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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Aug 16. 2024

'돈 안 들며 맛보는 최고의 몰입감'

<4>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소설 쓰기

‘소설인 듯, 아닌 듯한’ 글을 시작했다. 

일주일 만에 원고지 70~80매 단편소설 분량의 글을 마무리하고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고 있다.      


신문의 톱기사가 대략 8~10매. 하루에 톱 하나 정도 마감한다고 생각하면서 진도를 빼다 보니, 금세 분량이 찼다. 이렇게 긴 글을 사실 이렇게 빨리 써 내려갈 수 있을지 상상하지 못했다.


10매가 넘어가는 글을 써본 지가 언제려나. 또 하루가 아닌 여러 날에 걸쳐 하나의 글을 부여잡고 산 날도 오랜만의 일이다.      


아직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아 보였지만 분량이 차고 나니,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이 또한 직업병일지 모른다. 시간과 분량을 정해놓고 기사를 쓰는 습성.    

  

마무리되지 않은 채 여운을 남기는 열린 결말로 소설을 마무리하자는 쪽으로 급하게 마음의 중지가 모아졌다. 글의 완성도보다는 내 글쓰기의 하비투스가 우선인 무척 게으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루틴이 중요하더라

초보의 감상이지만, 작가에게는 루틴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나에겐 글이란 비는 시간에 쉬는 공간에서 여가 즐기듯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서관 학교와 같은 다소 딱딱한 작업 공간과 정해진 시간표가 반드시 필요했다. 특히 스타벅스와 같은 오픈된 공간에서는 글 줄기가 잘 나가지 않았다. 


내게 글쓰기는 잉여가 아닌 생업의 공간임이 분명하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 자리에 앉아 엉덩이로 쓰는 방식이 아니면 일주일 만에 글을 마무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점심시간 50분, 퇴근 후 2시간. 루틴을 지키려 노력했고, 그 루틴 안에서 집중이 이뤄졌다.


이 작업은 때론 단순 노동 같기도 하고, 때론 시험공부를 하는 수험생의 공부 같다는 생각도 든다. 분명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데, 기계적인 노동 활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실존, 밥벌이가 빠진 예술이 과연 있을까.

전공분야인 정치학 영역에서 예를 들어보면, 근대 정치학의 태동으로 불리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도 사실은 한직으로 물러난 한 관료가 당대 권력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썼던 원고로 시작했다. 


‘여우처럼 교활하고, 사자처럼 사나워져라’라는 군주론 속 한 글귀도, 정작 본인은 절대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잘 보여야 하는 대상의 눈에 들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다. 신이 모든 판단의 근거였던 중세에서, 인간의 능동적 행위의 가능성을 열어냈다고 평가받는 군주론의 구절들도 사실 밥벌이에서 시작됐을지 모를 구절들이다.     


“입금되면 저절로 살을 빼게 된다”는 여느 배우들의 말은 어쩌면 가장 예술의 한 단면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가 예술은 게으른 것이라 했던가. 게으른 천재형 예술가라는 게 실존하긴 할까.     


#돈 안 드는 몰입감이 주는 행복


소설을 쓰면서 느낀 가장 귀한 감흥은 바로 몰입감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일을 내 자유의지에 의해 진행하면서 어느 일에서보다 강한 집중의 시간을 경험했다. 중독성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를 탐독하거나, 한 점 승부의 야구 연장경기를 볼 때와는 차원이 다른 집중력이 내 안에서 느껴졌다.      


아마도 무언가를 소비하면서 느끼는 집중이 아닌, 무엇인가를 생산해 내면서 느끼는 집중의 밀도가 달랐던 거 같다. 남이 만들어 놓은 작품을 감상할 때와는 전혀 다른... 내 것을 만들어낸다는 그 마음이 차원이 다른 집중의 시간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한 소설가 지인은 내게 글 쓰기의 매력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참 돈도 안 들면서 이렇게 좋은 게 없어요.”     

운동을 하려 해도 헬스장을 끊고 운동화를 사야 하고, 뭐 하나 여가 활동에도 돈이 들지 않는 것이 없지만, 글쓰기만큼은 자신의 생각만 있으면 누구든지 진입할 수 있고, 또 가성비 좋은 행복감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몰랐는데, 이제야 조금은 말을 이해하고 있다. 


오롯이 글에 집중할 때 느껴지는 충만함은 나를 건강하게 한다. 한 챕터를 마무리하고 일어났을 때의 뿌듯함은 스쾃 100개를 했을 때와는 또 다른 포만감으로 다가온다.


곧 글이 잘 나가지 않는 고통의 시간이 다가올지 모르지만, 일단은 쏟아낼 수 있을 때까지 쏟아내 보리라. 이 짧은 희열이 조금은 길게 지속된 주길 기대하게 된다.     


아무에게도 평가받지 않아도 되는 글쓰기가 주는 치유의 힘은 생각보다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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