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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백하 Oct 19. 2024

보통의 가족 후기 ─ 할 말이 없는 영화

허진호의 끝.

보통의 가족(2024)

 보통의 가족이라는 영화를 한 문장으로 축약하자면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영화의 만듦새는 괜찮다. 퇴물 된 지 오래됐지만 허진호는 그래도 나름대로의 연출력을 가진 영화감독이고 이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은 성공적으로 짜인 듯 보인다. 일전에 설경구는 범죄를 저지른 자신의 학생 신분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나서는 상류층 부모라는 비슷한 성격의 캐릭터를 동명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에서 연기한 바가 있다. 그 영화를 찍은 감독은 김지훈이라는 사람인데 필모만 봐도 5.18 항쟁이라는 소재로 "폭동 아니야"라고 외칠뿐인 <화려한 휴가>나 아니면 <타워>, <싱크홀> 이런 영화들...... 원체 두 영화의 설경구의 캐릭터가 흡사하다 보니 그 두 영화를 비교하며 보게 된 면이 있는데, 이런 점은 확실히 이 영화가 요 근래 한국 영화 중에서 상당히 좋은 연출력을 지녔음을 확실히 하게 한다.


 작중 인물들은 틀 속을 떠돈다. 이 틀은 인물을 심리적으로 옥죌뿐더러 그것을 표현한다. 보복 운전으로 사람을 죽인 '형철'의 변호를 맡고 있는 설경구가 맡은 극 중의 변호사 캐릭터 '재환'은 그에게 면박을 듣는다. 그 뒤 카메라는 창밖을 내다보는 재환 자신의 사무실의 모습이 나오도록 그 상황을 롱 쇼트로 촬영한다. 재환이 그렇게 수많은 직사각형 창문들이 자아내는 수직선의 영향 에 놓이게 되면서 관객은 재환이 심리적으로 갑갑한 상태임을 공감하게 된다. 이러한 수직의 감옥은 본작에서 여러 번 반복된다. 물론 본작도 인물의 얼굴을 정면으로 잡아두고 배우의 연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발견되지만 적어도 흔히 텔레비전에서 방송되는 비슷한 유형의 '막장 가족 드라마'들의 연출에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대개 얼굴빡 하나라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이 영화가 훌륭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연출에서의 강점을 가졌음은 확실히 할 수 있다.


 또한 틀은 그들이 대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작중 캐릭터들이 대화를 하는 장면은 벽을 보고 하는 대화로 쌍방의 진실된 감정을 전달하지 못하게 한다. 한마디로 반쪽짜리 대화인 건데 형철 보복 운전으로 사망한 피해자의 유가족을 맞닥들인 재환이 노숙인을 아무 이유 없이 패 죽인 자신의 딸과 통화하는 장면에서는 이것이 말 그대로 벽을 보고 말하는 대화로 묘사된다. 이러한 대화 부재 현상은 건 집의 보안 방지 시스템인 카메라라는 제삼자의 개입을 통해 비로소 일부분 해결된다. 전술한 카메라라는 제삼자의 개입과 CCTV 속 두 청소년의 노숙자 폭행이 휴대폰이라는 화면을 통해 현현되지만 이 흥미로운 지점은 딱 소통의 불능 상태를 보여주기만 한다는 단순한 맥락 속에서 끝난다.


 영화를 보면 틀이 상 속을 맴도는 순간들이 있다. 수많은 창문의 연속이 재환의 사무실보다 극적으로 보일 아파트의 겉모습이 자동차에 반사되는 순간이 그러하다. 이 작품에서 틀은 충분히 확장될 여지를 가진다. 사실 보면 이 영화는 반사와 불안이라는 요소를 더욱더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순간을 많이 가지고 있다. 아파트의 주차장은 조명의 번짐으로 그 자체로 인위적인 공간으로 보이며 그들이 틀에 갇혀있었다는 인상을 강화시킨다. 한강다리를 자동차로 건너는 장면에서 관객은 수없이 지나가는 난간의 모습을 확인할 수도 있다. 영화의 이야기를 충분히 더 확장시킬 부분이 보이나 이 영화는 저러한 순간들을 그저 태양빛이 한강 수변공원에서 그들이 귀의하는 것마냥 보이게 만드는 데에만 소비한다.


 이것은 <탈주>라는 올해의 한 프로파간다 영화가 보여준 극도의 인공성을 생각하게 만드는데, 문제는 보통의 가족이라는 영화에서 남은 이야기란 "남한은 자유롭고 북한은 자유롭지 못하다"라고 외치는 탈주의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구호의 반복처럼 지나치게 진부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래도 탈주가 그 진부한 구호의 반복을 통해 북한의 기만적인 선전 문구를 자동차로 들이받으며 무너뜨리는 장면이 그러하듯 선전 영화 특유의 극단적인 설정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21세기판 반공 영화라면, 보통의 가족에서는 그런 흥미로움조차 찾아볼 수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투박함이 넘쳐나는 탈주가 보통의 가족보다 흥미로운 작품이다.


 류승완이 찍은 올해의 망한 작품인 <베테랑2>가 차라리 사회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에서 본작보다 훨씬 할 말 많은 흥미로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베테랑2는 모두가 알 듯이 단순 도전작의 수준을 넘어선 괴작에 가까운 엉성한 영화고 보통의 가족은 그것보다는 깔끔하게 정돈된 작품이다. 하지만 나는 보통의 가족의 모든 장면보다 차라리 베테랑2의 유치찬란한 텍스트가 범람하는 화면과 쓸데없이 잔혹한 PPT 화면에 대해 말할 지점이 훨씬 많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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