (단호하게) 하나. 둘. 셋!"


    주헌이는 어떻게 했을까? 아직은 한창 순수할 나이 아홉 살, 주헌이는 선배의 셋 세는 소리에 부들부들 떨면서도 다행히 교실 문을 나서진 못했다(!). (ㅋㅋ) 밀당의 달인 K 선배는 그 자리에서 바로 주헌이에게 칭찬 피드백을 제공했다.

  "주헌아, 화가 많이 났는데도 교실을 뛰쳐나가지 않고 참은 것. 칭찬해! 우리 주헌이가 뭐 때문에 그렇게까지 화가 났는지 선생님이 주헌이 얘기를 한 번 들어 볼까?"

    그러자 주헌이는 자기가 화가 난 이유를 선배에게 술술 말했다. 아이들 사이의 일은 대개 쌍방에 원인이 있는 경우가 많기에, 얘기를 들어보니 주헌이를 화나게 한 친구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주헌이의 잘못도 조금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주헌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면 쉽게 가라앉는 꽤나 단순한 성격의 어린이였다. (아마도 민진이 같은 장형 어린이?) K 선배, 주헌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한 후 상대 아이를 불러 아이의 어떤 행동이 친구(주헌)를 불편하게 했다고 알려주었다. 아이는 선배의 이야기를 듣자 바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미안해.' 하며 사과를 했다. 그 사과에 주헌이의 마음이 바로 풀어진 건 당연한 일이다.


    선배는 주헌이의 마음이 풀어진 틈을 타 한 발짝 더 나갔다.

  "주헌아, 그런데 선생님이 얘기를 들어보니까 친구도 주헌이 때문에 요만큼은 속상했을 것도 같은데?" 이에 주헌이, '나도 미안해.' 하며 쿨하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그리곤 아무리 화가 나도 연필을 부러뜨리는 행동과 교실을 함부로 나서는 행동은 다시는 하지 않기로 선배와 약속을 했다. 물론 선배도 주헌이가 화가 나면 언제든 얘기를 들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네가 막 전학을 와서 잘 모르나 본데,


    물론 어린이기에, 주헌이는 이후에도 종종 화를 참지 못했다. 가끔은 다시 연필을 들고 부들부들 떨기도 했지만, K 선배와 눈이 마주치면 슬그머니 연필을 내려놓고 선배에게 다가와 '선생님, 저 지금 이러이러해서 화가 났어요!' 하고 마음을 털어놓곤 했다고. (ㅋㅋㅋㅋ) 짧은 시간 동안 나름대로 발전한 주헌이 이야기를 들으니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주헌이가 그렇게 크기까지 선배의 쥐락펴락 권법(?)은 여러 번 빛을 발했으리라. 다행히 주헌이의 부모님도 아이의 그런 성향을 깊이 알고 선배에게 더 엄격한 지도를 부탁했다고 한다. 아이의 괄목할 성장에는 선생님의 노력뿐 아니라 가정에서의 협조도 늘 동반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체감한다.


    하지만 주헌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계속해서 전입생이 들어오는 K 선배의 학급에 하루는 꽤나 존재감이 큰 남학생이 전학을 왔다. K 선배가 행동이 크고 친구들과 마찰이 잦은 전입생을 지도할 기회를 열심히 엿보던 어느 날, 또다시 기회가 왔다. 이에 선배는 주헌이를 지도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작업을 시작했다.

  "누가 교실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걸까? 그렇게 행동하는 친구는 우리 교실에서 공부할 수 없는데? 자꾸 그런 식으로 하면 선생님이 어쩔 수 없이 화를 내야 할 건데. 선생님이 화가 나면 생각보다 무서울 수도 있어."


   이에 전입생, '에이, 별로 안 무서워 보이는데' 하며 입을 삐죽이는 기개를 펼친다. 이런 방법으론 안 되겠군, 판단을 내린 선배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던 순간!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주헌이가 입을 열었다.


  "누구야, 네가 막 전학을 와서 잘 모르나 본데 우리 선생님 화나면 진짜 무섭거든? 내가 많이 혼나 봐서 아는데, 우리 선생님 진짜 무서워. 그러니까 너 안 그러는 게 좋을 거야." (ㅋㅋㅋㅋㅋㅋㅋ)


    아, 정말이지 귀엽고 재미있는 어린이들의 세계. 전입생이 선배의 말보다 주헌이의 말을 더욱 귀담아들었을 것은 당연하다. 이야말로 교육학에서 이야기하는 진정한 '동료 교수(동료 학습자가 가르치는 자의 역할을 하는 교수 방법)'가 아닐까? 우리의 주헌이 덕분에 전입생은 비교적 평화롭게(?) 새 학교에 적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빛나는 연륜에 해학 한 스푼!


    아직 저학년(1, 2학년)을 번도 맡아보지 못한 내겐 작은 꿈이 하나 있다. 언젠가 저학년을 맡게 된다면, 아이들과의 일을 K 선배처럼 유쾌하고 즐겁게 풀어가고 싶다는 것. 어느 해엔 K 선배와 같은 학년을 가르치며 선배의 진짜 옆 교실을 썼던 적이 있는데, 선배의 반 아이들이 선배를 어찌나 좋아하고 잘 따랐는지 모른다.


    빛나는 연륜과 타고난 유머감각이 있는 K 선배를 만나 주헌이도, 전입생도 새 학교와 2학년에 모두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복 받은 어린이들. 그나저나 여기저기서 주워 들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는 참 많은데, 막상 웃고 넘기면 다 까먹어 버리는 현실을 어쩌지. 아이들의 순수함에서 비롯한 순도 100%의 즐거운 이야기를 또 만나게 되면 2편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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