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침은 팬케이크야!" 하며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시아버지. '어라?'하며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팬케이크는 토요일 아침에만 나오는 특식이니까요. 하지만 무슨 일인지 다시 묻지는 않았습니다. 캐나다까지 와 시집살이를 하면서, 시아버지가 차려주는 '급식'을 얻어먹고 사는 팔자를 유지하는 비결은 '주는 대로 먹는' 미덕에 있습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자고 일어나자 아침 급식이 없습니다.
캘거리 스탬피드의 꽃, 무료 팬케이크 아침 식사
당황하고 있던 차에 시어머니가 "이미 가서 줄 서 있대! 슬슬 준비해서 가보자." 합니다. 아이 키우느라 날짜도 계절도 모르고 살았는데, 벌써 7월인가 봅니다. 매년 7월, 여기 캐나다 캘거리에는 '스탬피드(Stampede)'라는 이름의 축제가 열립니다. 로데오, 길거리 퍼레이드,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고 누구나 카이보이 복장을 하고 집 밖을 나서지요.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이벤트는 단연 캘거리 곳곳에서 제공되는 팬케이크 아침 식사입니다. 문제는, 너무나 붐빈다는 것이지요.
스탬피드(Stampede)는 '우르르 몰린다'는 뜻인데, 100년 전 처음 이 축제를 연 사람의 작명 센스가 어마어마했던 모양입니다. 이름 자체에서 세계 최대 야외 '로데오'를 연상할 수 있는 한편,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리는 것을 동시에 떠올릴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야말로 이름값을 하는 축제가 아닐 수 없는데, 덕분에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을 지레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발 빠른 우리 시아버지. 아침 급식을 스탬피드에서 준비해 주실 모양입니다.
선물 같은 아침, 시아버지를 따라서
행사장에 도착하자 캘거리에서는 드물게 더운 날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우리 시아버지도 그 줄에 서서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습니다. 덕분에 금세 팬케익을 받아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앉을 수 있었지요. 컨트리 음악에 맞춰 사람들은 흥겹게 라인댄스를 추고, 기분 좋은 아침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까지 축제 분위기를 끌어올립니다. 시아버지는 연신 더 필요한 게 없냐 살피더니 본인 몫을 서둘러 먹고 다시 일어났습니다. "작은 동물원에서 기다릴 테니 다 먹고 천천히 와!"라면서요.
아이들이 동물을 만져볼 수 있는 작은 동물원에도 줄이 꽤 길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시아버지 덕에 금방 동물들에게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시아버지는 연신 '우와! 우와!' 신이 난 아이를 한참 보다가 "말 타는 곳에서 기다릴 테니 천천히 와!"하고 어디론가 가셨습니다. 아이는 시아버지를 따라 말을 타고, 작은 화분에 씨앗을 심고, 풍선을 받고 했지요. 우와 우와 소리는 끊일 줄 모르고 아이의 16개월 평생, 이렇게 신난 모습은 처음 본 것 같았습니다.
아가야, 네가 참 부럽다
시아버지가 시어머니 손을 잡고 나섰습니다. 둘의 커플 댄스에 제 딸아이도 껴서 풍선을 흔들며 기뻐합니다. 세 사람의 춤과 환한 웃음을 보고 있으려니 행복이 밀려와 마음이 뭉클합니다. 지난 시간 중 하루를 끝없이 반복해 살아야 한다면 저는 주저 없이 오늘을 고를 것입니다. 아이가 살면서 때로 외로울 때, 혼자서는 견디기 힘든 일이 있을 때, 이 순간을 기억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기억'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큰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이 아이의 깊은 곳 어디에 살아있다가, '버틸 힘'이 필요할 때 아이를 지탱해 줄 것입니다.
스탬피드 축제의 아침을 즐긴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집에 돌아왔습니다. "나는 핑크가 잘 어울리더라고!" 하며 시아버지가 기저귀 가방을 메고 앞서 걸었습니다. 그 뒤를 따라 걷는 길이 아름다워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오늘도 참,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