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모양처의 의미
국민학교 시절, 새 학기가 되면 어김없이 하는 일이 있었다.
집안의 살림 도구와 재산을 적는 가정조사와, 개인의 신상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모든 학생에게 집에서 키우는 소, 돼지, 닭 같은 가축의 수와 살림 도구를 기록하게 했다. 대부분의 집이 옹색하기 짝이 없는 비슷한 형편이어서 특별히 자랑할 만한 것도 없었다. 밥을 할 때 필요한 솥이나 냄비가 전부였고, 집안 재산이라고 해봐야 겨우 몇 개의 살림살이가 전부였다. 라디오도 없는 집이 태반이었기에 나는 우리 집에 라디오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깨 뽕이 올라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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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4학년 때 전기가 들어왔다. 그렇기에 다른 가전제품이 있을 리 만무했고 가축을 키우지 않는 우리 집은 가축 수를 적는 곳도 늘 빈칸으로 남겨두어야 했다. 하지만 재산목록 외에도 적어야 할 항목, 바로 취미와 특기였다. 일 년에 책을 몇 권 읽지도 않았지만, 왠지 고상해 보이는 것 같아 취미는 ‘독서’라고 적었다. 하지만 특기가 늘 문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들보다 뛰어난 나만의 특별한 능력이 없었다. 한 학년에 두 개 반밖에 없는 작은 시골 학교에서는 특별한 재능을 키울 기회가 거의 없었다. 방과 후에는 캄캄하게 땅거미가 지는 줄도 모르고 뛰어노는 것이 전부였고, 그 와중에 숙제해가는 것만도 다행스러울 정도였다. 그 시절엔 자식 공부보다는 먹고 사는 게 더 중요하던 때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특기란을 채우지 못하고 빈칸으로 제출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친구가 자신의 특기를 ‘현모양처’라고 적었다고 했다.
“뭐? 현모양처? 현모양처가 어떻게 특기야?”
“쓸 게 없어 그렇게 썼는데 혹시 알아? 나중에 그렇게 될지.”
그 말을 듣고 우리는 모두 바람 빠진 풍선마냥 실실대며 웃었다. 그 당시에는 ‘현모양처’라는 단어의 깊은 의미를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농담으로 웃어넘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현모양처’라는 표현이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인생의 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단어임을 깨닫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저 웃고 넘겼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친구의 말 속에는 큰 통찰이 담겨 있었다. 세상이 변하고 가치관이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현모양처’는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지곤 한다. 물론 오늘날의 사회에서 ‘현모양처’의 의미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단순히 가정에서 헌신하는 역할을 넘어서, 여성의 다양한 선택과 가능성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때 그 친구의 유머 섞인 답변은 사실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그 특기의 의미가 흐릿했지만, 이제는 조금 더 명확해진 듯하다. ‘현모양처’라는 단어가 가진 깊은 의미와 그것이 내포한 삶의 방향성을 이해하게 된 지금, 그 친구의 말이 단순한 장난으로만 여길 수 없는 깊이를 지니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린 시절의 그 교실에서 나눈 웃음이, 이제는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열어준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