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끌림 30화

유정 이야기-10

결국.

by 겨리

재훈의 여자문제로 헤어졌던 둘 사이.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서로를 잊지 못한 채,

다시 만났을 때는 추억으로만 남아있을 뻔했던 과거의 기억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그 후로도 둘만의 3년이라는 연애기간을 지나 결혼과 출산을 비롯한 변화가 가장 많은 생애주기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유정은 아이 없이 결혼생활을 원하던 딩크족이었지만 재훈을 비롯한 시댁에서는

아들을 원하는 집안분위기가 강했다.

재훈 또한 딸 셋에 막내로 태어난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와 남편은 결혼이 일 년 지나갈 즈음부터 늘 아들아들,손자손자 라는 말을 달고 살며 유정에게 스트레스를 주기 시작했다.

그런 중간에도 그 둘은 경제적으로 무능한 재훈으로 인해 여러 번 소동이 있었다.

결혼과 동시에 인테리어일을 그만두고 주식 전업투자자로 뛰어든 그는 유정에게 투자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재훈.

"이번엔 확실해. 지금 들어가야 수익 백 퍼센트 낼 수 있어. 천만 원만 투자해 줘.

1억 금방이야. 내가 바로 갚을게. 우리 한번 멋지게 살아봐야지. 언제까지 급여만 받으면서 대박인생 즐기며 살 수 있겠어? 내가 그렇게 해줄 테니까 한 번만 믿고 투자해 줘.!"


유정.

"오빠, 나 지금 출산 앞두고 있어. 임신하고 열 달을 쉬지도 않고 일했어. 아이도 곧 태어날 건데 일도 하지 않으면서 언제까지 주식대박만 바라고 있을 거야. 오빠 바람대로 주식투자가 그렇게 쉬운 일 같았으면 누가 직장 다니면서 힘들게 돈을 벌지 생각 안 해봤어?

내가 주식자금해준 것만도 거의 1억은 돼. 내 퇴직금까지 다 끌어썼다고. 매번 마지막, 마지막.

끝이 있긴 한 거야?"

재훈.ㅇ

"너 돈 좀 번다고 나 무시해? 기껏 일억? 네가 투자 한꺼번에 1억만 해줬어도 벌써 우리 인생이 달라졌을 거야. 돈 투자해달라고 할 때 안 해주고

버티고 버티다 결국 해줄 거. 타이밍 좋을 때 해줬어 봐. 그 수익이었으면 직장이고 뭐고 왜 다니냐. 결국 네가 쓸데없이 고집부리다 이렇게 된 거 아냐!"

유정.

"지금 말이라고 해? 난 더는 못해주니까 오빠엄마한테 투자해달라고 해.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지.

오빠엄마가 그럼에도 투자를 해주신다? 그땐 나도 해줄게!"

재훈.

"그걸 왜 엄마한테 얘기해! 뭐야 그래서 못해준다고? 나 이번에 못 들어가면 파산이야.

제발 한 번만 해줘. 이번에도 안되면 다 접고 일할께. 진짜야. 이번이 기회라고, 유정아.

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믿고 해 줘. 응?"

유정.

"이번이 마지막이란 거 각서 써.

나 더 이상은 오빠가 하는 말 믿을 수 없어.

우리 연애할 때 오빠가 여자문제 있었을 때도 이렇게 복잡하진 않았던 것 같아.

오빠가 주식이니 도박이니 이런 걸로 문제를 일으킬 거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현실이 돼버리다니. 나 너무 막막하다."

울지 않으려 참고 있던 유정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던 그때,

"유정아, 나 각서 쓸게. 그리고 천만 원은 적어. 5천만 원해주라. 마지막으로 부탁할게. 너 일도 그만두고 애만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게 해 줄게. 그 돈만 있으면 나 다해 줄 수 있어. 응?"

각서내용을 스스로 작성하고 프린트해서 유정에게 내민다.

"오빠,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이후에는 나 절대 주식에 돈 안 넣어줘. 물론 그럴 돈도 없지만. 혹시 이번에도 주식에서 다 털리면 전업 그만두고 직장 다니는 거야, 알지?"

재훈.

"당연하지. 근데 그럴 일 없을 거야. 5천만 원

언제 입금해 줄 거야?"

유정.

"대출받아야 해서 3-4일 걸릴 거야."

재훈.

"지금 당장 들어가야 한단 말이야. 통장에 있는 돈 얼마라도 보내줘."

그의 급한 다그침에 통장에 남아있던 돈 전부를 이체하고서야,

'이건 주식의 끝이 아니라 우리 관계의 끝을 부르는 마지막인듯해'라는 유정의 독백.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을 즘 아이가 태어나고

그토록 원하던 아들이 아닌 딸이었다.

임신 중 검사에서 초음파 볼 때도 의사가

"핑크색이 어울리겠어요"라고 대놓고 딸이라는 힌트를 주었음에도 아닐 거라며, 분명 아들일 거라고, 잘못 보았을 거라던 그의 황당한 억지에 유정은 고개를 저었었다.

결국 아들이 아닌 딸아이의 탯줄을 자르러 들어온 그가 뱉었던 한마디,

"진짜 딸이에요? 내사주에는 아들이 분명 있다고 했는데. 이 아이가 딸이면 말이 안 되죠."

라며 순간 분만실을 얼음으로 만들어버렸다.

아이가 태어나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그는

결국, 우려했던 악마의 모습을 드러냈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29화지한-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