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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백하 Jun 22. 2024

비상선언 후기

대담했으나 실패한 정치영화

 영화 <헌트>의 해외평과 국내평은 상이하다. 이유로 많이 제시된 "외국인들이 한국의 정치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비상선언>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비상선언은 박근혜 정부 때의 세월호 침몰, 메르스 사태를 제하고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전반부의 재난과 다르게 중후반부에 들어선 영화는 고립된 교통 재난(세월호), 바이러스 생물테러(메르스)와 맞서는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집중한다. 당당하고 위엄있는 장관, 발 빠른 정부의 대처... 재난의 스펙타클은 거들 뿐, 감독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대처 과정"을 보여주는 게 주목적이다.


오프닝과 결말

 본 영화는 이상적인 대처 과정을 넘어서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의 사망자를 조명하고 추모하려 한다. 기록 영상마냥 연출된 공항의 전경을 보여주는 오프닝으로 시작해 결말의 팽목항을 연상시키는 항구에 도달한다. 항구씬의 전후에 뜬금없는 생존자들의 파티와 무사 착륙한 비행기(뉴스 카메라가 바라보듯이 부감으로 찍었다.)를 배치함으로써 세월호의 대체 역사를 제시했다. 비비고 싶지는 않거늘 타란티노가 원어할에서 샤론 테이트를 추모한 방법이 연상된다. 비상선언은 명백한 "세월호 전원생존" 내지는 "메르스 조기차단" 대체역사 영화며, 추모의 뜻을 담았다.


 한재림은 추모를 넘어서 대담하게 정치적 대립 구도를 담는다. 알다시피 한재림의 <더킹>은 노골적인 親盧/親민주당 성향을 들어냈다. 긍정적으로 연출되는 국토부 장관과 대립하는 여성 정치인은 보수 진영의 모습이다. (두 명이 생각났다.) 정치적 대립 구도는 일본의 착륙 거부에서 시작돼 잠시나마 토착왜구와 연관성이 있는지를 고민했으나, 그럴 용기 혹은 파렴치함까지 담을 그릇이 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여튼 일본의 착륙 거부에서 시작된 정치적 대립 구도는 정계에서 국민으로 확장된다. 문제는 웃기게도 흐름에 비행기의 승객조차 동요돼 착륙을 거부한 사실이다! 세월호를 둘러싼 국민적 논쟁을 다루고 싶던 건가? 사회 실험을 다루고 싶었는가? 어느 쪽이든 논지를 잘못 짚은 유치한 각본일 뿐이며, 추모의 의미를 소실시켰고 정치 영화의 자질을 완전히 연소시켰다.


 플라이트93에서 영감을 받았는지 멀미나도록 공항부터 화면을 흔들어댄다. 유나이티드93 승객들의 선택을 반박하고 싶던 건가? 애초에 비상선언의 착륙 거부는 플라이트93의 맥락과 다르다.


 정치 구도가 일본 자위대의 도그파이팅와 가미카제 시도로 시작됐음에서 어설픈 정치 영화의 전철을 밟음은 불보듯이 뻔했던가. 이란 민항기 격추조차 민간인 살상의 의도가 없는 사고일 뿐이다. 反美는 오명이나, 反日은 맞다. 비지니스석 부심과 사람을 내쫓는 아저씨 등 피상적이고 뻔한 사회 비판이 산재하는 각본에서 무엇을 기대한 건가. 승객들의 희생으로 어설픈 구도 마저 추락하나니.


 비상선언은 좋아질 여지가 있다. 과감한 편집이 필요한데, 임시완의 사망으로 끝나면 웃기니 주목적은 살려두자. 우스운 사회 실험을 빼자. 뒷심이 부족한 영화가 될 지언정 스스로 주제를 뒤엎는 최악의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터다.


 전반부의 공항과 테러범의 집의 교차편집은 좋았다만.



(2022년 8월 4일에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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