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어떤 사람의 머릿속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특히 삶이 유난히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일 때 더 그렇다.
똑같은 상황 속에서도 다른 길을 걸으며,
서로 다른 결론을 내는 사람들.
같은 현실을 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의 세상은 다른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한 번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언니와 금요일 저녁, 술 한잔을 나눴다. 직장 이야기를 안주 삼아 불만을 쏟아내던 중, 문득 매일 아침 무거운 몸을 끌고 좀비처럼 출근 준비를 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 생각에 저절로 한숨이 섞인 고단함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언니, 아침에 눈 뜨는 거 진짜 힘들지 않아?"
"왜 힘들어?"
"왜긴... 당연하지. 언니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좋아?"
"응. 난 좋아. 싫을 이유가 없는데?"
순간 귀를 의심했다. 아침이 힘들지 않다고? 매일 아침이 밝아올 때면 무겁게 감긴 눈꺼풀은 침대에 나를 더 깊이 묶어두려 한다. 알람이 울리면 손은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끄고 다시 이불속으로 파묻힌다. 몸은 물먹은 솜처럼 늘어지고, 정신은 여전히 꿈결에 떠다닌다. 아침에 일어나는 일은 매일같이 치러야 할 싸움이다. 그저 몸을 일으키는 일조차 나를 힘들게 만든다.
몸은 여전히 무겁다. 전날의 피로가 쌓인 채 온몸이 뻐근하고, 일어나려는 의지는 바닥에 내려앉는다. 어젯밤에도 수없이 뒤척이며 얕은 잠에 빠졌다. 아침은 내게 형벌과도 같았다. 기력이 소진된 채로 하루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매일 반복되는 아침의 졸음은 하루의 시작이 아니라 끝을 알리는 신호처럼 다가왔다.
회사에 가는 것도 싫었다. 아침의 무거움은 결국 회사로 향해야 한다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곳은 나를 무너뜨리는 요구와 소진의 공간이었다. 회사 문을 여는 순간부터 책임과 의무가 어깨를 짓누르고, 그 생각이 아침마다 나를 침대에 붙들어 놓았다.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지쳐버린 기분이었다.
오늘도 어제와 다르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아침, 같은 길, 같은 일상. 어제가 오늘로, 오늘이 내일로 이어질 것을 알기에 그 반복 속에서 무의미함이 스며들었다. 새로울 것 없는 하루가 펼쳐질 것을 생각하면 일어나야 할 이유조차 희미해졌다. 나는 왜 이 모든 것을 반복하고 있을까? 그런 질문이 들 때면 다시 눈을 감고 싶어졌다.
"언니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뭐가 그렇게 좋아?" 울분 섞인 질문을 던졌다. 언니는 천천히, 자신이 아침에 눈뜨는 것이 행복한 이유를 하나씩 말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 속에 있거든." 곰돌이 푸우 이불과 베개, 좋아하는 커피 머신이 내려주는 커피, 집안 곳곳에 자리한 피규어들, 좋아하는 향의 샤워 젤과 바디로션, 좋아하는 옷, 좋아하는 차,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하루. 온 세상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어서 아침이 싫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행복한 사람도 있구나.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모든 사람이 아침을 힘겹게 맞는 것은 아니구나.
집에 돌아와 나는 내 방을 둘러봤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물건이 무엇인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큰 맘 먹고 산 TV도, 일상에서 쓰는 물건은 그저 필요에 따라 쓰고 버리는 것일 뿐이었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물건을 가장 먼저 사용했다. 빨리 써서 빨리 없애버리려는 의도였다. 그러다 보니 늘 싫어하는 물건을 사용하는 내가 있었다. 자연스레 물건을 사용하는 것은 나에게 기분 좋은 일이 아니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내 삶을 바꾸기로 했다. 주변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하나씩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책상을 살 때도 아끼고 싶은 물건을 선택했고, 때로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써보고, 좋다면 직접 구입했다. 좋아하는 것뿐만 아니라 싫어하는 것들을 정리했다. 예전에는 아까워서 버리지 못했던 옷과 물건들을 하나둘 치워냈다. 그렇게 내 주변은 점차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조금씩 달라진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눈을 뜨면 나를 감싸는 것들이
더 이상 무거운 피로가 아니라 따뜻한 위로였다.
기분좋은 이불의 포근함이
잘 잤냐고 아침 인사를 하는 듯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자리한 공간에서,
무기력한 하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작은 변화들이 쌓여
내 삶을 새로운 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고, 나의 삶을 만들어 간다.
나는 내 아침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