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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샘 Aug 30. 2024

늘 궁금한 옆 반 이야기_3편

간만에 보니, 더 놀리고 싶은 이 마음을 어쩌지



    개학을 하고 이제 겨우 1주일 남짓 지났는데, 아이들과 겪은 웃긴 일화가 벌써 여러 개. 역시 아이들과 있어야 영감님도 오신다(!). 모으다 보니 왠지 내 이야기가 더 많은 것도 같지만, 그래도 써 본다.


#1. 훗, 그래도 아직은 날 못 이기겠지?


    개학식날부터 지금까지 우리 반의 공식(?) 귀염둥이 민진이(내가 쓴 글, '말의 힘'에 나오는 '그' 민진이가 맞다.)는 여러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민진이는 혼자 하루에 거의 두세 개 꼴로 에피소드를 생성한다. 이쯤 되면 현재까지 내 글에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인 민진이에게 고정 출연료라도 줘야 할 판이다. 각설하고 이야기를 풀어본다. 이 이야기는 그중 그래도 가장 간질간질한 편에 속하는 이야기이다.


    머리가 좋고 고집이 센 민진이는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는(!) 수업 활동에는 쉽사리 지루함을 느끼고, 잘 참여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민진이를 어느 정도 파악하여 평화롭게 다루는 법을 터득한 나는 민진이의 참여도가 떨어지는 활동은 꼭! 검사 도장을 찍겠단 핑계로 활동 결과를 확인하고, 때론 소소한 보상을 하거나 잘 한 어린이들의 활동 결과물을 공유하며 크게 칭찬하기도 한다.


    민진이는 내가 검사 도장을 찍겠다 하면 매 번 큰 소리로 '아... 아직 다 못 했는데, 선생님이 검사할 줄 알았으면 아까 할걸.' 한다. 그러면 나는 부러 놀란 척, '민진아, 분명 선생님이 활동하라고 시간 넉넉히 줬는데 안 하고 뭐 했을까? 이거 큰 일 났네?' 한다. 그러면 아직 순수한 민진이, '하기 싫은데.' 하며 꼭 도장은 받으려고 꾸역꾸역 어떻게든 하는데, 그게 또 웃긴다. 검사 도장이 뭐라고. (ㅋㅋ)


    그날 5교시에도 민진이는 해야 하는 활동을 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도장을 받아야만 집에 간단 말에는 의의를 제기하지 않는(?) 민진이는, 아이들이 모두 하교한 교실에서 혼자 남아 미뤄둔 활동을 다. 할 수 있으면서 안 하는 민진이가 아쉽기도 하고, 그래도 남아서 하고는 가니 무작정 혼내기도 그렇고 해서 나는 교실 바닥을 청소하며 일부러 민진이에게 장난스레 말을 시작했다.


글샘: (새침하게) 민진아, 선생님이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민진이가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 같아. (ㅋㅋ)

민진: (깜짝 놀라 큰 목소리) 예? 뭐라구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황당 그 자체)

글샘: 봐봐. 어제도 그러더니, 오늘도 민진이 혼자 남았잖아. 심지어 어려워서 못하는 것도 아니고, 다 할 수 있는 건데 안 하고 늦장 피워서 말이야. 그래서 선생님이 생각했는데, (심각한 표정) 아무래도 민진이가 선생님이 좋아서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단 느낌이 왔어.

민진: (못 들은 척)

글샘: (집요하게) 민진아, 선생님 말이 맞지? 민진이 솔~직히! 선생님이랑 둘이 남는 게 좋아서 일부러 할 수 있는 것도 안 하는 거지?


    나는 이미 민진이를 약 올리며, 민진이의 반응에 재미를 느끼던 중이었다. 이쯤이면 자기도 뭔가 깨닫는 게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어서 하고 도장 찍고 가자~' 했다. 그런데...!


민진: (잠자코 있다가) 선생님, 은! 반! 이 무슨 뜻인지 알아요?

글샘: 은반? 선생님이 아는 낱말이 있긴 한데, 민진이가 지금 갑자기 그 낱말을 쓸 것 같진 않고...? (설마 이 상황에 갑자기 분위기 은접시? 잠시 고민했다.)  

민진: (왠지 뿌듯해하며) 은! 반!이에요.

글샘: 은반이 뭐지, 민진아?

민진: 은근히! 반반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


    이 귀여운 어린이. 남는 게 싫지만은 않다는 마음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ㅋㅋㅋ) 이에 질 수 없지. 나는 바로 대꾸했다.


글샘: (시크하게) 민진아, 별다줄('별 걸 다 줄인다'의 준말)~~~

민진: (대충 이런 표정이었다 →) (ㅇ0ㅇ) !!!


     민진이는 내가 '별다줄'이란 말을 알고 있단 사실에 충격을 받고, 매우 즐거워하며 하교했다. (ㅋㅋ) 민진, 그래도 아직은 선생님이 한 수 위란다.


#2. 선생님, 머리가 왜 그렇게 됐어요?


    여름 방학 동안, 내겐 아주 큰 변화가 하나 있었다. 호기롭게 도전한 인생 첫 히피펌을 단단히 실패해 버린 것이다. 미용실에서 처음 나왔을 때 나는, 거짓말 안 하고 외국인들의 천연 곱슬머리와 같은 헤어스타일의 보유자가 되어 있었다! 속상하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여 코 위로 머리가 나오도록 셀카를 찍어 가족채팅방에 올렸다. 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동생에게 빛의 속도로 전화가 왔다. 미쳤냐고. 별생각 없이 메시지를 봤다가 내 사진을 보고 소리 내어 크게 웃어버렸다고 했다.


(좌) 내가 원했던 머리와, (우) 실제 내 머리 스타일과 거의 흡사한 이미지. 미친다 정말.


    속상했던 기분은 금세 사라지고, 별생각 없고 대책 없는 나는 저런 머리를 하고 신나게 낮맥을 즐기러 갔다. 출근을 해도 아이들이 없는 방학이기도 했고, 머리 감고 며칠 좀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내겐 여름 방학이면 락페스티벌에 가서 스트레스를 푸는 일종의 루틴이 있는데, 저 머리가 페스티벌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머리였기에 더 대책 없기도 했다. 심지어 락페스티벌에서는 내 머리가 왠지 멋지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개학식이 다가와도 내 머리는 도저히 괜찮아질 기미가 없었고, 나는 학교에 가기 싫은 마음을 꾹 누르고 저런 꼴(!)로 어쩔 수 없이 출근했다. 그리고 나를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이건 거의 미소 천사?) 가장 걱정했던 건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솔직하고 가감 없고, 때론 가차 없는 아이들이 대체 무슨 반응을 보일까 많이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교양 있는 우리 반 어린이들. 나를 보고 동공지진을 일으킬지언정 내 머리에 대해 대놓고 묻거나, 솔직한 감상평을 보이진 않았다. 그에 나는 살짝 감동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으니. 사건은 점심시간에 일어났다. 아이들을 줄 세워 점심 배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옆 반 선생님이 내게 왔다.

  "저, 부장님... 저희 반 우연이(가명)가 부장님께 질문이 있대요."

  우연이는 옆 반의 에이스 학생으로 나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어린이였다. 옆 반 선생님의 웃는 듯 애매한 표정을 보니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느낌이 딱 왔다. 우리 반 어린이들도 암 말 안 했는데, 뭐 어쩔 거야. 나는 아예 뻔뻔하게 나가기로 마음을 먹고 우연이에게 다가갔다.


글샘: (능청스럽게) 우연아, 선생님한테 궁금한 게 있다고 들었어. 왜 선생님한테 직접 물어보지 못하고 담임 선생님께 말을 했을까?

우연: (동공지진) 아... 그게... (애매하게 웃으며 내 눈을 피한다.)

글샘: 괜찮아. 대답해 줄게, 말해 봐. (여유만만)

우연: (뜸 들이다가 결단을 내리며) 음... 선생님, 그런데 머리가 왜 그렇게 됐어요? (ㅋㅋㅋ)

글샘: !!!!!


    머리가 왜 '그렇게'라니.... (ㅋㅋㅋㅋㅋ 휴...) 분명 예상했던 질문이건만, 아이의 입을 통해 실제로 들으니 꽤 타격감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글샘: 선생님이 이건 우리 반 친구들한테도 말한 적 없는데, 우연이한테만 특별히 말해줘야겠다. 우연아 이리 와 봐. (우연이 귀에 속삭이며) 우연이 너만 알고 있어. 사실... 선생님이 방학 때 공원에서 놀다가 그만, 번개에 맞았지 뭐야? (ㅋㅋㅋㅋㅋ)

우연: (동공지진) 예...???!!! 에이... 거짓말...!

글샘: (심각하게) 진짜야. 번개 맞았더니 머리가 이렇게 변해버렸어.

우연: (웃으며) 아니에요, 번개 맞으면 사람은 죽어요.

글샘: (더 심각하게) 아니야. 꼭 그렇지는 않아. 가끔 운 좋게 살 수도 있는데, 대신 머리가 선생님처럼 될 수 있어!

우연: (이미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 진짠지 아닌지 헷갈리는 표정) (ㅇ0ㅇ) !!! (ㅋㅋㅋㅋㅋㅋ)


    우연이가 내 말을 믿었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ㅋㅋㅋ) 다행히 내가 번개에 맞았단 소문은 나지 않았다. 더 다행인 점도 있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열심히 빗질을 하며 정성을 들였더니, 이젠 좀 자연스러워졌다. 히피펌 신고식 한 번 크게 한 이야기이다.


#3. 너한텐 별로 관심 없고, 내 얘기나 들어봐


    우리 학교 2학년엔 내가 짝사랑하는 남학생이 한 명 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바름이!(가명이다.) 바름이가 내 마음을 강타했던 사건이 있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서술하기로 하고 최근 이야기를 써 본다. 바름이는 얼마나 시크한지, 내가 아무리 질척거려도 눈하나 꿈쩍하는 법이 없다. 주변에 관심이 없고 본인의 일에만 관심이 많은 성격이랄까. (쓰고 보니 나쁜 남자?) 생각해 보면 내가 저를 좋아한단 사실을 알아 내게 시크하게 구는 것도 같다.


    머리를 제대로 망치고, 위에 서술한 우연이와의 일이 있었던 즈음이다.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바름이가 내게 다가왔다! 이게 얼마나 놀랄 일이냐 하면, 바름이는 자기가 할 일이 있거나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는 내 인사를 건성으로 받는 날도 있기에 내겐 거의 천지개벽할 일이었다. 바름이의 아이컨택에 기쁜 마음은 잠시, 갑자기 내 머리꼴(?)이 생각났다. 안 그래도 직설적이고 냉정한 바름이가 내 머리를 보고, 머리가 왜 그러냐고 물으러 왔구나. 시크한 바름이는 또 얼마나 신랄할까, 생각하니 왠지 슬퍼졌다. 하지만 슬픈 기색을 쉽게 들킬 순 없지.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바름이를 봤다.


바름: 선생님, 안녕하세요?

글샘: (표정 관리 실패, 광대 승천) 이게 누구야~~~ 바름이, 오랜만이다! 반가워~

바름: (내 반응에 별 신경 안 씀) 네, 선생님. 그런데요.

글샘: (다소 긴장) 그런데...?

바름: (우렁차게) 김ㅇㅇ 물통 깨졌어요!!! (시크하게 자기 말만 하고 자리로 돌아간다.)


    바름이는 역시 다른 어린이였다. 내게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김ㅇㅇ이란 같은 친구의 물통이 깨진 것이 흥미로워 여기저기 소문을 내고 싶었던 것이다. (ㅋㅋㅋㅜㅜ) 심지어 물통이 깨져버린 김ㅇㅇ 어린이와 나는 별 접점도 없다. 바름이가 머리를 신경 쓸 거라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지. 바름이의 마음에 좀 더 깊은 인상을 남길 방법은 없을까, 궁리를 해 본다.



    지나갈 듯 말 듯 더위가 계속되는 나날이다. 이 더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에너지가 넘쳐서 좋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러다가도 생각을 해 보면 그게 원래 아이들이지, 싶다.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이 또 어떤 새로움과 즐거움을 가져다줄지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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