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공부방을 오픈할 무렵 쓰던 5년 사용한 무선 청소기가 수명을 다했다.
하나 장만해야 하는데 하던 차에,
공부방 오픈하는데 동생이 필요한 게 없냐고 해서 청소기가 필요하긴 한데…. 라며 중저가의 브랜드를 선물 받았다.
대기업 브랜드를 받기에는 내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극구 괜찮다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해서 받은 청소기였다.
그리고 올해 초 배터리가 충전되지 않아 AS를 받으려고 하니 배보다 배꼽이 큰 격이었다.
그렇게 그 청소기를 보내고 청소기 없이 몇 개월을 버텼다.
천으로 된 밀대로 밀고, 패드 빨고, 구석은 핸드청소기로 했다.
청소기 검색을 했지만, 맘에 드는 건 너무 고가이고, 중저가는 이미 두어 번 사용해 봤기에 사고 싶지 않았다.
순간의 불편함을 모면하기 위한 어중간한 물품을 구매하는 건 하지 않기로 나와 약속했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그런 애매모호함에 나를 두지 않겠다 결심했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원하는 바로 그것을 취하기로 스스로와 약속했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불편하게 지낼 순 없었다.
그렇다고 전과 비슷한 청소기를 구입하고 싶지 않았다.
그 책임으로 불편함을 겪어야 하는 거면 마땅히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어찌어찌 지냈다.
그렇게 몇 개월 불편하게 살며 생각날 때마다 검색하곤 했다.
그러다 지난달 정말 이젠 사야 하나 싶어 청소기를 검색하다 문득, '유선 청소기가 있지?'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나갔다.
이 세상엔 무선 청소기가 존재한다고 믿었던 사람처럼 말이다.
물론 모델이 많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무선 청소기의 시대에 도래했고, 나도 그 반열에 들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너무나 딱 맞는 제품이었다. 가격도!! 성능도!!
‘무선이어야만 해’라는 그 생각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아니 무선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아들이 군에 입대하고 훈련소에서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해서 가지고 가지 않았다.
훈련소에 보내야 할 물건이 있어서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유선 이어폰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선 이어폰 괜찮아?
-구리지만 좋아요!
아마도 이 일이 내 뇌를 깨운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유선의 불편함보다는 오랜만에 느끼는 강력한 흡입력이 너무 좋다.
배터리 충전 신경 쓰지 않아서 좋다.
어쩌면 청소기가 없는 동안의 결핍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인지도 모른다.
내 생각의 경계를 알고 부수면, 좀 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또 그렇게 내 세상을 조금 넓힌 기분이다.
ps. 이방 저방 코드를 뽑았다가 꽂았다가 하다가 1구 3m 리드선을 구입하고 삶의 질이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