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도 힘이 있다고 믿는다. 특히 어떤 말들은 굉장히 힘이 세서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누구나 '말'로 인해 울고 웃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평생을 돌아보아도 잊을 수 없는 누군가의 한 마디가 있을 것이다.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교직에 나와 만나게 된 많은 선배님들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교사는 공부만 열심히 한 사람보단 '경험'이 많은 사람이 하는 게 좋겠다는 말. 그저 주어진 공부와 할 일만 열심히 하던 모범생보단, 이런저런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아이를 이해하는 폭이 넓을 거란 뜻이다. 결국 교사가 되려 그랬는지 다행히도(?) 나 역시 '모범생'은 아니었다. 모든 교실에 하나쯤 있을 법한, 조용하고 얌전하지만 자기만의 세계가 있어 늘 머리 위에 생각 구름이 떠 있는 것 같은 학생이었다. 특히 초등학생 때의 나는, 책 읽기를 즐기고 피아노 치기와 그림 그리기, 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을 좋아하지만 속도가 느리고 왠지 모르게 주의가 산만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믿고 싶지 않지만 나의 기억과 엄마의 증언을 종합한 내용이다.)
나름의 변명을 하자면 어릴 적 내겐 학교라는 공간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것 같다. 학교가 배우는 곳이란 사실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고,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내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지 못했다. 누군가 나를 앉혀두고 학교가 어떤 곳이며 학교에서는 어떻게 생활을 해야 하는지 알려줬다면 무언가 좀 달랐을까?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매 년 우리 반 아이들에게 '학교'란 어떤 공간이어야 하며, 학교에서 어떻게 배워야 하는 지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어릴 적의 학교는 요즘의 학교와는 또 다른 공간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감사한 일 하나, 내 기억 속 '따뜻한 말'들은 대부분 학교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다.
우선 떠오르는 기억 몇 가지. 내 이름이 본인의 아들 이름과 같다고 늘 내게 따뜻하셨던 초등학교 3학년 때 사회 선생님.'글샘(필명으로 대신한다.)'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모두 똑똑하고 훌륭하게 자란다던 선생님의 말은, 아직 순수했던 내 영혼에 깃들어 오래간 나를 지탱했다. 미술, 만들기 대회 등에서 받은 여러 상장들과 함께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우리 엄마에게 '글샘이 잘 키우세요. 훌륭한 사람이 될 겁니다.' 하셨던 이름도 가물가물한 교장 선생님의 말은 또 어떤가. 심지어 우리 엄마마저도 그저 지나가는 립서비스겠거니 여겼겠지만, 그 말은 내게로 고스란히 흘러들어와 한창 성적이 바닥을 찍던 중학생 때에도 '근자감'을 잃지 않도록 해 주는 근간이 됐다.
교사: 말 많이 해야 하는 사람!
교사가 되어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끊임없이 말을 해야 한단 점이었다. 원래도 말하기를 썩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교사가 되며 내겐 휴일엔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하고 말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직업병'이 생겼다. "수학책 0쪽 펴세요." 하면 바로 "몇 쪽이에요?" 묻는 아이들 덕분에 내가 해야 하는 말의 대부분은 '했던 말 또 하기'일 때가 많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목이 아픈 건 둘째 치고, 사람이기에 가끔은 짜증도 나는 일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영혼을 반쯤 내보내고 앵무새에 빙의하는 고급 기술을 체득했다. (레벨업!) "수학책 0쪽 펴세요~(느리게) 0! 쪽!(강조)이에요. 익힘책 말고, 수. 학. 책. 0. 쪽!~~~(말 끝을 꼭 늘여야 한다.) 자, 수학책 0쪽! 다 폈나요?" 하면 거의 모든 아이들이 책을 펴게 된다.
내가 찾은 재미있는 사실 하나. 학년을 막론하고 매 년 새롭게 구성되는 교실에는 놀랍게도 매 년 변하지 않는 점이 있다. '모든 교실엔 방금 설명한 내용을 바로 되묻는 아이가 분명 있다.'는 것! (참 신기한 교실 생태계)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교사에게도 힘든 일이지만, 같은 말을 여러 번 듣는 아이들에게도 힘든 일인 모양이다. 그래서 나의 안내나 지시가 끝나자마자 "수학책 몇 쪽이요?" 내지는 "뭐라구요, 선생님?" 하는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에게 야유와 비난의 표적이 되곤 한다. 당연히 우리 반에도 그런 친구가 한 명 있다.
갑자기 분위기 코미디
민진이(가명이다.)는 어딜 가나 눈에 띄는 학생이다. 민진이가 열 살 인생을 사는 동안 가장 많이 한 말은 아마도 '왜요?'가 아닐까 추측한다. 넘치는 호기심과 에너지, 뛰어난 언변과 이해력에 탐구력까지. 거의 모든 것을 갖춘 민진이에게 부족한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인내심'이다. '애니어그램'의 중심 에너지 이론에 따르면 민진이는 완벽한 '장 중심형' 인간일 것이다. '장형' 인간은 본능에 의해 움직이고 생각하며, 본인이 흥미를 둔 분야에는 넘치는 열정을 보인다고 한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살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정말 그렇다. 궁금한 게 생기면(그게 아무리 수업 중일지라도) 우리의 민진이는 참는 법이 없다.
민진이의 행동이 주변 친구들을 불편하게 하는 건 당연하다. 따라서 민진이 주변은 늘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민진이는 심지어 내게도 억지를 부릴 때가 있다. 그 고집이 어찌나 센지, 언젠가는 거의 한 시간 동안 자신의 주장(이라 쓰고 고집이라 읽는다.)을 굽히지 않는 민진이 때문에애를 먹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민진이의 부모님께서도 아이의 그러한 특성을 알고, 지도하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그날도 민진이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특히 민진이 같은 아이들은 자신의 뜻을 굽힐 필요도 있단 사실을 깊이 깨달을 필요가 있기에, 나는 애써 엄한 얼굴과 목소리를 꾸며 민진이를 잠시 남도록 지도했다. 마음이 여려 조그만 훈계에도 눈물을 글썽거리면서도, 민진이는 정말로 단호했다. 학교가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라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불편을 끼친 친구에게 절대로! 미안하지는 않다고 우겼다. 머리론 알지만 마음으론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까, 고민이 깊어가던 중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뿌웅-!"
민진이가 방귀를 뀌었다. 참으려다 샌 것이 아니고, 되려 아랫배에 힘을 줘서 시원하게 배출한 방귀였다. 세상 울상을 하곤 배에 힘을 줘 방귀를 뀌는 민진이라니. 심지어 저 개운하다는 표정까지. 과연 '장 중심형 인간'다운 행동이다. 그 뻔뻔함과 천진함, 그리고 어이없음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그러자 민진이도 나를 보며 헤벌쭉. "한민진! 지금 뭐가 좋다고 웃어? 선생님은 지금 너무 심각한데, 선생님한테 방귀를 멕여?" 하며 화난 척 연기를 하니 민진이는 더 좋다고 큭큭 웃었다. 민진이의 웃는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하여 엄포를 놓았다. "민진이, 안 되겠다. 잘못한 점이 무엇인지 다 알면서 계속 우기고. 심지어 선생님 앞에서 방귀까지 뀌다니. 내일 친구들 오면 민진이 방귀쟁이라고 소문내야겠어!" 그러자 민진이, '아, 선생님! 그건 절대로 안 돼요!' 하며 난리가 난다.
심각했던 분위기는 온 데 간데없고, 민진이는 방귀쟁이가 되기 싫어자신이 잘못한 점을 인정하며 바로 고집을 꺾었다. 심지어 내일 친구들이 오면 자기가 먼저 사과를 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나도 그런 민진이를 칭찬하며, 친구들에게 민진이가 방귀 뀐 것을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해 주겠다고 손가락 걸고 약속을 했다. (그래놓고 브런치에 글을 쓴다. 민진아, 미안해.) 민진이는 흡사잘 부탁한단 표정(?)을 짓곤 세상 공손하게 인사하고 집에 갔다. 이렇게 쉬운 일이었다니!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내가 먼저 방귀 비슷한 소리라도 낼 걸 그랬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잠시. 작은 깨달음이 나를 스쳤다. 민진이를 다루는 방법이 어쩌면 내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다.
방귀 소동에 이은 귀여움 소동
방귀 소동 이후, 민진이와 나의 거리가 조금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 고집은 여전했지만, 민진이는 우기기를 시작하려다가도 내 눈치를 살피며 멈추는 모습을 보였다. 민진이는 내가 약속을 어길까 걱정이 됐던 걸까? 만일 그렇다면 민진이에게 아직 그런 순수함이 남아 있다는 건 참 잘 된 일이다. 하지만 나의 장난 섞인 말 때문에 혹여라도 민진이가 내게 약점을 잡힌 것처럼 느끼거나, 괴로우면 안 된다. 그런 이유로 민진이를 유심히 관찰하다가,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민진이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매 년 이리도 쉽게 여기저기 마음을 뺏기는 쉬운 교사다.) 수업 중 아는 내용이 나오면 벌게진 얼굴로 나의 설명을 거들고, 칭찬을 하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민진이. 머리가 좋아 이해가 빠르고, 주변 친구들이 수학 문제를 못 풀고 있으면 곧잘 알려주는 민진이. 그런 후 생색도 내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꺼내 읽으며 나의 문제 풀이를 기다리는 민진이가 기특했다.
그러던 어느 수업 중. 문제 풀이에 열중한 민진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웃다가 민진이에게 딱 들켜버렸다. 참지 않는 민진이, "선생님, 뭐 때문에 혼자 웃고 계세요?" 하고 묻는다. 나는 "그러게. 민진이가 너무 귀여워서 선생님도 모르게 웃었지 뭐야."라고 답했다. 그러자 쏟아지는 야유로 조용했던 교실이 한순간에 난리가 났다. '한민진이 뭐가 귀여워요!', '우웩~~', '아, 선생님 거짓말하지 마세요!' 하는 아이들과 심지어 "아, 음... 선생님... 그건 제가 생각해도 좀... 아닌 것 같은데요." 하며 머쓱해하는 민진이. 하지만 나는 봤다. 민진이의 입가에 슬며시 피어오르는 미소를!아이들과 민진이의 반응이 웃겨서 "왜, 민진이가 얼마나 귀여운데! 선생님은민진이가 너무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겠는데? 집에 가서도 보고 싶은데? 민진이를 그냥 선생님 집으로 데려갈까?" 한 술 더 뜨니 교실은 더 난리통이 되었다.
희한하게도 그날 이후 민진이는 점점 더 귀여워졌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 이런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킬 줄이야. 민진이는 정말 점차 차분하고 정돈된 모습을 보이며 의젓해졌다. 이윽고 나는 민진이를 지도하는 데에는 '귀여움 예찬 요법'이 딱 맞는 방법이란 결론을 내렸다. 성격 급한 민진이가 머리끝까지 빨개지며 흥분할 때면 나는 민진이를 지긋이 바라보며 "에구, 우리 귀여운 민진이! 뭐가 그렇게 급할까? 뭐 땜에 화가 났나?" 하고 말한다. 그러면 민진이는 "아이, 그건 아닌데..." 하며 차분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수업이 시작한 줄도 모르고 본인이 읽던 책에 매진해 있는 민진이를 볼 때면 "우리 민진이는 귀여운 것으로도 모자라서 집중력까지 좋네." 하고 칭찬한다. 그러면 민진이는 머쓱한 얼굴로 "아니에요! 이제 수학책 펴야 해요!" 하며 후다닥 교과서를 펼친다.
어떤 말로 기억되고 싶은지
한 학기가 끝나가는 지금, 이제는 아이들도 안다. 내가 민진이를 편애해서 그런 게 아니란 사실을. 민진이를 못 견뎌하던 아이들이 민진이의 행동에 무뎌진 것도 뜻밖의 수확이다. 오히려 아이들은 내가 민진이를 귀여워하는 상황을 즐기는 것도 같다. 나도 나름대로 자제하려 노력은 하지만때론순수하고, 때론 천진한 민진이를 볼 때면 여러 이유로 웃음이 절로 나오는 걸 어쩌나. 민진이는 이제 내가 저를 보고 귀여워 죽겠단 표정을 지어도 암시롱 않는다. 물론 어린이기에 요즘도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흥분하고 우기는 모습을 보일 때도 가끔 있지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 그러니 아직까지는 내가 찾은 방법이 잘 통하는 것 같다.
요즘 우리 반에서 최고로 유행하는 시리즈,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푹 빠진 민진이는 오늘도 독서 삼매경이다. 책에 빨려 들어갈 듯 집중하는 민진이를 보다가 문득 드는 생각 하나. 나는 훗날 민진이의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어떤 말로 기억될까?나의 교실, 정글 숲을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어떤 말로 깃들게 될까?
나의 고객이(?) 순수함을 잃지 않은 아이들이기에 아무리 짜증이 솟구쳐도 쉽게 화를 내서는 안 될 이유가, 차라리 반어법을 사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아는가? 운 좋게 제2의 민진이를 만날지. 우리 학교는 오늘 여름 방학식을 했다. 당분간 귀여운 민진이를 못 보는건 아쉽지만, 2학기가 있으니 괜찮다. 민진이가 방학 동안 더 귀여워져 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