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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Aug 13. 2024

'지인의 지인' 작가 김기태의 첫 인상

<2> 기자의 문장과 아줌마 스러움에 열광하다


김기태 작가와의 첫 만남은 좌충우돌 그 자체였다. 

마지 첫 소개팅에서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엇갈린 뒤 삐삐와 공중전화를 한참 오가다 뒤늦제 만난 날처럼 말이다.     


사실 책장을 열고 한 시간가량은 빽빽한 미로 속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방 탈출 게임에서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처음에는 장편소설인 줄 알았는데, 단편 모음집이었던 것이다.     

분절된 인물들의 이야기가 시공간을 넘어 기술된 것을 전제하고 읽었는데, 완전히 소설 구조를 착각한 것이었다(바보).     


완전히 다른 소설 속 인물들을, 시공간을 뛰어넘는 설정 속에 끼워 맞춰 이해해 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이 인물이 누구야?'라며 한숨을 지은 것만도 몇 번이다.     


'이럴수 럴수 이럴수.'

단편집이라는 구조라는 것을 뒤늦게 인지한 부끄러움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아니 부끄러움은 아주 잠시고 익숙함이 밀려들었다. 그건 기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일 수도 있겠다.


'이 사람 기자였나?', '아니면 최소한 기자지망생이었니?'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1. 15년 차 중견 기자의 눈으로 볼 때 김 작가는 기자의 문장을 지나고 있었다. 주어 하나, 서술어 하나. 단문이 경쾌하게 속주하고 있다. 다른 여느 기자 출신 작가들에게서도 비슷한 느낌을 느낀 적이 있다.          


2. 두 번째는 상당한 수준의 취재력. 직접 경험하거나 상당 시간 상념에 쌓여있지 않았으면 쓸 수 없는 콘텐츠들이 문장 요소요소에 담겨있다.          

가끔 그의 문장에선 ‘굳이’를 발견하기도 한다. 굳이 세상에 없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 하나의 디테일을 더해 새로움으로 포장한다. ‘이 사람 평범한 표현은 죽어도 싫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진주는 삼 년 전에 구입한 팽수 이모티콘을 골라 답장했다>

-‘삼 년 전’이라는 설명은 팽수 탄생 초기부터 팬이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그냥 지나가는 팬이 아니라 덕후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시간을 덧붙인 것이다.          


<맥도널드나 버거킹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롯데리아에 갔다.>

-그냥 롯데리아에 가면 될 것을,,, 평소 느꼈던 아주 작은 상념들조차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작가의 성정이 보인다.     


가끔은 일상의 아주 작은 상념이나 아주 작은 내적 흔들림도 포착해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지나가고 나서 조금 이따 기록하려고 하면 잘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상념이 글이 되는 건 찰나다. 그걸 포착해 남기는 건 프로의 영역이다.          


3. 그리고 마지막 글 면면에 흐르는 시사 감수성. K팝에서 시작된 그의 문제의식, 이태원 사건과 흡사한 사고를 모티브로 차용한 지점. 사고와 세계 각국의 전쟁 상황을 버무린 부분까지…. 기자의 테크닉이 아닌가 의심케 했다.          

익숙하다는 건 잘 읽힌다는 것. 일단 합격이다.               


기자스럽다는 것만으로는 다 설명하기 어려운 문학적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시인의 DNA. 머리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문장들 말이다.     

단숨에 그날의 감흥을 멜로디로 만들어내는 작곡가처럼, 문학가들에게는 범인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힘이 있다 믿는다.     


가령 아래의 문장들이 그랬다. 나는 절대 쓰기 어려울 거 같은 표현들.             

<여러 논쟁이 사안 자체를 초월해 버리는 동안, 나는 모든 게 뒤죽박죽으로 느껴질 뿐이어서 의견을 가질 수가 없었다.>          


<무엇을 했어야 할 의무는 내게 없었다. 하지만 할 수도 있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기분>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왔지만, 먼바다는 잔잔하게만 보였다>          


<큼지막한 파도 하나가 방파제에 부딪쳤다. 하얀 물보라가 세차게 튀어 올랐다. 얼굴에 와닿는 차가운 물방울의 감각. 실제로 닿았을까 느낌뿐이었을까. 분명한 건 내가 뒷걸음질을 쳤다는 것이다.>          


<해진역에 처음 도착해 인스타와는 다른 풍경을 설명하면서 ‘다이내믹하지도 고즈넉하지도 않았다’라고 썼다.>               


나에게 문장 그 자체의 호감도는 글을 끝까지 읽어나가는데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커피 원두의 산미가 너무 진하거나, 레드와인의 텁텁함이 높으면 아무리 비싼 원두와 와인이라도 제대로 즐기기 어렵다.     

정갈한 문장, 경쾌하고 신속한 흐름으로 한 큐에 읽어 내려가게 하는 글, 이런 문장을 만날  땐 무척 반갑다.               

머리에 드는 상념을 문장으로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세상에 존재를 드러낸 창작품에 대해 비평하기는 쉽지만, 새로운 무엇을 한 줄 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기사도 그랬다. 기사를 시작하는 게 항상 힘들었다.           

뻔하듯 뻔하지 않는 리드를 쓰려면 사안의 핵심과 줄기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정제된 문장을 뽑아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종종 기사의 리드를 더치커피 한 방울과 같다고 생각했다. 커피콩 안의 주요 DNA를 오롯이 머금은 그 한 방울, 그게 기사의 리드로 나와야 좋은 문장이라고.     


김기태의 문장에는 잘 수습되지 않는 상념 조각들이 한 문장 한 문장에 오롯이 담겨있다. 악상이 떠올랐다 집에 가서 작곡을 하려면 잘 써지지 않는 것처럼, 글이 내게는 그럴 때가 많은데, 김 작가의 글은 내게 ‘수습의 묘미’를 느끼게 해 준다.               


문장뿐 아니라 글감의 측면에서도 나는 묘한 동질감에 사로잡혔다. 그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나와 비슷한 구석이 적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기태의 소설집 앞부분에 배치된 <세상의 모든 바다>, <롤링선더 러브>를 읽어 내려가면서 ‘골 때린다’는 생각을 수차례 했다. 개그를 치는데, 진지 개그랄까. 중간에 웃음이 터지면 문학성에 타격을 입었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개그를 치면서도 끝까지 웃지 않는다     


혹자는 나를 ‘엄근진’ 류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한 꺼풀 벗긴 나를 경험한 사람들은 아줌마 같다며 환호하기도 한다. 가볍지 않고 진중함을 추구하지만, 엄숙주의로 귀결되지 않으려 애쓰는 경쾌함이 바로 그것, 진중한 변태스러움이랄까.          


약간 깬다. 그런데 작가의 '가오'를 잃지 않는다. 때로는 우리가 온라인상에서 접할 법한 스토리 텔링 테크닉인데 전혀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솔로 등 데이트 프로그램을 차용한 부분도 자칫 진중함을 잃을 우려가 있었지만, 과하지 않아 촌스럽지 않았다.          

<여윳돈이 없어서 암호 화폐를 사지 못했고 ‘떡락’하는 차트를 본 이병헌이 “으악 안돼”라고 외치는 영상을 보면서 웃었다>     

이 온라인스러운 문장들도 그렇다. 가벼운데 결코 가볍게만 다가오진 않는다.    

 

<저렴함을 무기로 성공한 프랜차이즈 와인 주점에서 만구천 원짜리 와인을 한 병 더 주문해 자기가 다 마셨다.>     

-이 문장을 읽고 와인바 '와인 한잔'을 떠올렸다면 우리 세대가 분명한 것이다. 아마도 김 작가는 와인 한잔과의 추억을 지난 사람 아니었을까.               


그의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그에 대해 조금 더 궁금해졌다.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는지, 대학에선 어떤 생각으로 살았는지, 직장을 갖고 난 뒤 내면과 현실 사이의 갈등들은 어떻게 조율했는지, 우울할 땐 어떻게 하는지, 지금은 그의 내면을 괴롭히는 지점은 무엇인지.     


임솔아 작가가 도달했다는 ‘완전한 기쁨’은 없을지 모르지만, 마흔의 고단함에 이르게 된 몇 계단의 추억 정도는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인의 지인'은 지인이 될 수 있을까.


#위 글은 브런치북 발간을 위해 브런치 스토리에 썼던 글을 각색한 것입니다.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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