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가 차려주는 삼시 세끼와 간식 세끼로 연명하는 우리 가족. 마라톤을 취미로 하는 시아버지는 때때로 러닝 동호회 활동으로 집을 비웁니다. 그럴 때는 보통 미리 남은 가족이 먹을 음식을 준비해 두십니다. 그런데 아주 가끔, 마치 일탈이라도 하듯이 그냥 나가실 때가 있습니다. 저는 이날을 정말 좋아합니다. 어떤 스포츠나 드라마도 이 정도로 흥미진진할 수는 없습니다.
시어머니, 저는 3시부터 행복해요
시아버지가 음식을 준비해 두지 않고 집을 비우면 8할은 배달음식입니다. 가족회의를 통해 정한 적당한 음식을 주문해 먹는, 아주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경험상 가장 무난한, 현실적인 해결책이지요. 그런데 'Father's Day'나 시아버지 생일 같은 '날'이 되면, 때때로 시어머니가 요리를 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입니다. '어린왕자'에서 여우의 명언, "네가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할 거야."라는 말이 아주 이해가 갑니다. 저는 시어머니가 요리할 것 같다고 생각한 그 순간부터 크크크 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시어머니는 혼자서는 포크도 접시도 찾지 못합니다. 오븐은 어떻게 켜는지, 환풍기는, 조명은 어떻게 켜는지도 도통 모릅니다. 다른 가족이라고 형편이 나은 것은 아니어서, 시어머니가 요리를 하면 온 가족이 거들며 이것저것을 찾아 헤매는 것입니다. 무슨 버튼, 가스 밸브, 칼, 포크, 접시. 그런 것들을 찾다 보면 서로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아무도 모르나, 어이가 없어서 웃깁니다. 무슨 90년대 시트콤 속에 들어온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음식을 하다 보면 딱히 별맛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아, 시켜 먹을걸.'하는 말로 상황은 끝나곤 합니다.
크리스마스, 핼러윈, 시어머니가 밥상 차리는 날
오늘은 시아버지가 마라톤 모임엘 갔습니다. 그리고 낯설고 이상하게도 시어머니가 또 점심때부터 "저녁을 어쩌지?" 하십니다. 아! 오늘 저녁은 시어머니구나! 종일 기대가 됐습니다. 캐나다 시댁에서 생활하면서 드물게 명절 기분이 나는 날은 '핼러윈', '크리스마스'지만, 시어머니가 밥상 차리는 날도 못지않습니다. 저녁 시간쯤 되어 아이 저녁을 챙겨 먹이고 있는데, 시어머니와 시동생이 와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집에 돌아왔습니다. "저녁 식사 왔습니다!" 하면서 양손에 든 것은 햄버거와 아이스크림이었습니다.
"우리 둘이 가서, '주니어베이컨치즈버거 7개, 초콜릿아이스크림 5개 주세요.'하는데 너무 웃긴 거 있지!"하며 주섬주섬 밥상을 차리는 시어머니 모습이 얼마나 천진하고 귀여워 보이는지. 함께 와하하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그 모습을 자꾸 눈에 담게 됩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있는 걸까요. 시어머니와 시동생, 남편과 저, 넷이 햄버거 7개를 나눠 먹으면서 행복해하는 것이 어린이날이 따로 없습니다. 시아버지에게는 미안하지만 차고 넘치도록 행복한 저녁 식사였습니다.
캥거루족? 캥거루 가족!
저는 때로는 문득 불안해져 남편에게 묻습니다. 시부모님이 언제까지 우리랑 같이 살아주실까? 저의 친정 아빠 말을 빌리자면 '캥거루 가족'이 되어 신세를 지고 있는 셈인데, 저는 이것이 참 만족스럽습니다. 내 남편을 사랑으로 키워주신 좋은 분들에게 '엄마, 아빠'라 부를 수 있는 것. 우리 아이를 보여드리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함께할 수 있는 것. 우리 아이가 사랑만 퍼부어주는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크고 있는 것. 이유를 꼽자면 끝도 없습니다.
시부모님은 아마도 때로 성가시고, 도대체 쟤들이 언제 나가나 싶을 때도 있으시겠지요. 그게 가끔은 죄송스럽지만, 매일 사랑으로 밥상을 차려주시는 시아버지와, 가끔 특식을 제공해 웃음을 주시는 시어머니. 저희를 가능하면 아주 오래 주머니 속에 품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What's New Today?
아이가 오늘 처음 한 말 : dirty, clean, puddle(물웅덩이), セイウチ(바다코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